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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튀니지 마트마타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총칭하는‘마그레브’라는 아라비아어가‘서방의 아랍 나라’를 뜻한다고 하더니, 튀니지(Tunisie)는 역시 아프리카답지도 서구 같지도 않은 독특한 ‘서구식 아랍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관광 산업으로 외화 벌이에 의존하고 있는 터라 치안이 좋고 외국인에 대한 이슬람 특유의 반감이 덜하며, 법으로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지만 지정된 카페나 호텔에서는 어느 정도의 술이 판매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마트마타(Matmata)를 가기 위해서는 수도 튀니스에서 국내선을 타고 50여분 걸리는 제라브로 간 뒤 거기서 다시 차로 들어가야 했다. 제라브는 사하라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라 그 열기는 지글지글 타는 냄비 안에 있는 듯 아찔했다.

제라브에서 차를 빌려 마트마타를 향해 황량한 벌판을 달렸다. 회오리 모양의 열풍이 불고 선인장이 줄지어 늘어선 이곳에서는 동물은커녕 사람을 보는 것조차 어려웠다. 오후쯤 되자 한낮의 뜨거운 시간을 피해 일터로 향하는 밀짚모자를 쓴 농부와 노새 한 두 마리만이 듬성듬성 보였다. 튀니지에서 8월은 가장 더운 시기. 따라서 대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집에서 한낮의 열기가 식는 오후까지 내내 쉬는 것이 보통이란다.

누벨(新)마트마타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적힌 표지판을 보고서였다. 흔히 마트마타라 일컫는 구(舊)마트마타는 여기서 3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누벨 마트마타의 풍경은 단층의 벽돌 건물이 모여있어 황량하기 짝이 없기에 별 미련을 두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몇 개의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쭉 뻗은 길을 달리자 드디어 내가 찾아가고자 하는 구(舊)마트마타 입구가 나왔다.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입구에서 보니 변두리에는 2, 3층 건물들이 보이지만 마을 중심부는 마치 달의 분화구처럼 움푹움푹 파여 있고, 땅 위로 보이는 것은 희한한 말뚝뿐이다. ‘저곳에 지하도시가 건설되어 있구나’ 생각하고 제라브에서 빌려온 차를 마을 입구에서 돌려보냈다.



사진을 찍으며 이리저리 다니면서 느낀 것은 척박한 환경에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어 어렵게 살고 있는 탓인지 인심 또한 척박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관광객을 위한 서너 개의 작은 호텔 외에는 농사만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그래서 관광객을 보면 아이들을 선두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구걸을 일삼는다.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마트마타 시민의 대부분인 베르베르족(Berber)은 한때는 사하라 사막을 주름잡았던 사람들이라 성격이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과장하여 말하면 포악한 면까지도 보여주어서, 취재는 피곤하게 진행되었다. 수도인 튀니스와 달리‘돈독’이 올라 사진 찍을 때도 파리떼처럼 들러붙는 아이들 때문에 피곤했다.

그 가운데 내가 호텔에서 나오는 것을 멀찍이 지켜보고 있다가 달려와서는 하루 종일 따라다녔던 여덟 살짜리 남자 아이가 있었다. 졸졸 따라다니던 그 아이는 3일째 되던 날 “사진도 찍을 겸해서 우리 집을 구경하자”며 나를 꼬셨다. 아이의 속셈을 어느 정도 간파한 나는 ‘집에 가면 부모가 나타나서 기념품을 사라며 반 강매를 하겠지’란 생각을 하면서도 마트마타에 머무는 동안 지하 가옥 내부를 보지 못한 터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 소년은 마치 포주가 어리숙한 손님을 낚아챈 듯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대며 앞서가면서 저것은 공동 묘지고 저것은 뭐라는 둥 가이드 역할까지 했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지하 가옥은 너무 시원해 섭씨 45도를 웃돌던 바깥 기온을 까맣게 잊을 정도였다. 아니, 냉랭한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서늘했다.

더위 피해 숨은 ‘땅속의 도시’
지하 가옥의 방안은 회백색으로 칠이 되어 있고 붉은 흙이 그대로 있는 바닥에는 몇 개의 방석만이 눈에 띄었다. 창문도 없고, 둥근 천장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커다란 한 개의 방이 전부인 이곳은 침실이자 부엌이며 거실이다. 말하자면 원룸 시스템인 셈이다. 베르베르족이나 아랍계 여성이 흔히 그러하듯 얼굴과 팔 다리 등 온몸에 문신을 새겨 넣은 아이 어머니는 흙바닥에 양털을 깔고 앉아 베틀을 짜고 있었다.

나와 친절하게 인사를 나눴던 아이의 어머니는 카메라에 담으려 하자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베틀을 내팽개치면서 등을 돌려 앉아 버렸다. 그러면서도 소리치기를 “뒷모습이라도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든지 아니면 짜고 있는 카페트를 사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그 소리에 “구경 잘 했다”며 그냥 나오는 나를 아이가 놔둘 리 만무했다. 구경을 했으면 값을 치르고 가야 할 것 아니냐며 한 시간이나 집요하게 매달리는 아이에게 나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정도의 디나르를 주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고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유쾌하지는 않았다.

집 밖으로 나오니 오후 5시경, 어느새 기온이 떨어져 있어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더위 탓에 낮에는 일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이 짧은 오후 시간이 귀중하기만 할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도리깨질하고 있는, 순하고 착한 마음이 연륜과 함께 얼굴에 묻어난 농부가 눈에 띄었다. 사진을 마음대로 찍으라며 호의를 베푸는 그에게 “우리나라에서도 당신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농부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신기하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교통이 발달되었다고 하는 지금도 마트마타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은데 그 예전에는 오죽했을까. 게다가 사하라 사막과 가까운 척박한 땅이고 바다에서도 떨어진, 그야말로 버려진 땅이 아니던가. 삶이 삭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죽 살기가 어려웠으면 지하로 들어가 버렸을까. 농부와 대화하면서 나는 좀 전의 아이 일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마트마타에 정을 느끼고 있었다.

살아서는 땅속에서 생활하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땅 위의 묘지에 묻히게 된다는 마트마타 사람들. 살아서는 태양을 피해 살아가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태양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밝음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표독함은 숙명이지 싶다. 그 끈질긴 요구와 돈에 대한 갈망은 척박한 땅을 지키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유목 생활을 영위하던 베르베르족 후손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은 어쩌다 찾는 관광객에게 의지하며 살아야만 하는 처지이므로….



주간동아 2001.02.08 270호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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