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2000.09.07

제도권에 반기… ‘문화게릴라’ 전성시대

실험·도전정신 무장한 ‘청년문화 기획자’들…축제 만들며 대안문화 생산 주역으로

  • 입력2005-06-15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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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도권에 반기… ‘문화게릴라’ 전성시대
    축제는 끝났다. 8월18일 명동 유네스코회관 905호에서 열린 ‘유스페스티벌2000’(8월11~15일) 평가모임은 거침없는 자아비판과 성토의 자리가 됐다.

    AV21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청년기획단과 대학생인턴, 1318기획단 등 100여명으로 구성된 이번 기획단의 특징은 국내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20, 30대 젊은이들이 총망라해 참여했다는 데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올해로 2회째를 맞으면서 문화기획의 중심축이 30대에서 20대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사실상 1318기획단(10대 기획단)이 축제의 콘텐츠 개발을 주도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한편 같은 날 대학로에서는 ‘독립예술제2000’이 시작됐다. ‘실험과 도전,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를 여는 축제 공동체’란 이름으로 장장 17일간 약 800여명의 예술인이 참여해 158회의 각종 공연을 펼치는 대규모 행사. 그동안 언더그라운드 문화예술 축제로만 인식돼온 독립예술제가 올해로 3회째를 맞아 에든버러 프린지나 아비뇽 오프처럼 중심과 주변을 연계하는 프린지(Fringe) 축제를 표방했다. 이 축제의 예술감독은 록 그룹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이며 음악평론가로 활약 중인 성기완씨(34). 또 98년부터 이 행사 집행위원장으로 일해온 이규석씨(30)도 하이텔 온앤오프시어터와 독립문화예술창작집단 강아지문화예술에서 기획력을 쌓았다.

    이들이 바로 90년대 화두로 떠오른 대안문화의 생산자, 즉 ‘청년문화 기획자’들이다. 대안(Alternative)이라는 말 그대로, 제도권 안의 지배적인 문화가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제도권 밖에서 실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90년대는 인디문화, 하위문화, 반문화, 소수문화, 저항문화 등 다양한 이름의 문화적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특히 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농성 이후 조직적인 학생운동이 급격히 퇴조하고, 각 대학 총학생회를 비운동권 진영이 점령하면서 대학은 대중문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홍익대가 언더그라운드 문화운동의 메카로 떠오른 것도, 또 이곳을 중심으로 청년 문화게릴라들이 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사회학)의 ‘대중문화연구’ 강좌를 수강한 학생들이 만든 ‘96백양로 난장’은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캠퍼스로 끌어들인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문화부장으로서 행사기획단장을 지낸 권기원씨(27)는 이를 계기로 문화판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유스페스티벌에서는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이끌었고, 다시 이들을 중심으로 ‘젊은문화네트워크’를 조직했다. ‘젊은문화네트워크’는 그해 10월 문화의 달 행사에서 ‘신당동떡볶이파티’라는 이색 이벤트를 성공리에 치러내며 주목받았다.



    96년 음반 사전심의제도가 60년 만에 폐지된 것을 기념해 열린 ‘자유콘서트’ 역시 학생운동을 문화운동으로 흡수하는 계기가 됐다. 전대협 노래패 ‘조국과 청춘’ 출신인 이강명씨(34)는 96~99년까지 자유콘서트를 기획하며 콘서트 전문가로 변신했고 역시 전대협 후배인 김영준씨(32)를 유스페스티벌 기획단에 끌어들였다. 올해 유스페스티벌에서 영등포지역 총괄을 맡은 강원재씨(33)는 홍익대 예술학과를 나왔고 98 자유콘서트 홍보담당자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특히 미학과와 예술학과 출신들이 포진해 있는 홍익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새로운 문화담론의 중심지가 됐다. 제1회 독립예술제 미술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홍대거리미술전 기획단장이던 조중현씨(32)가 홍대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홍대 밖에서 펼쳐진 언더그라운드 문화운동의 중심인물로 김종휘씨와 안이영노씨를 빼놓을 수 없다. 올해 ‘문화일보’ 선정 차세대 리더 100인으로 뽑히기도 한 김종휘씨(34)는 인디음반 대표이며, 청소년직업체험센터 기획사업부장으로 올해에는 유스페스티벌 홍보를 맡는 등 문화계 팔방미인으로 알려져 있다.

    안이영노씨(34)는 연세대와 홍익대, 홍대 총학생회와 홍대 주변의 언더그라운드문화를 연결시키는 독특한 존재다. 연대 사회학과 출신이면서 홍대 예술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인디밴드 ‘허벅지’팀의 리더로 언더그라운드 음악축제 ‘땅밑 달리기’, 이벤트 카페 ‘빵’ 등이 그의 작품이다. 지난해에는 ‘유스페스티벌99’ 총기획, 99독립예술제 집행위원을 맡는 등 문화계 마당발로 통한다.

    그러나 ‘유스페스티벌2000’을 계기로 그는 기획에서 한 발을 뺐다. 이제 후배들에게 판을 물려줄 때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유스페스티벌 기획단은 김종휘 안이영노 이강명씨 등 30대 기획자 그룹이 뒤로 물러앉고, 이들로부터 문화적 세례를 받은 젊은문화네트워크나 아뷰, 알음알이, 이벤트브레인, 이벤트유니버 등 90년대 학번 중심의 문화동아리들이 기획단의 중심 축으로 떠올랐다. 또 크리스찬아카데미와 여해문화공간에서 주로 교육운동을 해온 조혜영씨(34)를 이번 행사에 끌어들인 것은 10대와 20, 30대 기획자간의 네트워크화를 시도해 2001년 행사부터 10대 주체로 치러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가장 고무적인 사건은 100% 청소년 기획의 ‘청소년문화예술축제 2000’(8월10~12일 여의도)이 탄생했다는 것. ‘유스존’이라는 기획단을 꾸린 최동욱씨(20·전주대 1년)는 지난해 유스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축제 기획 감각을 익혔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축제의 관객이 아니라 10대가 직접 만들고 즐기는 축제”를 목표로 이 행사를 시작했다. 후원과 경험 부족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최동욱씨를 비롯한 기획단은 “내년에도 청소년축제를 계속한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올해 유페스티벌에 자원봉사단으로 참가한 10대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제2의 최동욱’을 꿈꾼다. 그만큼 문화기획은 청소년들에게 매력적이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미래형 직업으로 비치고 있다.

    이강명씨는 “기획이란 일을 통해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조물주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며 그러나 축제가 축제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력이 왜 문화운동으로 눈을 돌렸는가. 또 언더가 땅 위로 나와 시민형 축제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소수만의 청년문화를 시민문예운동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들에게 축제는 흥겨운 놀이판일 뿐만 아니라 치열한 문화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문화기획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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