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0

2000.04.20

할아버지와 손자

  • 입력2006-05-16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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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와 손자
    남편,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설 때는 괜찮더니 소백산을 넘어서면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봄을 재촉하는 비였다.

    봄비 속을 달려 시댁에 도착했다. 찾아 뵙는다고 미리 전화를 해놓은 탓인지 아버님은 마루 끝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고, 어머님은 식사준비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셨다. 부엌에서 나는 삼계탕 냄새가 시장기를 더 돌게 만들었다. 서둘러 상을 차려 안방으로 들였다. 둥근 상에 죽 둘러앉았다. 아버님은 배가 몹시 고프셨던가보다. 그런데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연세도 연세지만 건강이 많이 나빠지신 모양이었다. 손놀림이 둔해 보였다.

    무엇보다 숟가락 젓가락질이 잘 안되고 있었다. 급기야는 드시던 삼계탕 그릇을 엎으셨다. 당황스러웠다. 남편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엎어진 그릇을 정리하는 사이 아들이 일어나 슬며시 나갔다. 그리고는 접시와 포크를 갖고와 아버님 앞에 놓아 드렸다. 계속해서 아무런 말 없이 아들은 뼈를 발라낸 고기를 접시에 놓고 젓가락 대신 포크를 아버님께 드렸다. 아버님은 손자와 눈을 맞추시더니 조용히 식사를 마치셨다. 아들 덕분에 경직되었던 식사분위기가 조금은 풀릴 수 있었다. 아버님을 어렵게만 생각했던 남편도 그제야 아버님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드렸다.

    아들은 유난하리 만큼 친가혈통을 챙긴다. 제 외가가 가까이 있어 자주 드나드는 데도 외가에 가면 어려워한다. 집에서는 내가 먹던 컵도 닦아야 사용하는 아이가, 친가에 가면 아버님 어머님이 드시던 음식도 그대로 잘 먹는다. 시킨다고 될 일이겠는가. 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그렇게 귀여워해 줘도 가까이하는 편이 아니다.



    ‘외손자를 귀여워 하느니 절굿공이를 귀여워하는 게 낫다’는 속담을 이해하게 만드는 아이가 내 아들이다. 이런 아들을 보며 서운할 때도 있다. 겉으로는 어미인 나를 따르는 것 같지만 끝에 가서는 아버지인 남편을 따를 아이가 바로 내 아들이기에 그렇다.

    아무튼 아버님을 가까이하지 못했던 남편도 아들로 인해 아버님을 씻어드리고, 면도도 해 드리고, 머리도 손질해 드리는 효자가 될 수 있었다. 아마 남편은 평생에 처음 아버님과 스킨십을 했을 것이다. 가슴 뭉클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님은 우리가 떠나올 준비를 하자 다시 마루 끝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시더니 서운한 표정을 지으신다. 하지만 남편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당당해 보였다. 아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과 달랐다.

    어제 내린 봄비 때문인지 멀리 보이는 보리밭이 한층 푸르러 보였다. 아버님은 여전히 마루 끝에 앉아서 우리의 자동차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아들도 아버님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 안에서 계속 손을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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