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26명 정상’ 머리털 한올까지 지켜라

ASEM회의 경호 비상…지난 30년간 각종 시위 진압한 노하우 십분 활용

  • 입력2005-06-29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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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명 정상’ 머리털 한올까지 지켜라
    제3차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ASia Europe Mee ting)가 10월2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회의장에서 열린다.

    아셈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대표적인 다자간 정상외교 무대다. 에이펙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남북미 국가들과 정상외교를 펼치는 무대고, 아셈은 아시아 국가 수반들이 유럽 국가의 정상들과 만나는 자리다.

    제3차 아셈에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10개국 정상(베트남은 부총리가 참석), 유럽에서는 15개국 정상(벨기에도 부총리 참석)과 EU집행위원회 의장이 참석한다. 한국을 제외하면 도합 25명의 정상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정상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전무한 일이다. 1948년 건국 이후 두 나라 정상이 동시에 한국을 방문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나 역대 대통령 취임식 때도 외국은 정상 대신 특사를 파견했다.

    이렇게 많은 정상이 오게 되자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하기로 한 회담 자체에 못지않게, 한국 대통령을 포함한 26명의 최고 VIP를 경호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제3차 아셈은 한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인 만큼 정상 경호는 우리 대통령 경호실이 주도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 경호실 인력으로는 이렇게 많은 정상을 완벽히 경호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국정원과 군-경찰청 등 경호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사 기관의 인력이 총출동한다.

    미국 시애틀에서 WTO 회담이 열렸을 때와 스위스 다보스에서 IMF 회의가 열렸을 때 그곳으로 몰려온 세계 NGO(비정부기구)들은 회담을 중단시킬 정도로 과격한 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다자간 회담이 열릴 때마다 유행처럼 벌어지는 NGO들의 과격시위는 요인 경호를 위협하는 첫번째 위협이 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민중대회위원회-민간단체포럼 등 국내 NGO들도 이번 3차 아셈 기간 중에 각종 집회를 벌임으로써, 그들의 주장이 아셈 취재를 위해 서울에 온 1200여명의 내외신 기자단을 통해 세계로 전파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위를 막는 것은 경호의 핵심 업무가 되고 있다.



    정상들에 대한 경호와 NGO들의 시위를 유기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대통령 경호실과 국정원-군-경찰청 경비교통국은 ‘아셈 경호안전통제단’을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요인 경호는 외부 상황이 시끄러울수록 불안해진다. 즉 정상회담장 주변에서 일어난 시위 규모가 커질수록 요인 경호 부담은 몇곱절로 배가되는 것이다. 때문에 NGO 단체들을 회담장과 요인들이 묵는 곳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급선무다. 시위 진압은 주로 경찰이 담당한다.

    아셈경호안전통제단은 이를 위해 그림에서처럼 세 단계 차단책을 마련했다. 최외곽인 제1차단선에는 방패를 든 의경부대가 시위대를 진압한다. 2차단선 안쪽은 특별치안 강화지역으로 설정했는데, 시위대가 이 선을 돌파하면 경찰은 살수차(물대포)와 다연발차, 장갑차 등을 동원해 초강력 진압을 시도한다. 3차단선 안쪽인 아셈 회담장 주변에는 시위대는 물론이고 아예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킨다는 계획이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기습 시위를 벌일 것에 대비해 기동타격대를 운용한다.

    이러한 차단안과 별도로 관계당국은 국내 NGO 단체들이 강북에서 집회를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민중대회위원회를 이끄는 민노총 등과 접촉해 이들이 아셈 기간 중 건국대 부근에서 집회를 갖게 하는 대신 이 단체에 약간의 경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 과격 시위가 예상되는 단체들의 집회를 아셈 회담장에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관계 당국은 1억원 정도를 지출했다고 한다. 또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은 시애틀과 다보스 등에서 과격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 들어오면 입국을 거부하고 불법 시위를 벌인 외국인은 강제 출국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시애틀과 다보스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것은 그곳 경찰이 스크럼을 제대로 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시애틀과 다보스 경찰들은 스크럼을 짜지 않고 흩어진 채로 방패와 곤봉을 들고 시위대를 쫓으려 했는데, 이들 사이로 일부 시위대가 통과했다. 그러자 구멍이 뚫린 것을 안 경찰은 곤봉을 심하게 휘둘렀고, 이에 맞서 시위대도 격렬히 저항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국 경찰은 전통적으로 강한 스크럼을 짜는 것이 장점. 시위대에게 두들겨 맞는 한이 있어도 의경들이 구축한 ‘인의 장막’은 여간해서 뚫리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각종 시위를 진압해오면서 구축된 한국 경찰의 이러한 노하우는 세계 NGO들의 아셈장 진출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청이 시위를 막아주면 요인 경호만 남는데 요인 경호는 시위 진압 이상으로 어렵다. 소식통에 따르면 대통령 경호실은 경호 인력의 절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 전문 경호부대인 707부대와 요인 경호와 테러 진압을 전문으로 하는 8688부대(일명 868부대), 요인 경호와 테러 진압을 전문으로 하는 육군 특전사 특수임무대와 육군 수방사 특수임무대, 국군 기무사의 요인 경호부대를 총출동시켰고 국정원에서도 요원을 차출했다고 한다.

