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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13>|1981년 전두환의 미국 방문과 김대중 구명①

“김대중 살리려면 전두환 자극 말라”

미 국무부 “합법성 확보 땐 김대중씨 망명 고려 가능성” …레이건 대통령 전두환 방미 초청

“김대중 살리려면 전두환 자극 말라”

“김대중 살리려면 전두환 자극 말라”
1981년 2월 카터의 연임을 막고 민주당 정권을 거꾸러뜨린 공화당의 신임 레이건 정권은 역시 새로 집권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맞을 채비를 한다. 레이건과 카터의 선거전이 한창이던 1980년 8월23일, 육군 대장 전두환은 전역식을 했고, 군복을 벗은 지 아흐레 만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12·12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면서 미국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던 전두환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 방문을 추진했고, 레이건 정권 출범과 거의 동시에 방미를 성사시켰다. 레이건이 초청하는 형식이 취해졌다.

전두환의 방미는 철저한 한미간 뒷거래의 산물이었다. 전두환의 방미 10일 전인 1월22일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가 헤이그 미 국무장관 앞으로 타전한 ‘레이건-전두환 회담을 위한 의제 제안’이라는 제목이 붙은 2급 비밀(Secret) 전문이 이러한 양국간 타협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방미의 정치적 중요성’이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번 방미는 전두환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그들의 주요 동맹(미국:역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힘을 강화하게 되는 뜻 깊고 중요한 발전인 동시에, 북한에 대한 한국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세계 다른 국가들과 한국과의 관계를 좀더 정상화시키는 길로 나아가게 할 것임.

전두환 대통령은 상당 부분 이번 방문이 김대중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결정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임. 그러나 그는 그의 방문이 노골적인 흥정거리(a crude trade-off)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며, 우리가 한국의 정치 발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임.



사실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가 한국 국내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랄 것이며 우리가 안보 공약, 미군 주둔, 경제 협력 관련 사항들을 신중한 방법으로 확고하게 재확인해 준다면 우리들의 견해를 들어줄 것임.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내:역주) 반대파의 잠재적인 비판의 소리를 깨닫게 될 것임. 예를 들면 강경파들은 전두환 대통령이 조속히 정상회담을 성사하기 위해 김대중에 대해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고 비판할 것이고, 또 다른 쪽(한국 내 반정부 인사들:역주)은 한국 국내 정치 완화(moderation)에 대한 충분한 보장 없이 우리가 관계 정상화를 지나치게 서둘렀다고 주장할 것임.

본인의 추측으로는, 일부에서는 그의 방문에 대해 상반된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결국 한국의 국가 원수가 새 행정부가 들어선 워싱턴을 방문하는 두번째 외국 지도자가 되는 것을 좋아할 것임.’

미국 일부에서도 전두환의 방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특히 미국 내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각인돼 있는 김대중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전두환 정권을 곱게 볼 리 없었고, 적지 않은 수의 미국 내 민간단체와 인권운동 인사들이 김대중 구명운동에 앞장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 천주교협의회 사무총장인 토마스 켈리(Thomas C. Kelly) 주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전두환 방미는 한-미 뒷거래 산물

전두환의 방미 아흐레 전인 1981년 1월23일, 켈리 주교는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낸다. 방미하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김대중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는 요청서였다. ‘김대중씨의 신병 치료와 미국 내 체류를 위해 조지타운 대학과 협의를 끝냈으며, 아메리칸 대학 및 하버드 대학과도 상의중이다, 물론 이런 요청을 하는 주된 이유는 위험에 처해 있는 김대중씨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며, 사형을 종신형으로 감형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켈리 주교 서한의 주요 내용이다.

국무부에 접수된 켈리 주교의 이 서한 역시 국무부 비밀문서철에 보관되어 오다가 지난 1996년 7월26일에 비밀 해제되었다.

