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DJ 경제 대처 너무 안이하다”

구조개혁 성과 없어 전방위 불안 요인… 위기상황 인정하고 “고통 나누자” 설득이 최선

  • 입력2005-06-01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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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 경제 대처 너무 안이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리더십이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노동계의 12월 총파업 경고 및 농민 대규모 시위 등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데다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 등 불안 요인이 겹치고 있기 때문. 더욱이 대만 통화 불안 등 97년 동남아 외환위기 당시를 연상시키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어 자칫 제2의 외환위기를 맞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의 관심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김대통령이 현 상황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려고 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지난 97년의 환란 경험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현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 김대통령의 언론 인터뷰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김대통령이 현재 상황을 결코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리띠 더 졸라매자’ 악역 제대로 수행에 의문

    김대통령은 11월13일 SBS 창사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현 경제상황과 관련, “상황이 좋지 않긴 하지만 내년 2월 이후가 되면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다시 나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지금 현재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한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도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들어 ‘동남아시아와의 차별성을 위해서도 구조조정을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김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전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현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철저한 구조조정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구조조정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국민에게 앞으로 상당한 기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김대통령이 그같은 ‘악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

    외국계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오히려 환상만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경제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2~3년 내에 금방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해 경기가 조금 좋아졌다고 해서 “1년 반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 국민의 기대 수준을 높여놓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내년 하반기부터 경제가 좋아질 가능성이 낮고, 오히려 몇 년간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도 정치적인 업적 과시용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인호 전 경제수석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국민이 제기했을 때 이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전제하고 “IMF 초기 국민 모두가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 같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98년 말 시작된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로 경기가 조금 살아나자 김대통령이 ‘외환위기 극복’을 선언, 국민의 긴장감이 풀어졌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제기되는 각 이해집단의 요구를 설득하는 작업이 더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김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외환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선 내년 2월까지 4대 부문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부터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구조 개혁이란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도 내년 2월까지만 하겠다는 것은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면서 “외환위기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없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다”고 비판했다.

    물론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민의 정부는 경제위기의 원인을 일시적인 외환유동성 부족이 아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으로 전환하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동은 그런 인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수십년 간 누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외환위기가 왔다고 인식했다면 강경식 전 부총리나 김인호 전 경제수석 등을 사법처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가 단지 몇 사람의 잘못 때문에 왔다는 단편적인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는 이야기다.

    이 애널리스트는 “지금까지 구조개혁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해외투자자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김대통령이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에 비해 많이 변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업의 투명성에서는 여전히 기대 이하이고, 금융구조조정이란 것도 내용을 살펴보면 공적자금만 쏟아부었지 은행이 과거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해외투자자들의 평가가 늘고 있다는 것.

    김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대한 문제 못지않게 인사 실패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고려대 경영학부 장하성 교수는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IMF 프로그램을 따르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기존 경제관료들을 등용해도 별 문제가 없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은 여전히 기존 관료들을 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료들이란 속성상 책임질 일은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해야 했던 올 봄 이후에는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김대통령의 대표적인 인사 실패 사례로 금년 8월7일 개각에서 진념 장관을 경제팀장으로 발탁한 것을 든다. 김대통령은 개각 다음날 국무회의에서 “4대 부문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면서도 “가장 뒤져 있는 부분이 공공부문”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이 발언대로라면 공공부문 개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했어야 할 진념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꾸로 재경부 장관으로 발탁, 앞뒤가 맞지 않는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 셈이 됐다는 것.

    국책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은 IMF 초기 국민들이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등 개혁을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경제팀을 쇄신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경제팀으로는 시장의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힘들고, 개혁 추진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몇 년 동안 고통스런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외환위기의 근본 원인이 1년 반 만에 결코 해소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솔직히 밝히고, 국민 모두가 고통스런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일이다. 그것이 비록 인기없는 정책이라고 해도 현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좌초 위기에 몰린 한국 경제는 김대통령의 진솔하고 적극적인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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