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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신청자들의 애환

“타국살이 첫 출발 ‘이민 사기’ 겁나요”

현지 사정 어두운 점 악용 브로커들 활개…꼼꼼히 챙겨보고 떠나야 뒤탈 없어

“타국살이 첫 출발 ‘이민 사기’ 겁나요”

“타국살이 첫 출발 ‘이민 사기’ 겁나요”
‘의료대란’ 이후 “이민하고 싶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의사들이 밥그릇 싸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서 단 하루도 더 살고 싶지 않다”는 회사원 강기훈(가명·남·39)씨. 그러나 강씨는 해외이주가 생각처럼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절박한 경험으로 체득했다.

“3년 전 미국으로 취업이민하려고 수속을 밟았다. 그 과정에서 이주알선업체 말만 믿고 취업이민 비자가 나오기 전 방문비자로 우선 미국에 갔다. 현지에 도착하니까 나를 고용하기로 했다던 기업은 유령회사였고, 업체측이 보여줬던 취업보증 서류도 가짜였다. 결국 수수료와 3개월간 체류경비로 3000만원 가까운 돈만 고스란히 날린 채 쫓기다시피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민하기 위해 살던 집까지 처분했던 강씨는 이 일로 부인과 사이가 틀어져 현재 별거 중이다.

최근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강씨와 비슷한 피해를 당한 ‘이민사기’가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합동법률사무소 소속 김모(37) 변호사가 이민사기 사건에 연루돼 연방이민귀화국(INS)에 구속된 것이 계기가 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한국일보 미주판은 연일 이민사기와 관련한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공문서위조와 가짜 입학허가서 매매로부터 밀입국 알선에 이르기까지 한인사회 일각에서 횡행하고 있는 이민 관련 부조리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받기 힘든 체류신분 변경 허가도 브로커들은 급행료만 내면 1, 2주 내로 100% 해결해 준다고 의뢰인들을 현혹하지만 잘못됐을 경우 뒷일을 책임지지 않는다. 한인타운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 중인 일부 악덕 브로커들은 의뢰인의 서류를 아예 이민국에 접수조차 시키지 않고 수속이 진행 중인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은 뒤 의뢰인이 추궁하면 사무실을 옮겨 버린다”는 것 등이 주요 내용.

8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경찰로 근무했고,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10여년째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어 현지 사정에 밝은 설영환씨는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현지 신문들까지 온통 이민사기 관련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어 같은 동포로서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텍사스와 노스캐롤라이나 등에 흩어져 있는 각종 어육 가공공장 등에 고용되어 취업이민을 오는 사람이 최근 2, 3년 사이 급증했다. 미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에 근무할 경우 취업이민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짜 변호사, 여행사 직원 등 일부 이민 관련 브로커들이 현지사정을 속이고 노예생활과 다를 바 없는 취업이민을 알선하는 경우가 많아 심각한 말썽을 빚고 있다”고 덧붙였다.



설씨에 따르면 한국에서 ‘잘나가던’ 의사, 변호사, 교사, 기업체 간부 등이 각종 가공공장에서 비참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 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민자를 모집하기 위해 한국으로 원정 가는 이민브로커나 변호사가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 꾐에 속아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 중에는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한인사회 주변을 맴돌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이민브로커들의 국내원정’ 사례는 국내 업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종로에서 10년 넘게 해외이주 알선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41) 사장은 “지난해부터 미국이나 캐나다 등 현지 이민브로커들이 국내에 들어와 임시 사무실을 열고 이민자들을 모집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중에는 현지 변호사 자격증을 빌려 변호사로 행세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에선 외교통상부에 등록한 업체 외에 이민을 알선할 경우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 브로커의 고객 모집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고 귀띔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악덕 이주알선업체는 이들과 연계해 커미션을 챙기고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미 국내를 떠난 브로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 애꿎은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고 전한다. 이 외에 사무실 없이 친지나 안면 있는 사람들을 연결고리로 내세워 ‘맨투맨’ 방식으로 암암리에 이민자를 모집하는 브로커들도 있다고 한다.

정보통신 기술자인 장호태(가명·남·34)씨는 지난해 초 호주에서 건너온 이민브로커에 속아 700여만원의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친구가 잘 아는 한인 변호사라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40대 초반 남자였는데,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기술자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국내에 들어왔다고 했다. 4000만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회사 사정이나 업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설마 사기칠 줄 몰랐다. 호주에 건너가서 연락한다던 사람이 한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서 명함에 적힌 변호사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더니 가짜였다. 소개해 준 친구도 나중에 알았다는데 그렇게 당한 사람이 나 말고 4명이나 된다고 했다.”

