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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한여름 밤의 추억

한여름 밤의 추억

한여름 밤의 추억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바다로 산으로 휴가를 떠난 이들로 인해 혼잡했던 서울 도심에 어느 정도 여유가 찾아온 듯했다.

생각 같아서는 모처럼 한산해진 서울 도심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으면 좋으련만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남들처럼 휴가를 멀리 떠나야 할 것인지로 며칠간 고민이 이어졌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서울에서 시원하고 뜻깊은 휴가를 보내는 것.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4일 동안 열리는 우수영화제 상영장소가 바로 우리 가족이 정한 휴가지였다.

어둠이 깔리면서 더위가 위력을 조금씩 잃어갈 때 가족과 함께 한강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영화감상의 필수품인 군것질거리와 돗자리를 지참한 것은 물론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내 마음의 풍금’ ‘산책’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미이라’ 등 4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시민공원의 자연학습장과 융단 같은 잔디밭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교통체증도 없고 짜증도 없는 4일간의 휴가일정에 가족 모두 만족해했다. 물질과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풍요로워야 행복하다고들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한 이 4일간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큰 행복감을 안겨준 셈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서울에 직장을 두고서도 거리가 먼 경기도에서 생활한 지 벌써 12년. 아내의 근검절약한 살림살이 덕분에 최근에야 서울에 입성할 수 있었다. 나 또한 IMF 사태 때 여러모로 많은 고통을 겪었기에 근검절약이 생활철학이 돼버렸다.

돈 문제를 떠나서도 올해는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것 같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연인끼리, 직장 동료끼리, 친구끼리 오순도순 모여 영화를 감상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빌딩에서 발산되는 네온사인과 남산 위 서울타워 조명, 한강변 고층아파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조명 등이 어우러진 서울의 야경을 무대로 한 이번 한강 우수영화제야말로 우리 가족에게는 뜻깊은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될 것 같다.



현대인들은 일상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멀리 멀리 떠나는 휴가로 해소하려 한다. 짜증스런 교통체증, 만만찮은 휴가경비를 무릅쓰고 고생만 실컷 하는 여름휴가를 다녀와야 휴가를 제대로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올 여름 우리 가족처럼 집 가까이에서 알뜰하고 즐거운 피서를 보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도 이런 휴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00.09.07 250호 (p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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