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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카지노는 ‘깡’세상

카드, 차, 통장 등 담보 잡고 급전 … 헐값에 재산 털려 거덜난 사람들 속출

정선 카지노는 ‘깡’세상

정선 카지노는 ‘깡’세상
2001년 1월15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백운산 정상. 폭설과 영하 20도의 강추위도 개장 석달째를 맞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인 듯, 1800여명(정원 700명)의 인파가 객장으로 운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오락의 수준을 넘은 ‘대박의 과욕’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고액 채무자의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이다. 소위 ‘꽁지’라 불리는 카지노의 사기꾼 ‘깡업자’들에게 모든 재산을 헐값에 털린 채 무일푼이 돼버린 사람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영혼조차도 담보로 저당잡힌 듯 눈동자의 초점마저 흐려져 있었다.

이날 밤 10시 ㈜강원랜드 카지노 호텔의 1층 로비. 차림새로 봐 손님들로는 보이지 않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카지노 객장과 붙어 있는 로비 응접실을 점거한 채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재미 좀 봐야 되는데… 슬롯머신 메가 잭팟 상금이 1억원 가까이 올라 있으니 한 사람은 걸리겠지. 그런데 경비가 워낙 삼엄해서….”

정선 카지노는 ‘깡’세상
로비를 제집 삼아 드러누워 있거나 열심히 어디론가 전화를 해대는 사람들. 바로 깡업자 ‘꽁지’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카지노측의 깡업자 일제 단속 조치 이후 카지노 객장에 들어오지 못한 채 로비에서 ‘사냥감’을 물색 중이었다. 카지노 안전요원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은 버젓이 로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일단 카지노 객장에서는 몰아냈지만 호텔 로비에서야 물증이 있어야 쫓아내죠.” 안전요원 김모씨(31)의 푸념처럼 이들의 깡수법은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었다.

약 10분이 지났을까, 한 업자의 핸드폰이 로비를 요란스럽게 뒤흔든다. “일단 로비로 오세요. 객실로 함께 올라가시죠.” 잠시 후 나타난 50대 초반의 여인과 깡업자는 객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깡업자에게 안전요원은 호텔 키를 보여달라며 제지했지만 여인이 ‘가족’이라고 둘러대자 더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한 손에 이동식 카드단말기를 감싸안은 깡업자는 여인과 함께 보란 듯 객실 안으로 사라졌다.

“선이자 20%를 떼면 달라는 대로 돈을 줍니다. 연락처를 알아보려면 주차장으로 가보세요.” 여인의 말대로 주차장에는 깡업자들이 뿌린 전단형 명함이 눈에 묻힌 채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순금·차량 고가 매매, 담보 즉시 대출, 신용대출, 24시간 출장 상담….’

기자가 명함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자 로비에 있던 업자가 전화를 받는다. “객장 안만 아니면 어디서든지 가능합니다.” 카드 한도액 안에서 20% 선이자를 제한 돈을 줄 수 있다는 것.

앞서 ‘깡’으로 돈을 빌린 한 50대 여인의 경우, 카드 물품 구입 한도액 500만원어치의 순금과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형식으로 선이자 100만원을 뗀 400만원을 구해 게임을 시작했지만 네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돈을 모두 잃고 말았다.

깡업자의 대부분은 백운산 밑자락 카지노 전용도로(4.2km) 초입에 밀집한 전당포를 경영하는 업자들이다. 심지어 화물트럭 짐칸에 천막을 씌워 전당사 간판을 달아놓고 영업을 하거나, 아예 명함과 이동식 카드단말기만 갖춘 무점포의 전문 깡업자들도 있다.

올 1월 말 현재 이곳과 고한읍내에서 실제 영업을 하고 있는 전당포는 모두 40여개소. 전당포 사업자 등록을 낸 사람만 58명에 달한다. 고한읍내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이모씨(48)는 “카지노 개장(지난해 10월28일) 이전에는 전당포가 한 군데도 없었다”며 “개장 초 고한읍내 금은방 한두 군데가 전당포로 변하더니, 두 달 사이에 수십 개로 불어나 요즘은 멀쩡한 주택도 전당포로 바뀌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고한읍내와 도로 곳곳에는 전당포에 세를 주려는 광고가 범람하고 있다.

전당포로 대표되는 깡업자들의 숫자가 늘다 보니 이들 간의 업권 다툼과 경쟁 또한 심각한 상태다.

“처음엔 태백과 정선 출신 전주 몇명이 전당포를 시작했는데, 이게 돈이 되니까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전주와 사채업자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끼리 업권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당포 업주는 지난 12월 말 이들 간에 두 차례의 폭력사건이 발생했다고 귀띔했다. 서울의 전주가 텃새를 부리는 지역 전당포에 찾아가 1억3000만원을 1% 이자로 빌려달라고 떼를 쓰다 토착업자를 폭행했으며, 토착업자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서울업자들을 응징하려다 물리적 충돌로 번지기도 했다는 것.

