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舊동독 여성들 암울한 통일시대

독일 통일 후 고실업·저임금 시달려…젊은층 일자리 찾아 서독 지역으로 이주 붐

  • 입력2005-06-29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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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舊동독 여성들 암울한 통일시대
    지난 10월3일 치러진 독일 통일 10년 기념 자축 행사는 집권 사민당과 기민당의 통일 논공행상 설전장으로 변해 시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사민당의 초청을 받지 못한 기민당은 자체로 마련한 기념행사를 정치 비자금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통일수상 콜’의 정치적 복권 기회로 이용했다. 기민당은 통일 논의 당시 사민당의 유보적 태도를 상기시키며, 이제 ‘콜’의 역사적 공헌마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며 사민당 총리 슈뢰더와 정부 각료들을 비난했다. 정부와 사민당은 통일의 과정에서 생긴 많은 오류들은 98년 가을까지 정권을 담당했던 기민당의 실책에 기인한 것이라며, 당시 야당으로서 사민당이 통독의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실을 기민당이 왜곡한다고 응수했다.

    두 거대 대중정당은 통일독일의 ‘10년 결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이에 기여한 자신들의 공을 과시하기에 급급했다. 통일 10년의 기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길거리로 나섰던 구동독 주민들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특히 구동독 여성들은 통일이라는 엄청난 변혁 속에서 가장 피해가 심했고 여전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정치가들에게서 자찬(自讚)의 목소리보다는 자신들을 배려하는 정치적 구상을 더 듣고 싶어했다.

    통일 10년이 지난 지금 신연방주(구동독)의 여성들은 고실업과 저임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일 전인 80년대 후반 구동독 여성의 노동률은 약 80%였다(구서독 55%). 그러나 90년대 중반에는 신연방주의 여성 노동인구와 일자리를 찾는 여성의 비율이 74%로 낮아지고, 반면에 구연방주(구서독)에서는 60%로 늘어났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돼 현재 신연방주의 여성취업률은 전체 취업연령 여성의 56%(구연방주 55%)로 4, 5년 사이에 급격히 낮아졌다.

    예를 들어 1995년 신연방주 튜링엔 지역의 경우 전체 실업률 16.3%에서 여성이 62%를 차지한다. 특히 55세 이상의 여성들과 독신으로 자녀를 기르는 여성들의 경우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매력이 없는 노동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신연방주 여성들의 근로 의욕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신연방주의 경우 여성 노동잠재력의 82%가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구서독 60%).



    신연방주 여성들이 이처럼 왕성한 근로의욕을 보이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일하지 않을 경우 남편이나 파트너, 또는 노동국이나 사회복지국에 종속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 구동독 출신의 여성들은 실업을 남녀 차별과 사회적 고립으로 느낀다. 과거 계획경제 시절에는 노동이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노동의 장소는 단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개인적 접촉의 사회적 공간이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의 ‘대용’ 공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구동독 여성들은 ‘실직’을 두려워한다. 실직은 자신이 쓸모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통독 이후 신연방주 여성들이 대량 실업사태를 맞은 것은 구동독 산업의 몰락과 서독식 산업구조로의 재편에 따른 노동의 구조적 변화 때문. 구동독에서 여성의 직업노동은 여성 고유 직종에 집중되어 80년대 말에 직업교육을 받은 소녀들은 16개의 직종에 분산돼 있었다. 대표적 직종으로는 섬유, 의복, 피혁산업, 상업, 은행, 호텔, 음식점 및 서비스업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통독 후 근로자의 90%가 여성이던 섬유산업은 구조개편의 기회도 없이 몰락해 버렸고, 여성들이 집중된 다른 분야에서도 여성 실업자들이 속출했다.

    뿐만 아니다. 과거에는 남성들의 일자리로 인정받는 분야에서도 구서독과는 달리 상당수의 여성이 진출해 있었다. 예를 들어 기계와 자동차, 건설 분야에도 여성근로자 비율이 과거에는 28%나 되었는데 지금은 15%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러가지 재취업 교육조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시절에 숙련된 노동력으로는 서독화된 노동시장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구동독 여성들이 실업과 함께 통일 후 체감하는 가장 큰 불이익은 저임금, 즉 남녀간의 임금 격차다. 구동독 여성들의 임금수준은 통일 후 10년이 지난 지금 직종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독 남성의 70%, 서독 여성의 85~90% 정도 수준이다. 이는 구동독의 임금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은 데다, 여성들의 저임금 현상이 복합됐기 때문이다(표 1 참조).

    신연방주의 실업과 저임금은 구동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 주민들의 서독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자유를 찾아온 반면 지금은 일자리를 찾아온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주자 중에는 젊은 여성들이 가장 많다.

    신연방주는 통독 후 주민수가 감소, 1990년의 1600만명에서 1999년 약 1520만명으로 줄었으며 이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의 불안정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녀 갖기를 거부하고 있는 데다(표2 참조)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난으로 인해 상당수의 영아원과 유치원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구동독 시절에는 직업 여성들을 위해 보육원이 완벽하게 운영되었다. 당시 일하는 어머니는 구동독 지역에서 당연한 여성상이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 토양을 가진 구서독과 반종교적, 사회주의적 색채를 지닌 구동독 체제의 차이점은 지금도 신-구연방주 여성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유부녀와 미혼모 출생률의 차이는 동-서독 출신 여성들의 가치관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표2 참조). 신연방주에서는 미혼모가 절반이 넘는 반면 서독에서는 미혼모가 18%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난다. 신연방주 여성들은 결혼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녀 양육을 결혼과 동일시하지 않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구연방지역이 여전히 기독교적 가정윤리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신연방주에서는 구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무종교적 삶과 남녀 평등원칙이 확고히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신연방주 여성들에겐 결혼은 하지 않으나 아이의 아버지와 양육을 함께 분담한다는 의식이 보편화되어 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아이를 혼자 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과감성’은 신연방주 여성들의 의식조사를 통해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신연방주 여성들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증가하는 실업률과 저임금에도 불구, 20~30대의 구동독 출신 젊은 여성들 중에는 ‘통독의 행운’을 ‘열린 교육의 가능성’으로 연결하며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다. 신연방주의 여성들은 이들 젊은 여성이 중년이 되었을 때, 동서독 출신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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