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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서 생긴 일’ 국정원 어떻게 알았나

한나라당에 접수된 군기밀 유출 관련 민원 속속 파악…전화 도청 의혹

‘야당서 생긴 일’ 국정원 어떻게 알았나

‘야당서 생긴 일’ 국정원 어떻게 알았나
한나라당이 도청을 당한 의혹이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지난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1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사는 조병준씨(23·가명)는 한나라당 민원실을 찾아갔다. 자신의 컴퓨터에 자신도 모르게 수백 메가 분량의 군사 기밀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조씨가 한나라당에 찾아가기 전 조씨 부모는 군사 기밀이 컴퓨터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군 기무사에 이미 신고했고, 기무사 관계자들이 조씨 집에 찾아와 관련 기록을 삭제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조씨 가족은 기무사의 일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조씨는 한나라당 민원실에 찾아가기 전 민원실 관계자에게 그런 불만을 토로했다. 그 후 조씨는 당시 민원실에 근무하던 장모 전 민원부장을 만났다. 장부장은 조씨와 만나 “말만으로는 도와줄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당신 얘기를 뒷받침할 내용을 보여달라”고 말했고 조씨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다.

다음날인 6월2일 다시 한나라당을 찾아간 조씨는 CD에 군사 기밀들을 담아갔다. 기무사의 사후 처리에도 불구하고 군사 기밀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컴퓨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조씨의 CD에 담겨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외부에 유출돼서는 안 되는 군사 기밀이 다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조씨를 설득해 CD를 넘겨받으려 했지만 큰 관심을 나타내는데 놀란 조씨는 CD를 넘겨주지 않았다.

조씨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장부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각별히 보안에 유의할 것”을 다짐받았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지한 장부장은 2일 오후 목요상 정책위의장에게 이 사건을 구두 보고했고 목의장은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인 3일 장부장은 당내 제반 정보를 다루던 정형근 당시 기획위원장에게도 구두 보고했다. 정위원장도 “관련 상임위에서 다룰 수 있도록 추가 증거 확보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때까지 한나라당에서 조씨가 다녀간 것을 알고 있던 당직자는 민원실 근무자와 CD를 본 사이버홍보팀 관계자 등 모두 5명이었다. 4일 다시 조씨와 만나기로 한 장부장은 갑작스런 지방출장 때문에 대학생인 조씨의 수업 일정과 시간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런 와중에 6일 저녁 철원 집에서 식사를 하던 조씨의 아버지는 군 기밀 유출 당사자였던 김모씨(27·전 육군 중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들이 한겨레신문사에 제보를 했다는데 맞느냐”는 것. 한나라당과 한겨레신문사를 혼동한 질문이었다. 부모는 아들이 한나라당에 찾아갔다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차였다. 당연히 “무슨 얘기냐?”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씨도 다음날 아침 김씨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기무사 사람들이 당신이 한나라당에 찾아갔다고 한다. 사실이냐”고 물었다. 조씨는 한나라당에 갔던 사실을 아무에게도(심지어 부모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기에 깜짝 놀랐다.

조씨는 즉시 한나라당 장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무사에서 내가 한나라당에 간 사실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앞으로 한나라당에 가지 않겠다”며 항의했다. 조씨는 그 며칠 뒤 집으로 찾아온 김씨에게 군 기밀이 담겨진 CD를 넘겨줬고 15일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집으로 찾아온 기무사 수사요원들을 만났다.

기무사 요원들은 조씨가 한나라당에 간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조씨는 한나라당에 찾아가기 전은 물론 갔다온 뒤에도 아무한테도 이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는데….

기무사 수사관들은 “한나라당에 설치돼 있는 CC-TV를 보고 조씨가 한나라당에 간 것을 알았다”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것은 사실과 달랐다. 한나라당에 설치돼 있는 CC-TV는 녹화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24시간이 지나면 전날 녹화된 것이 완전히 지워진다. 조씨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조씨의 동태를 지켜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조씨가 한나라당에 간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CC-TV를 관리하는 방재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구역이다. 방재실 관계자들은 “CC-TV를 통해 조씨를 봤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다.

취재 결과 조씨가 한나라당에 찾아갔다는 사실을 기무사에 알려준 것은 국정원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포천지부 조정관인 이모씨가 기무사측에 “조씨가 한나라당에 사건을 제보했으며 한나라당에서 처리 결과를 모색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줬던 것. 그렇다면 이씨는 어떻게 조씨의 한나라당행을 알게 됐을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우선 이씨 자신이 직접 정보를 수집해 기무사측에 넘겨줬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조씨가 아무에게도 ‘한나라당행’을 말하지 않았기에 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씨가 상부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았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국정원 상부에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통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조씨가 한나라당에 다녀간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알려줬을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장부장은 “당시 사안이 극도의 보안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관계자들에게 특별히 당부했으므로 우리 자체에서 빠져나갔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도 “그런 정보를 수집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른 하나는 국정원이 자체 장비를 이용해 한나라당 전화를 도청했을 가능성이다. 조씨는 “수사관들이 내가 한나라당에 갔던 내용을 훤히 알고 있었다”고 가족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면 “한나라당에 전화를 몇 번 했느냐”고 물어 “세 번 했다”고 답하면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확인한 뒤 “항의전화 한 것 한번 더 있지 않느냐. 왜 빼먹느냐”는 식으로 다그치며 “그럼 그렇게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는 것.

이 대목에서 주목되는 것은 한나라당 민원실 전화가 도청당했을 가능성이다. 조씨는 한나라당에 전화할 때 공중전화를 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기무사 수사관들은 조씨가 전화 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조씨가 한나라당에 다녀간 뒤 한 당직자는 민원실 전화를 이용, 한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어렴풋한 내용을 제보한 적이 있다. 이 기자 또한 얼마 뒤 기무사로부터 “군사 기밀 유출과 관련된 취재를 하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받은 뒤 기무사는 물론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취재를 한 적이 없다. 기무사가 어떻게 알고 전화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혹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국정원 포천조정관 이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상부로부터 전달받았을 수도 있고 내가 정보를 수집했을 수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그냥 넘어가자”고 말했다.

도청일까, 정보수집일까. 그 어느 경우든 국정원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갖게 한다. 한나라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아직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주간동아 2000.10.26 256호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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