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한번도 감옥에 간 적이 없다. 일반인이라면 사소한 주먹질만으로도 감옥살이를 하기 십상인데 이상하게도 신씨는 집행유예와 벌금형만 선고받았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재벌2세 신씨의 ‘탈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씨는 10월26일 새벽 술에 취해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한 경찰관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고를 저질렀다.
폭행·대마 흡입 등 화려한 전과경력
서울 강남경찰서 삼성2파출소 이영완 경장(44). 그에게 10월26일 새벽은 다시 기억하기 싫은 ‘악몽’이다. 이날 오전 2시14분, 이경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순찰차를 타고 강남구 삼성동 일대를 순회하고 있었다. 이때 112지령실로부터 긴급무전이 날아왔다. “테헤란로 포스코 빌딩 맞은편 한솔신용금고 앞 4차로에 대형사고 위험이 있는 음주차량 신고, 검문 바람.” 마침 테헤란로 인근을 순찰중이던 이경장은 2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48마89××호 아카디아 승용차가 굉음을 내며 공회전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이경장은 순찰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접근했다. 경찰관임을 밝히고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자 운전자 는 술냄새를 심하게 풍기며 “이 차가 무슨 찬줄 알아? 롯데그룹 차야”라고 소리쳤다. 바로 신씨였다. 신씨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 이모씨(25)와 장난을 치며 이경장의 검문을 비웃고 있었다.
이경장의 검문에 신씨는 계속 응하지 않았다. 이경장은 할 수 없이 운전석 옆문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 아카디아 승용차가 급후진하기 시작했다. 이경장은 열려 있는 문짝 위 창틀을 꽉 잡았고 승용차는 5m 뒤편에 주차해 있던 그랜저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그 반동으로 문짝이 닫히면서 이경장의 손이 문짝과 차체 사이에 끼여버렸다. 그러나 이경장은 문짝을 놓지 않았다.
신씨의 승용차는 다시 급발진을 하면서 테헤란로 선릉역 방향으로 10m쯤 달려나갔다. 이경장은 문짝에 매달려 발을 오무린 상태에서 운전석에 꽂혀 있는 키를 빼앗기 위해 손을 넣어봤지만 실패했다. 이경장이 차에서 떨어지지 않자 신씨는 후진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문짝에 낀 이경장의 손에는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경장은 문짝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손을 떼는 순간 차도로 튀어나가 지나가는 차에 깔려 부상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차를 다시 직진시키면서 신씨는 이경장의 배를 왼쪽 팔꿈치와 주먹으로 내려쳤다. 배를 얻어맞은 이경장은 테헤란로 한복판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 순간 이경장은 ‘이젠 죽었구나’고 생각했다. 바로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질주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용차는 급히 핸들을 꺾으며 이경장 곁을 스쳐 지나갔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승용차 운전자의 고함소리에 놀란 이경장이 정신을 차릴 때쯤, 신씨는 테헤란로 2차선과 3차선을 달리던 영업용 택시와 코란도 밴을 차례로 들이받은 뒤, 선릉역 방면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이 사고로 코란도 밴이 뒤집혀 운전자와 승객이 큰 부상을 입었다. 이경장은 발목과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일어나 걷기조차 힘들었지만 이경장은 동료가 몰고 온 순찰차까지 기다시피 걸어가 동료와 함께 신씨를 추격했다. 추격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신씨는 지하철 선릉역 8번 출구 옆 외환은행 삼성지점 앞에 차를 버린 후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경장은 순찰차에서 내려 신씨를 쫓아갔고 마침내 신씨를 검거했다.
“총을 쏘겠다고 몇번이나 위협했지만 듣지 않아 죽을 힘을 다해 따라갔어요. 멱살을 잡고 넘어뜨린 후 검거했습니다. 신씨는 파출소에 도착한 뒤에도 탁자 위에 올라가 발길질을 해대는 등 난리를 쳤습니다.”
이경장은 신씨를 파출소에 인계한 후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1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요추간판탈출증(척추디스크)과 전신 타박상, 우측 발목 탈골 판정을 받은 이경장은 강남의 모신경외과 병원에서 척추수술을 준비중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뼈가 부러져도 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인간적인 정신력이 필요하지요.” 이 병원 원장은 척추를 다친 이경장이 추격전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죽음을 무릅쓰고 범인을 검거한 이경장은 치료비 때문에 고민에 빠져 있다. 병원측으로부터 치료비의 보험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 신씨가 몰고 다니며 사고를 낸 차량이 신씨 소유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제는 복잡하게 얽혔다. 신씨는 자동차보험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고, 사고차량의 소유회사인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냉동주식회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치료비 변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기억 하나도 안 난다” 변명 일관
신씨의 사고와 관련, 롯데측은 회사와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다. 롯데그룹 기업문화실의 한 관계자는 “신씨는 계열사의 임원이 아니며 직원이었던 적도 없었다. 신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량의 소유주인 롯데냉동은 “신씨가 사고를 일으킨 차는 우리 회사 차가 맞다. 그러나 신씨가 그 차를 어떤 경위로 사용했는지는 모른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강남의 중식당에서 소주를 먹고, 압구정동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양주 맥주를 먹은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10월27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음주운전(혈중 알코올농도 0.246%)과 도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재벌 2세 신씨는 ‘거짓말 같은 변명’만 늘어놓을 뿐, 이경장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씨는 이번에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