사태가 이쯤 되자 지역 검찰과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지난 1월7일 강원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가 카드깡 업자 한 명을 불구속 입건한 것을 비롯해 나흘 뒤인 10일에는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이 3명의 전당포 업자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하지만 깡업자들은 검-경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카지노 호텔에서 날밤을 새우며 버젓이 영업에 나서고 있다. 단속반 스스로도 단속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사무실에 전화로 카드번호만 불러주고 선이자를 뗀 다음 현금을 주는 업자들도 있습니다(일명 텔레깡). 전당포법이 없어진 뒤 사업자 등록만 하면 전당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 위장가맹점 설치 사례가 잡히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단속이 어렵습니다.” 영월지청 김인수 계장은 깡업자를 단속할 수 있는 길은 ‘피해자의 신고’뿐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깡’ 폐해의 심각성은 업자들간의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꽁지’들이 손님들의 사행심과 대박에 대한 미련을 이용해 생활 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는 데 있다.

16일 새벽 2시 카지노 객장. 비교적 한산한 100원짜리 슬롯머신에 엎드려 잠을 청하던 김모씨(32·대구시 남구 대명동)는 피곤에 절은 몸을 일으켜 호텔 지하 1층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영업이 끝나 깜깜한 호텔식당 문앞에 웅크려 앉은 김씨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메가 잭팟 한 번만 터지면 본전을 메우고도 몇 배를 벌 수 있는데… 카드는 한도가 이미 넘었고, 통장에 있는 돈도 모두 날렸습니다. 결혼 반지도 팔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차밖에 없습니다.”

1.5t 화물차 영업을 하는 김씨는 지난 1월1일 신정 연휴에 이곳에 놀러왔다가 2주일 만에 전 재산을 모두 날려버린 불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했다. 처음에는 각각 다른 종류의 카드 석 장을 가지고 물품 구입한도까지 400만원씩 1200만원(선이자 300만원 제외)을 차례로 깡해서 일주일 만에 소진했다. 궁해진 김씨는 다시 꽁지들의 유혹에 넘어갔고 480만원이 든 통장을 담보로 잡히고 400만원을 빌렸으나 이 또한 나흘 만에 탕진했다. 호텔 객실비조차 없는 그는 블랙잭과 룰렛 게임의 조언으로 얻어지는 몇 푼의 손님 팁으로 100원짜리 슬롯머신에서 꼽추잠을 자며 지내온 터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는 결국 이날 자신의 영업 수단이자 생명줄인 화물차마저 팔기로 작정했다. 자신의 차로 읍내까지 내려간 김씨는 시가 900만원짜리 화물차를 400만원에 깡업자에 넘기고 다시 카지노로 향했다. 차는 검사증과 매매계약서만 넘겨준 채 다시 호텔 주차장에 놓여 있다. 일주일 내에 빌린 돈 400만원과 이자 80만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차는 그의 손을 떠나게 된다.

“차깡은 중고차 매매 시세의 40~60%를 쳐줍니다. 매매의 불확실성 때문이지요. 결코 폭리가 아닙니다.” 차깡 전문업자 이모씨(51)는 차깡의 정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요즘 카드깡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차깡이 성행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강원랜드 주차장과 읍내 곳곳에는 이들 깡업자가 담보로 잡은 외지 차량이 넘쳐나고 있었다.

고객들이 깡업자인 꽁지들에게 급전 대출의 대부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도 구조적인 허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깡’ 피해자들은 고한읍내의 농협 한 군데와 호텔 내 두 군데를 제외하곤 카드서비스가 되는 현금지급기가 전혀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여타 금융기관도 전혀 없으며 호텔 내 지급기도 카지노 객장이 가장 붐비는 밤 9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는 사용이 중지된다. 그마저도 일부 카드만 사용이 가능할 뿐 국민 비씨 등 유명카드의 사용이 제한되고 있어 무용지물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

“CD기가 중단되는 시간부터 꽁지들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지급기가 중지된 줄 모르고 박스 안을 두리번거리는 고객들은 모두 이들의 표적이 됩니다.”

깡 피해자들은 이 때문에 카지노측과 깡업자들 사이의 유착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카지노에 거액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고객들이 가장 돈을 많이 잃고 답답해할 시간에 이처럼 제반 금융시설 사용을 제한해 놓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 그러나 카지노측에서는 처음에 C은행과 현금지급기를 계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은행 지급기를 들여놓으려 해도 C은행이 반발해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농협도 현금지급기 설치를 검토했지만 별 실익이 없어 설치를 포기했다는 것.

실제로 15일 밤 9시부터 16일 오전 3시까지 꽁지 2, 3명이 현금지급기 박스 내부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깡을 권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카드깡, 차깡, 통장깡, 텔레깡 등 담보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깡’을 해주고 있었다.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은 “깡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 신고사항인 전당포를 허가제로 제한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며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스몰 카지노라 해도 금융기관들이 CD기 설치에 협조를 하는 등 카지노측의 금융 서비스 확대가 절실하다”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했다.

“죽고 싶습니다. 차비도 없는데 집에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16일 새벽 6시 카지노 폐장 시간이 다가오자 화물차 주인 김씨는 체감 온도 영하 30도의 칼바람 속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김씨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취재진의 귓가에 ‘꽁지’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 돈 더 필요하신 분, 놀다 가실 분….”





주간동아 2001.02.08 270호 (p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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