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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청학동 댕기동자와 대롱밥

기력 돋우고 성격 다잡는 仙食

  • 송수권

기력 돋우고 성격 다잡는 仙食

기력 돋우고 성격 다잡는 仙食
‘동이주막’(東夷酒幕)의 ‘대롱밥’은 청학동(靑鶴洞)에 걸맞은 이름이다. 지리산 삼신봉 아래 첫 동네 동이주막에서 파는 신선주(神仙酒) 또한 말이 된다. 주주객반이라는데 어찌 술이 따르지 않을 수 있으랴. 술은 끓어 넘치고 대롱 속에서 익어가는 오곡의 청미한 잡곡밥은 온 뜨락에 청백일절(淸白一節)의 죽향(竹香)을 토한다. 이른바 신토불이의 맛과 메시지가 향으로 가는 경우다.

‘대롱밥’이란 3년 이상 자라난 왕대를 대통(대롱)으로 잘라내어 그 대통 속에다 그대로 잡곡을 넣고 압력솥에 넣어 쪄낸 밥을 말한다. 대의 성분인 죽황과 죽력(竹瀝)이 배합되어 체내의 청기를 고양시키는 선식(仙食)의 일종이다. 그 맛은 무미건조하지만 냉한 기운에 평성을 띠고 있어 기력을 회복시킨다. 평성(平性)의 음식을 먹으면 병이 없고, 성격(기질)이 온화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더운 음식과 찬 음식을 섞어서 기를 중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리밥에 풋고추를 먹는 것은 찬 기운의 보리밥과 더운 기운의 고추를 먹음으로써 평성으로 돌아가는 이치다.

외유내강의 성품을 지닌 대의 품종에는 왕대, 솜대, 시누대, 포리대, 오죽, 맹종죽 등이 있는데 왕대와 솜대의 죽순이 초물과 두물은 잘 올라가는데(하루 1m), 세물은 충해를 입는다 하여 식용으로 쓴 데서부터 죽순요리는 다양하게 발전했다. 또한 대를 잘라 마디에 괸 물을 받아 약을 달이는데 이를 반천하수(半天河水)라고 한다. 제주 ‘빙떡’을 쓰면서 때죽나무를 타고 흐르는 물을 ‘참받이물’이라고 소개했는데, 이 ‘참받이물’이 해를 거를수록 물맛이 좋아진다는 것은 제주 중산간 마을 사람들만이 아는 지혜다.

왜 하필 때죽나무인가. 이는 곧 반천하수의 성분 때문이 아니겠는가. 연잎이 토해낸 이슬을 받아 빚는 술을 연엽주(蓮葉酒), 댓잎에 괸 이슬을 받아 빚는 술을 죽엽주(竹葉酒), 또는 감로주(甘露酒)라고 한 데서 대의 성품을 닮으려 했던 선인들의 멋과 슬기를 읽을 수 있지 않는가. 따라서 서해의 소금과 대가 만나면 죽염(개암사 죽염), 청학동의 대숲 바람 소리와 잡곡이 만나면 동이주막의 ‘대롱밥’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시대에 와서 ‘대롱밥’의 원조가 된 강대주씨(055-883-3934)야 말로 음식의 기초를 읽어낼 줄 아는 경험 철학자라고 할 것이다. 지금은 이 음식이 양평의 두물머리나 대가 없는 강원도 산간까지 퍼지는 것을 보면 한국인이야말로 멋과 가락을 아는 민족임을 실감한다. 그것도 특히 ‘청학동’이란 이름을 얹으면 신선이 되어 금방 달려오는 그 냄비기질이라니!



그러나 이제 청학동은 전설에 나오는 그 청학(靑鶴)이 알을 품는 땅이 아니다. 동이주막의 그 ‘동이’(東夷)는 동쪽에 사는 활 잘 쏘는 사람 즉 ‘대인’(大人)들이 머물고 있는 땅이 아니다.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라는 ‘OK 빌리지’가 길을 막고, 하동댐이 들어서서 길을 막고 있다. 참으로 따뜻한 동황토(東黃土)에 알을 품고 싶었던 그 전설의 땅은 죽고 없다. TV매체가 얼굴을 가린 채 죽여놨고, 언론매체들이 지금도 ‘댕기동자’니 신선이니, 우성재야 우성재야(牛性在野·청학동의 신흥종교인 갱정유도)의 기도문을 빌려다 죽여놨다. 삼신봉에 삼성궁을 지어놓고 단군시대의 솟대마을을 흉내내곤 있지만, 집집의 추녀 끝을 보면 시멘트 지붕에 억새(산갈대)로 엮은 이엉 한 장이 분단장을 하고 있다. 대롱밥과 신선주를 나르는 그 수발든 아이는 댕기동자가 아니라 노랑머리 ‘단풍칠’을 한 아이다.

괜히 좋은 공기 썩혀서 대숯을 보따리로 내려보내는 대밭 무너지는 소리가 청학동에서부터 들린다. 그러므로 10년 이내에 이 땅에는 관광버스 한대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러나 청학동천(靑鶴洞天)--세상의 밥이 썩어가도 동이주막의 ‘대롱밥’ 하나만은 민족의 식탁에 남아야 한다.



주간동아 2000.10.26 256호 (p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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