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6

2000.10.26

줏대없는 정책 … 갈팡질팡 정통부

IMT-2000 사업 관련 잇단 말 뒤집기…업체들 혼란 속 대응책 마련 고심

  • 입력2005-06-29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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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줏대없는 정책 … 갈팡질팡 정통부
    정통부는 10월10일 IMT-2000 사업용 주파수 배분시 반드시 미국식인 동기식 주파수를 하나 포함시킨다는 정책방안을 발표함으로써 비동기식 단일화의 가능성이 높아지던 IMT-2000 사업권 기류를 돌려놓았다. 그 내용은 3개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식으로 사업권을 신청할 경우 동기식을 유도하기 위해 그 중 1개 사업자를 탈락시킨다는 것. 비동기 사업자 두 곳만이 우선 선정될 경우 나머지 한 장의 티켓은 내년 3월 동기식 사업권 신청을 따로 받아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모두 비동기식을 선호하는 SK텔레콤, 한국통신, LG 등 3개 사업권 신청사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정통부는 동기식을 채택하는 사업자에게는 정부가 줄 수 있는 각종 인센티브를 주겠지만 내년까지 미뤄질 경우에는 아무런 인센티브도 줄 수 없다는 ‘으름장’도 놓았다. 이는 정통부가 기술표준은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던 당초의 정책을 바꿔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동기사업자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술표준 업계 자율”서 정부개입 급선회

    정통부의 이같은 정책 선회는 지난 9월말로 예정된 사업권 신청서 제출 마감을 10월로 한 달간 연기할 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안병엽 정통부장관은 당시 서비스 및 장비제조업체 대표들을 불러 마감기한 연기와 기술표준 문제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회 구성을 직접 제안했다. 물론 이때만 해도 기술표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업계 자율의 복수표준이었다. 안장관은 당시 “협의회 논의 결과 업계가 모두 비동기를 희망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겠다”며 대외적으로는 유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이번 발표를 통해 정통부가 그동안 동기식 유도를 위한 시나리오를 진행해왔음이 드러났다.

    정통부는 이 과정에서 이미 확정한 정책방안을 뒤집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 향후 잡음의 소지를 남겼다. 안장관은 “그간의 정책 혼선에 대해서는 국민과 업계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라는 사과의 입장을 밝혔지만 향후 이 문제가 장외 논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탈락업체가 발생하거나 기술표준 중재과정에서 외압시비가 일 경우 이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정통부는 이미 지난 2월부터 IMT-2000 정책수립을 위한 전담반 가동에 들어가 6월초 그 초안을 공개했다. 사업자수는 3개가 적당하지만 기술표준은 우열 비교가 어렵고 기술료 협상을 위해서도 최대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초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19일 뒤 안장관은 임시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답변에서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기술표준을 결정하되 발표시기를 앞당겨 7월초 사업자 선정공고를 낼 때 함께 발표하겠다”고 밝혀 기술표준 결정을 미룬다던 입장을 번복했다.

    이후 7월12일 사업자수를 3개로 하고 기술표준은 업계가 자율로 결정하는 복수표준 정책이 최종 발표됐지만 이 또한 지난 10일 정부의 동기유도 개입선언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9월까지만 해도 주파수 할당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동기나 비동기식 유도를 위해 주파수를 구분 할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정통부 정책의 잦은 ‘설계변경’은 동기식 기술에 대한 뿌리깊은 애착에 원인이 있다. 퀄컴사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동기식은 우리나라가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에 기초한 3세대 휴대통신 기술. 비동기식은 이와 달리 에릭슨, 노키아 등이 범유럽휴대전화(GSM)방식에 기초해 고안한 기술표준이다.

    정통부의 고민은 최대의 정책적 업적이자 우리나라를 통신강국으로 도약시킨 CDMA기술이 3세대 시장에서 사장되는 것. 정통부 고위관계자는 “CDMA 원조국으로서 우리조차 이를 3세대 기술로 진화시키지 않는다면 어느 나라가 CDMA기술을 도입하려 하겠는가”며 동기식 유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평소 시장론자임을 자부하는 안장관은 “업계자율을 선언하더라도 최소한 동기식 사업자가 1개 이상은 될 것으로 알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말해 애초부터 비동기 단일화의 상황은 생각지도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2세대 CDMA서비스가 사실상의 IMT-2000서비스로 불리는 2.5세대 ‘IS-95C’로 진화한 만큼 3세대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를 선택해도 동기기술은 유지-발전될 수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부 내부의 CDMA 인맥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입장은 CDMA 분야의 앞선 노하우를 바탕으로 10조원 규모의 차세대 휴대통신분야에서도 국내시장을 확실히 석권하겠다는 삼성전자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져 특혜시비의 소지를 남겼다.

    정책변경 과정에서 정통부의 결정이 과연 독립적인 것이었나 하는 점도 수수께끼. 안장관은 이달초 한때 “국내 제조업체의 비동기식 장비 납품이 가능할 때까지 서비스 실시시기를 다소 늦출 수 있다”고 밝혀 ‘3비 체제’를 용인하는 쪽으로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며칠 만에 정부 개입을 통한 동기식 강제 노선으로 돌아서 배경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정책 변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는 “스스로 결정했냐?”는 질문에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변을 남겨 궁금증을 유발했다.

    게다가 안장관의 신념과 달리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발표 직후 SK텔레콤 한국통신 등 휴대통신 관련주들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협의회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의 명분 쌓기와 시기조절로 여론의 뭇매를 피했다는 점에서 정통부 내부에서는 이번 정책 변경을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변경이 정부의 말처럼 국민편익과 통신산업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소니의 비디오기술인 베타방식이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VHS방식에 밀린 것처럼 세계 시장의 대세인 비동기식을 제쳐두고 동기식에 집중하는 데는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동기식과 비동기식을 함께 가져갈 경우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고 경쟁력도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3∼5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동기식 유도 정책으로 특정 제조업체에 쏠릴 막대한 이익을 소비자 편익과 통신산업의 균형 발전을 위해 돌리는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지적됐다. 통신-방송기술의 경우 세계시장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옮겨온 만큼 이번 기회에 대미 편향적인 산업기술 정책도 재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누가 동기로 가고, 비동기로 갈 것인가’. 최종선택의 시간이 임박하면서 한국 통신산업의 미래가 걸린 기술표준 논쟁은 결승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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