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콧구멍 파워’ 일내고 ‘캥거루 슈터’ 판 벌이네

올 프로농구 관전 포인트 …삼성·LG 돌풍, SK·현대 몰락, 동양 연패 언제까지

  • 입력2005-06-03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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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콧구멍 파워’ 일내고 ‘캥거루 슈터’ 판 벌이네
    겨울 스포츠의 꽃’ 프로농구가 벌써 2000∼2001 정규리그 일정 중 5분의 1을 소화했다(11월23일 1라운드 끝). 초반 삼성의 강세, LG 돌풍, 현대 SK의 몰락, 동양의 끝없는 연패 등 올시즌 프로농구의 관전포인트를 짚어봤다.

    예전과 같은 ‘반짝강세‘인가, 13년만의 우승 전주곡인가

    개막 후 최다연승(6연승), 1라운드 역대 최고승률(8승1패·0.889). 13년 만의 우승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농구명가 삼성의 기세가 드높기만 하다. 원조를 능가하는 ‘제2의 맥도웰’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최고신인 이규섭이 가세했다고는 하지만 그 위력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최근 3년간 시즌 초반에는 항상 연승했다는 점을 들어 ‘삼성 우승 불가론’을 지적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체력, 스피드, 점프력, 슈팅, 패스, 수비 등 농구의 모든 것을 갖췄다는 전천후용병 맥클래리는 ‘콧구멍 파워’(순간 공기 흡입량이 뛰어나 잘 뛴다는 뜻)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코트를 강타하고 있다.

    슈퍼신인 이규섭(1m98)은 ‘소리없이 강하다’는 평가처럼 우승후보 삼성에 화룡점정의 노릇을 하고 있다. 센터 못지않은 신장에 정확한 야투로 믿음직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 성실한 센터 무스타파 호프, 맥클래리와 트리플타워를 이루며 삼성 골밑을 10개 구단 중 최강으로 만들었다.



    또 강동희(기아) 이상민(현대)의 아성을 깨고 어시스트 왕국의 정권교체를 선언(현재 1위)한 주희정과 역시 3점슛 1위 탈환을 노리는 문경은의 컨디션마저 절정을 보이며 최강의 베스트 5가 구성됐다.

    여기에 강혁 김희선 이창수 강병수 박상관 등이 버티는 주전급 식스맨들과 김동광-안준호-이민형으로 이어지는 안정된 코칭스태프까지 곁들여져 삼성은 좀 심하게 표현하면 ‘무결점의 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에 이어 단독 2위(7승2패)로 1라운드를 마친 LG는 프로농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일단 지난 시즌 7위에 머문 팀이 7개월의 ‘에어컨리그’를 거치며 순식간에 강팀으로 변모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먼저 LG의 간판으로 자리잡은 조성원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현대시절 고교 후배 이상민에 가려 2인자(때로는 추승균에도 밀렸다)로 내려앉은 조성원은 지난 시즌 후 연봉협상이 여의치 않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LG로 이적해왔다.

    ‘이상민 맥도웰이 없는 조성원은 위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조성원은 현대시절을 능가하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대시절 25분 안팎을 뛰었지만 이제는 거의 풀타임을 뛰며 매 경기 30점 이상을 올리고 있다. 45%에 달하는 신기의 3점슛 성공률, 국내 최고의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골밑 돌파. LG는 오히려 조성원이라는 물고기에게 ‘물’이 된 셈이다. 몇몇 스포츠신문에서는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보기 드문 슈터라며 ‘조성원 특집’까지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고졸 출신으로 프로농구 사령탑까지 오른 김태환 감독은 ‘작전의 명수’로 불리며 LG를 가장 재미있고 화끈한 팀으로 변모시켰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평균 100득점을 돌파하는 팀. 그만큼 공수전환이 빠르고 경기가 흥미롭다.