    경찰과 군부대에 소속된 유사 경호 업무 수행기관은 대개 대통령이 군이나 경찰 부대를 방문했을 때만 경호에 참가해 왔다. 그러나 그때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근접경호는 대통령 경호실이 전담하고, 이들은 주로 외곽 경호를 담당해 왔다. 근접 경호 경험이 적은 유사 경호 업무 기관이 근접 경호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셈 회담 경호에서 가장 큰 부담이다.

    근접 경호의 핵심은 암살자가 정상을 저격할 경우,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정상을 가려줄 수 있는지다. 이러한 준비가 가장 잘된 기관으로는 미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미 재무성 소속 ‘시크릿 서비스’(SS)가 손꼽힌다. SS요원들은 위조 달러 사범과 조세포탈범 등 경제 사범 추적을 주임무로 하는 사법경찰이다. 때문에 어느 수사기관보다도 높은 학문적 지식을 겸비해야 한다. 정보기관 사이에서는 “우리 경호실 요원들은 무도 실력 위주로 뽑지만, 미국 SS는 무도실력과 더불어 지식을 주요한 선발 요인으로 꼽는다. 때문에 SS요원들의 실력은 CIA요원들에 못지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호요원들이 무도실력 이상으로 지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는 유사시 몸을 덮쳐 정상을 보호하는 것은 경호원의 무도 실력이 아니라 경호원의 신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74년 8월 육영수 여사 피격, 81년 10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 피격, 그리고 81년 3월의 레이건 대통령 피격 장면을 분석한 경호 전문가들은 “암살범이 달려들 때 이집트 경호원들은 순간적으로 몸을 숨겼고, 한국 경호원들은 움찔하다 뒤늦게 뛰어나왔다. 그러나 미국 경호원들은 그 순간에 레이건의 몸을 덮쳐 보호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국과 이집트의 경호원들은 무도 실력이 약해서 몸을 던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총소리가 들릴 때 무의식적으로 보호본능이 작용해 자기 몸부터 지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SS는 끊임없이 유사시에는 몸을 던진다는 것을 신념화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움츠리지 않고 뛰어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걱정은 아셈 회담장에서 불의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과연 경호실을 비롯한 유사 경호 기관 출신자들이 몸을 내던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두 나라 정상이 마주앉는 통상적인 정상회담이라면, 양 정상에 대한 경호는 초청국 경호기관이 전담하는 것이 관례다. 방문국 경호기관은 아무래도 초청국의 언어와 문화에 서툰 관계로 초청국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위압감을 주거나 최악의 경우 사태를 잘못 파악해 총을 뽑아드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에이펙 회담 등 다자간 정상회담을 개최한 나라는 방문국 경호요원을 다섯명으로 한정해 각자의 정상을 경호하도록 했다. 때문에 제3차 아셈에서도 이러한 방법이 원용될 전망이다. 심장부에서는 우리 경호실을 주축으로 각기 다른 언어와 체제를 구축해온 25개국 경호기관이 움직이고 그 바로 옆에는 경찰과 군의 특수부대 요원들이 경호한다. 그리고 회담장 경비는 30년간 시위진압을 해온 서울 경찰의 의경부대가 에워싼다. 이러한 경호망으로 다자간 회담을 어렵게 만든 세계 NGO들의 시위를 잠재우겠다는 것이 아셈 경호안전통제단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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