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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합헌’ 할 말 있다

“과외는 가난한 어린가슴 상처준다”

소수의견 이영모 재판관 반론문…경제적 능력이 진학 좌우, 계층 위화감 ‘심화’

“과외는 가난한 어린가슴 상처준다”

“과외는 가난한 어린가슴 상처준다”
4월27일 헌법재판소가 ‘과외교육 금지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뒤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은 헌재의 결정을 ‘돌발사태’라고 규정하고 “정부가 앞을 내다보지 못해 고액과외가 판치게 됐다”며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문용린교육부장관을 질책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학원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중 과외금지와 처벌조항이 “자녀교육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것. 하지만 마지막까지 재판관 9명 중 3명(정경식 이영모 한대현)이 과외 합법화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다수(찬성한 6명) 의견과 달리, 이 사건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영모재판관의 반론을 요약한 것이다. 근본적인 대학 입시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개인의 과외교습만 허용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이라는 지적이 눈에 띈다. 편집자

과외교습은 입시의 교과목에 따라 변하고 있다. 대학입시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면 이에 대비하기 위한 과외가 이루어지고, 대학별 본고사가 시행되면 본고사를 대비하게 된다. 수학능력시험이 생기면 과외도 이에 맞추고 논술시험을 보면 논술에 치중한다. 이와 같이 과외교습은 자녀들의 잠재능력을 찾아 이를 발휘할 수 있게 돕거나 인간의 전인적 형성작용이라는 순수한 목적을 추구하기보다 주로 학교교육을 보충하고 상급학교 진학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학력이 고용-임금-사회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 풍토 하에서는, 학부모는 오로지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암기위주의 지식주입과 입학시험문제 풀이를 지도하는 과외교습에 신경쓸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우리의 높은 교육열은, 다른 자녀들이 과외교습을 받는데 내 자녀만 과외를 아니하면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는 상대적인 피해의식과, 과외교습이 치열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더 나은 상급학교 또는 전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는 성취감 등으로 과열화되어, 그 결과 소득수준에 버거운 고액 과외교습에까지 눈을 돌리게 하고 가계(家計)를 멍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과열된 고액 과외교습은 자녀들로 하여금 학교 안팎에서 오직 학업성적의 성취만을 강요하는 수험생활에 파묻히게 하므로 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계발할 기회를 갖지 못함은 물론, 지적 성숙도 이루지 못하여 창의력 있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저해한다. 더욱이 학업성적에 대한 중압감은 정서불안으로 이어져 청소년 비행의 원인이 되고, 누적된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성장기에 있는 자녀들의 건강을 해치는 한편, 학부모와 자녀들은 학교교육을 경시하여 학교수업을 파행으로 치닫게 한다.



과열된 고액 과외교습의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직 중-고등학교 교사나 대학교수에 의한 과외교습은 단속이 어려워 입시 및 성적과 관련된 부정이 잦을 것으로 예상되고,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은 자녀의 상급학교 진학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므로 소득격차로 인한 계층간의 위화감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과외교습이 고액화 과열화되는 것은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열악한 학교교육 환경, 입시제도 등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이 사건의 쟁점이 된 개인 과외교습이 고액화 과열화를 부추기는 데 큰 몫을 차지한 것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일반인에게 개인 과외교습을 허용하면 고액화 과열화의 개연성이 크고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걷잡을 수 없는 사회문제를 일으키므로, 개인 교습행위에 대한 전면금지의 당위성은 시인할 수밖에 없다.

학교교육에서 중-고등학생의 교과목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과외교습을 방임할 경우, 과거의 폐단에서 보듯 학업성과에 의한 학교와 학생간의 서열화를 심화시키고 나아가 그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과 자율적인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가져오게 한다. 또한 과열경쟁의 필연적 결과인 고액화된 교습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가정의 자녀에게는 실질적인 교육기회의 균등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폐해를 낳기 십상이다. 학부모 각자가 경제력에 따라 자녀의 사교육에 대하여 어느 정도 부담할 것인지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는 다수 의견은 그 부담의 정도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또한, 교육결과의 격차가 학생 각자의 재능과 노력이 아니라 학부모가 가지는 경제력의 차이에 의하도록 하는 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열린사회에 이르는 합리적인 변화와 공존의 장이 되어야 할 교육을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이를 후대에까지 세습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한다. 대학 입학시험을 자율이 아닌 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측정한 결과(점수)에 따르도록 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학교교육을 보충하는 개인 과외교습을 제한한 이 사건 법률조항 역시 획일적인 학부모의 중-고등학교 선택권의 규제를 합헌으로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합헌으로 보아야 한다.

세기가 바뀐 2000년을 정보통신(digital) 혁명시대라고 한다. 1997년 12월 초에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수습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실업자의 증가, 빈곤층의 확대, 중산층의 축소 등 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시대를 맞게 됐다. 모든 국민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사회복지 정책을 실현하여 계층간의 위화감 해소가 절실한 시기이자 사회적 안정과 통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는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기의 경제운용 기반 또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하여 지탱되는 자본주의라는 점에 이론(異論)이 없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도 자본주의의 약점인 부익부빈익빈으로 인한 계층간의 간격과 괴리를 어떻게 조정-배려하여 공동체의식을 슬기롭게 유지-보완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사회복지국가의 지향이라는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강자의 경제적 자유권, 이른바 재산권의 보장, 계약의 자유,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적극적인 제한이 불가피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는 이 제한을 통하여 헌법이 규정한 사회권을 향유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되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를 반영하는 우리들의 화두는 경제문제와 이에 못지 않은 교육혁명, 인력개발정책이다. 정보통신혁명시대에 교육혁명과 인력개발정책은 우리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력개발의 산실이자 모태인 학교교육도 급변하는 사회현상과 위에서 본 대입수능 및 과외교습의 부작용 등으로 말미암아 붕괴될 처지에 놓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과외교습의 허용범위를 따지고 대입 수능을 일부 손보는 것 같은 지엽적-부분적인 입시처방이나 대증요법만으로는 이 시대의 절실한 요구인 교육혁명은 물론 교육현장의 붕괴위기를 수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학교 또한 급변하는 사회현상에 부응하기 위하여 교과과정의 폭넓은 개편과 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등 개혁과 정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닥친 것이다. 그러므로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는 모든 교육과정을 재검토하여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개혁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학교교육과정과 직접 관련되는 초-중-고등학생의 개인과외교습을 제한하여 공공성을 가진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도모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가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다른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학생의 창의력을 계발하고 자유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배우며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기르는 터전이 바로 학교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이 조항에 대한 위헌판단은 결과적으로 개인 과외교습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허용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진 자 스스로가 자제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시기이자 사회-경제적 약자의 외침에 귀기울여야 할 시기로 생각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고려하지 아니하고 과외교습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규제 및 자율이 아닌 대입 수능의 정당성 여부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아니한 채 개인 과외교습을 허용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위헌판단은, 학원에서 겨우 과외교습을 받거나 과외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수많은 학부모는 물론 그들의 자녀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안타까움과 위축감을 느끼고 허탈감과 좌절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결정이 어린 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은 아닌지, 혼자만의 기우이자 노파심이기를 바랄 뿐이다.



주간동아 2000.05.11 233호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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