켈리 주교의 이 서한이 헤이그 국무장관에게 발송되었을 때 이미 레이건 정권은 전두환 정권과 김대중 사안에 대한 깊숙한 거래를 끝낸 다음이었다. 그러나 국무부가 켈리 주교의 서한을 무시할 처지는 못되었다. 미 천주교를 대표하고 인권운동의 앞줄에 서 있던 켈리 주교 및 인권 NGO들의 목소리는 레이건 정부로서는 부담거리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국무부 고위 관리들은 전두환 정권을 상대로 이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활용할 필요도 있었다. 미 국내 여론을 도닥거려 전두환의 방미에 흠집이 생기지 않게 하는 동시에, 김대중 건을 물고늘어지는 여론을 업고 전두환 정권에 계속 압박을 가하는 두 갈래의 해법이었다. 다만, 전두환 정권과의 타협을 통해 김대중씨가 결국에는 감형 조치를 받고 미국으로 오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국무부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국무부 아태 담당 차관보 마이클 아마코스트가 헤이그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켈리 주교 서한 건’이 미 국무부의 이 해법을 담고 있다. 켈리 주교의 요청 서한이 발송된 사흘 후인 1월26일자로 된 이 비밀문서는 3급 비밀(Confidential)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켈리 주교 서한과 함께 역시 1996년 7월 같은 날에 비밀 해제된 것이다.

‘현안:토마스 켈리 주교가 전두환 대통령의 2월 공식 방문 때 한국 야권 정치인 김대중씨 석방 문제가 거론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음. 켈리 주교는 이미 김용식 주미 대사에게 한국 정부가 김대중씨를 신병 치료와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음. 켈리 주교는 이 문제와 관련, 이달 마지막 주에 장관께 전화를 할 것임.

배경:김대중씨 석방 및 해외 정치 망명 문제는 새로운 사안이 아니며, 지난해에 이미 하버드 대학에 연구원으로 체류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통보한 바 있음. 김대중씨 자신이 지난 주 사형에서 감형되기 직전에 향후 정치 활동을 포기하기로 약속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석방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고, 해외 망명이 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임. 지금 전두환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시간이 아주 적절치 않음(most ill-timed).’

시간이 아주 부적절하다는 아마코스트 차관보의 이런 견해에 대해 헤이그 장관은 자필로 ‘물론임. 절대적으로 그러함!(absolutely!)’이라는 강조의 표시를 해놓았다. 다음에 이어지는 아마코스트의 견해 속에는 김대중 구명 건을 둘러싼 미 국무부의 정치적 고려가 드러나 있다.

‘한국 정부 내에서 김대중씨 처형을 집요하게 주장했던 사람들도 지금 김대중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음. 김대중씨는 미국과 일본의 압력으로 계속해서 초점 인물이 될 것이며 미국과 일본이 한국 내부 문제에 간섭하게 되리라는 것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을 안심시켜, 전대통령으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결심을 하게 만들어 김대중씨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함.

조기 석방 및 해외 망명을 성사하기 위해 지금 김대중씨의 위상을 거론하게 되면 원망을 사게 될 것이며 부작용이 생길 것임.

한국의 새 정부가 몇 달 후 안정을 찾고 그 자체로 합법성을 확보하게 되면(그런 상황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이 적지 않은 기여를 하게 될 것임), 김대중씨를 해외로 풀어주는 것을 고려하게 될 것임. 종신형은 적절한 절차를 걸쳐 분명히 더 감형될 가능성이 있으나, 지금 당장은 아님. 아메리칸 대학 및 미 천주교협의회 등 민간 단체들이 김대중씨의 한국 출국을 촉진시키기 위해 가능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 유용하며, 그 민간 단체들을 방해해서는 안 될 것으로 확신함.’

이 비밀문서 끄트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권고 사항이 덧붙여 있고, 헤이그 국무장관은 이 권고 사항의 ‘승인’난에 자신의 이니셜로 결재를 해놓았다.

‘켈리 주교와 통화 시 우리도 민간단체들이 김대중씨의 해외 여행을 촉진시키는 가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하고 있음을 통보하기 바람.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에 개입해야 되는지,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아주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함. 감형 결정이 나자마자 해외에서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보다는 냉각기를 가지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임.’



주간동아 2000.11.09 258호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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