한 교민은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려 이민사기를 고발했다. “호주 골드코스트에 사는 교민이다. 자신의 회사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투자이민했는데 지금 나는 투자금 전체를 날릴 지경이며 나 외에도 여러 명이 피해를 보았다. 사기를 친 사람은 은행 빚을 청산하기 위해 투자이민을 미끼로 거액의 돈을 챙기고 있다. 이 사람의 사기행각을 막기 위해 교민들이 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하여 서명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는 거의 한국에 상주한 채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 들어와서 이민자를 모집한 뒤 수수료만 챙겨 달아나는 수법으로 사기치는 이민브로커들은 한결같이 “현지에서 수속하면 비자발급 기간이 단축되고 이민허가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관련 업무에 밝을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변호사’ 또는 ‘이민 전문 컨설턴트’ 등 그럴듯한 신분증명서나 명함을 내보이기 때문에 현지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넘어간다.

한편 미국 한인들 사이에서 일명 ‘널뛰기’로 불리는 불법밀입국 경로를 통해 이민비자를 해결하려다 적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불법밀입국은 현재 우리나라와 무비자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캐나다를 통해 미국으로 잠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미국에 가기만 하면 얼마든지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브로커의 꾐에 빠져 1인당 5000달러에 이르는 돈을 내고 불법 월경을 감행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 담당자는 “각 나라마다 이민법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더불어 이민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곳이 바로 각국 이민국이다. 때문에 이를 벗어난 편법이나 뒷거래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과 인맥을 과시하며 어떻게 해주겠다거나, 반드시 이민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브로커들의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민 관련 사기가 최근 1, 2년 사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데는 몇 가지 직-간접적인 원인이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이주알선업체 신설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6월 말 현재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국내 해당 업체는 총 35개에 달한다. 이는 제도 변경 전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주 업계 관계자들은 “영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리하게 고객유치에 나서는가 하면, 이민 수속 대행 노하우가 없는 신설 업체들의 실수로 이민 관련 피해자가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한다.

최근 달라진 흐름을 보이는 이민 형태도 사기꾼들에게 기회의 텃밭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외교통상부가 펴낸 ‘외교백서’에 따르면 98년 한해 동안 한국을 떠난 해외이주자는 총 1만3974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이주 형태별로 보면 연고(가족)초청이주가 47.5%를 차지했고, 이어 취업이주 27.2%, 사업(투자)이주 15.6% 순으로 드러났다. 사업 및 취업이주는 90년 20% 선에 머물던 것이 98년 무려 42.8%에 달할 만큼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이처럼 영주권 또는 시민권을 가진 가족의 초청에 의해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이루어지는 연고초청 이주보다 자격심사 등 상대적으로 제반 이주 여건이 까다로운 사업 또는 취업이민 형태가 늘면서 이민브로커의 사기행각도 덩달아 횡행하고 있는 것.

한편 인터넷을 통하면 이민 수속에 필요한 각종 가짜 서류를 10~20달러 안팎에 살 수 있는 미국 내 최근 분위기도 이민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서 7년째 가게를 열고 있는 교민 정태훈씨(남·39)에 따르면 “사회안전보장카드(Social Security Card), 고용확인증, 경력증명서, 운전면허증 등 가짜 서류를 싼 값에 사들여 이민 수속자에게 건당 수십배의 수수료를 물리는 식으로 한몫 챙기는 브로커들이 많다”고 한다.

이 외에 미국의 체류신분 변경 허가 제도를 미끼로 영주권을 받게 해주겠다며, 방문 또는 관광비자로 고객을 현지로 보내거나 불러들여 골탕먹이는 수법도 있다. 신세계이주공사 박필서사장은 “체류신분 변경 허가도 자격이 돼야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과정만도 수년씩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피해도 적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민을 꿈꾸던 디자이너 이현경씨(여·28) 역시 체류신분 변경 허가 제도만 믿고 미국에 건너갔다 낭패를 본 케이스. “랭귀지 코스에 등록하면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이민비자로 바꿔주겠다고 하면서 1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런데 결국 이민비자는 받지 못했고 학비와 체재비만 날린 채 불법체류자가 되기 직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취업이민의 경우 업무와 연봉 등 제반 고용 조건이 사실과 다른 경우가 가장 많다. 그 외 취업이민 보장을 조건으로 내걸며 먼저 학생비자로 입국할 것을 종용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때 영주권 또는 시민권자에게 발급되는 사회안전보장카드가 똑같이 발급되기 때문에 여기에 속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사회안전보장카드는 학생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에 한해 일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마치 취업이 가능한 것처럼 부풀리는 경우가 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이주과 이민 담당자는 “서류 위조나 불법체류 등 이민법 위반 사례의 경중에 따라 심하면 평생 자국에 입국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현지 이민법을 존중하고 편법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외교통상부 홈페이지나 각국 주한 대사관을 통하면 이민에 드는 수수료나 자격요건 등 이민과 관련해 상세한 제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이민을 가기 전에 부지런히 발품을 팔 것을 부탁했다.





주간동아 2000.07.13 242호 (p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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