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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웬 국민투표 … DJ 속내 뭐냐”

영수회담 중 발언 놓고 해석 분분…야권 “권력 구조 변경 의도 아니냐” 의심

“갑자기 웬 국민투표 … DJ 속내 뭐냐”

“갑자기 웬 국민투표 … DJ 속내 뭐냐”
불쑥 ‘국민투표’ 얘기가 튀어나왔다. 10월9일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청와대 영수회담 자리에서다.

여권은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처럼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며 진화를 서둘렀고, 야권은 “권력구조 변경을 노리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야 모두 지금은 그 문제를 논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더 이상 파문이 확대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국민투표’에 숨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통일방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물론 남북관계 변화를 계기 삼아 권력구조 변경 등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것. 때문에 이 문제는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투표’ 얘기는 영수회담 끝머리에서 나왔다. 이총재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관련한 합의에 국민적 동의가 없었다”고 말한 데 대해 김대통령이 “연방제는 외교-군사권을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그렇지 않기에 (북한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 어쩌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 것.

문맥상으로 보면 김대통령의 언급은 매우 막연하다.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통일방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정도다. 먼 미래의 상황을 가정해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도 “큰 비중을 둘 필요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해석했다.



때문에 여권 인사들은 ‘국민투표’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정권재창출 등과 관련지어 보는 등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고개를 흔들고 있다. “김대통령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문희상 의원) “통일방안에 대해 국민들의 의사를 물어볼 시기가 올 수도 있다는 말”(민주당 한 관계자)이라는 등의 반응이 일반적이다.

반면 한나라당 사람들에게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물론 통일방안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국민투표를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소수 의견은 “통일 방안 등과 관련해 국민투표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에서는 뭔가 복선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김영춘 의원)는 것. 여권 인사들의 설명대로 김대통령의 ‘국민투표’ 발언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통일방안을 놓고 일부에서 일고 있는 ‘연방제냐 연합제냐’ 논란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김대통령이 1민족 2국가 2체제 2정부인 남측의 연합제보다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인 북측의 연방제에 더 가까운 통일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의심한다. 주로 이회창 총재 측근 인사들이다. 이총재가 10월11일 총재단 회의에서 “어떤 수식어를 붙이든 연방제(낮은 단계의 연방제) 논의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 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필연적으로 높은 단계, 즉 북이 주장하는 연방제의 전 단계로 본다”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총재의 측근인 이원창 의원은 “김대통령의 ‘국민투표’ 발언에는 뭔가 흑심이 있다. 자유민주체제와는 약간 다른, 전혀 생각지도 못한 통일방안을 김대통령이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의원은 또 “이총재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권력구조 변경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총재가 연방제 논의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한 것은 통일방안과 함께 대두될 수 있는 개헌 논의를 사전에 봉쇄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진전된 어느 시기에 권력구조 변화를 포함한 국민투표를 생각하고 있다”(박관용 의원) “국민투표 발언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진전되는 상황으로 봐서 통일방안과 권력구조 문제 등을 종합해 국민투표에 부칠 가능성이 있다”(윤여준 의원) 등등 “김대통령의 발언을 간단히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국민투표’ 발언이 개헌을 염두에 둔 장기 포석에서 나온 말일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예상하는, 김대통령이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권력구조는 내각제다. 통일시대에 대비하는 권력구조로서 지역감정 해소-국민통합 등을 명분으로 내걸고 내각제 개헌론을 들고나올 수 있다고 보는 것. 이런 시각은 김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현실 권력에 상당한 영향력 행사를 꾀할 것이라는 분석과 맞닿아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지금쯤 되면 참모들은 당연히 권력구조 변경이나 정권재창출 등과 관련한 다양한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향을 선택하는지는 김대통령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통일방안, 권력구조 변경 문제 등 큰 틀을 놓고 순차적으로 일을 풀어가는 것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대통령의 ‘국민투표’ 발언 하나가 이처럼 많은 해석을 낳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정권재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야권 인사들은 여권에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뭔가 변화를 꾀할 것이고 그 방향은 남북관계 변화를 틈탄 권력구조 변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남북관계의 큰 흐름이 국내 정치를 압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점치는 것. 대선까지 2년여 남은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우려가 현실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대체적으로 “김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김대통령이 남북관계의 성과를 정권재창출로 연결시키려는 유혹을 받겠지만 그 유혹에 빠지는 순간 정국은 대결 국면에 들어갈 것이고 김대통령은 그 순간부터 반쪽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드시 민주당이 재집권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때 오히려 재집권할 길이 열리는 것이지 외부 요인을 활용하려고 하면 오히려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도 “정계개편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나라가 시끄러울 권력구조 변경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남북간에 풀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는 마당에 김대통령의 말에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0.10.26 256호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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