    공격농구를 표방하며 거의 매 게임 새롭고 신선한 작전을 구사해 프로농구계에 때아닌 공부열풍까지 몰고 왔다. 또 선수를 평가하는 눈이 뛰어나 용병 에릭 이버츠의 발탁, 트레이드를 통한 조성원 조우현 쌍포 구축 등 손대는 것마다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콧구멍 파워’ 일내고 ‘캥거루 슈터’ 판 벌이네
    올라서는 팀이 있으면 반대급부로 하강세의 팀이 있게 마련. 아직 섣부른 판단은 이르지만 최근 정규리그 3연패에 빛나는 현대와 지난 시즌 우승팀 SK의 고전이 눈에 띈다.

    두 팀 모두 4승5패로 5할 승률에도 못미치며 중위권으로 밀려나 있다. 먼저 현대는 용병선발의 실패, 조성원 방출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현대는 지난 시즌 ‘괴물센터’로 평가받은 로렌조 홀을 놓쳤다. 재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홀이 “팀이 맥도웰만을 높게 평가한다”며 ‘삐지는’ 바람에 묶어두지 못했다. 재계약 실패 이유가 우습기까지 하다.

    둘째, 샐러리캡(팀 연봉상한제) 탓이라고는 하지만 조성원을 LG의 양희승과 맞바꿔버린 아픔이 크다. 조성원이 체력이 약하고 키가 작아 수비에서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돈 3억원과 함께 장신슈터 양희승을 받아들인 것. 하지만 7일 현대-LG전(창원)에서 봤듯이 조성원은 풀타임을 뛰며 양희승 위에서 리바운드 볼을 걷어내는 등 공수에서 모두 양희승을 압도했다. 현대구단 직원들조차 “트레이드를 없던 것으로 할 수 없을까”라며 농담을 했을 정도.

    현대가 개막 전 다소 고전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반면 SK는 V2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위세가 당당했다. 그래서 부진은 더욱 충격적.

    33세의 나이든 용병 재키 존스와 슈터 조상현의 초반 부진이 큰 원인이 됐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불행은 몰려온다’는 속담처럼 팀의 기둥 서장훈이 손가락 부상으로 두 달 가까이 쉬게 돼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여기에 루키 포인트 가드 임재현이 황성인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우지 못해 아직 조직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인선 감독이 중앙대 후배 임재현을 키우기 위해, 울고불고 난리를 친 황성인을 반 강제적으로 상무로 보낸 사실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대구 동양은 전희철 김병철 등이 군입대로 빠진 98∼99시즌 ‘세계기록’이라는 32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그때는 꼴찌를 각오하고 신인 박재일까지 군대에 의도적으로 보낸 탓에 변명의 여유라도 있었다.

    동양은 1라운드에서 9전 전패를 당했다. 모든 팀들에 한번씩 진 것이다. 32연패를 할 때도 개막 후 9연패의 수모는 맛보지 않았다. 더욱이 올시즌은 32연패 수모를 한번에 갚아주겠다던 바로 그 시즌. 한 해 먼저 제대한 전희철을 비롯, 김병철 박재일까지 돌아왔다. 외국인선수도 2순위로 뽑아 유리했다. 코칭스태프도 벤치도 지난 시즌 도중 최명룡 감독-김진 코치로 정비했다. 동양 팀 자체는 물론, 농구인들과 언론에서도 3강 혹은 우승후보라고 점쳤다. 그래서 동양의 끝없는 연패는 불가사의하다.

    원인은 조직력 부재. 특급 포인트가드(1번)가 없어 타고난 슈팅가드(2번) 김병철을 1번으로 돌렸으나(농구인들은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센터를 각각 1번에서 5번까지 숫자로 부른다) 일단 이것부터가 실패했다. ‘차분하기’보다는 ‘신바람 스타일’인 김병철에게는 무리였던 것이다.

    여기에 전희철 조우현 박재일 등이 모두 개인기가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떨어지는 ‘비슷한 포지션의 비슷한 플레이’를 구사, 모래알 팀이 돼버리고 말았다. 전체 2순위로 뽑은 출중한 개인기의 소유자 데이먼 플린트도 같은 계열. 결국 용병을 새로 뽑거나 트레이드를 했고, 조우현을 LG 박훈근과 맞바꾸기도 하는 등 잇단 긴급처방을 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우승후보 동양의 9연패는 농구에서 몇몇 스타보다는 조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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