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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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불꽃 튀는 ‘로비戰’

총선 이후 선정작업 본격화 … 잠수함·전투기·미사일·헬기 등 세계 무기제조사들 ‘군침’

  • 입력2006-05-16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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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해·공 불꽃 튀는 ‘로비戰’
    요즘 국방부는 정중동(靜中動)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동중동(動中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 후로 미뤄뒀던 주요 전략 무기에 대한 기종 선정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 후 국방부가 결정해야 할 사업에는 해군이 요구한 차기 잠수함사업(KSS-Ⅱ), 공군이 신청한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F-X)과 방공미사일 사업(SAM-X), 그리고 최근 육군이 신청한 공격 헬기사업(AH-X)이 있다.

    이 4대 사업의 규모는 모두 ‘조’(兆) 단위다. 차기 전투기 사업이 3조~4조원(추정)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사업은 1조∼2조원대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결정권을 쥔 국방부는 조용해도, 각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은 바쁘기 그지없다. 하지만 국가 안보와 직결된 일이라 비밀사항이 많아, 참여 업체들의 움직임은 매우 은밀하다. 기종 선정이라는 최후 결전을 향해 ‘소리없이 내닫고’ 있는 전략 무기 시장의 경쟁 양태를 알아보자.

    제2 율곡비리 비화 가능성

    4대 사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군의 차기 잠수함사업(KSS-Ⅱ)이다. 바닷속에서는 음파(音波)만으로 상대를 탐지하는데, 물 속에서의 음파 전달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구식 잠수함일지라도 일단 잠수해 버리면 재부상할 때까지는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지상 공격용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을 보유하는 것은, 최소 비용으로 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해군이 차기 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관심을 보인 나라는 무려 7개국이었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5개국이 떨어져 나가고 최종적으로 입찰서를 제출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뿐이다(4대사업 중에서 응찰이 이뤄진 것은 현재 이 사업뿐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한국 해군에 209급 잠수함 9척을 공급해온 HDW사가 ‘214’급 잠수함을 들고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프랑스에서는 DCN사가 ‘스콜핀’(심해에 사는 가시돋친 물고기) 잠수함을 들고 링에 올라왔다.

    한때 관심을 끌었던 러시아 잠수함 ‘프로젝트 636M’(일명 킬로급 잠수함)은 성능이 떨어지는데다 덩치가 너무 커서(2350t), 아예 응찰조차 못했다. 러시아는 한국으로부터 약 18억달러의 경협 차관을 빚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 빚의 일부를 갚기 위해 한국 해군의 차기 잠수함사업(KSS-Ⅱ)과는 완전 별개로, 정부 대 정부간 협상으로 프로젝트 636M 잠수함을 한국에 제공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잠수함은 모두 디젤엔진을 탑재하지만 태평양 같은 대양에서의 작전이 가능하다. 지상공격 무기를 탑재하면서도 크기는 매우 작아(1500∼2000t 사이) 잘 탐지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또 AIP(공기가 필요없는 추진장치)라는 특수장비를 달고 있어 다른 디젤 잠수함보다 두 세배 오래 잠수한다. 두 잠수함간의 경쟁은 AIP능력 차이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 HDW사의 214는 ‘연료전지’라는 AIP를 달고 있고, 프랑스 DCN사의 스콜핀은 ‘메스마’라는 AIP를 달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능 면에서는 214의 연료전지가 스콜핀의 메스마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잠수함 선정에는 가격과 기술이전 등 여러 조건이 종합돼 평가되므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독일 HDW사는 ‘시스텍’이란 한국 에이전트 회사를 고용했다. HDW와 시스텍은 독일의 209잠수함 9척을 한국에 공급한 경력이 있어, 한국 해군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해 놓았다는 것이 강점이다. ‘도전자’ 격인 프랑스의 DCN사는 PLP라는 에이전트를 내세워 한국 시장을 뚫고 있다. PLP사의 대표는 이수용 현 해군참모총장과 초등-중-고-해군사관학교 동기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차기 잠수함사업과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김대중대통령이나 국방부 실력자와 매우 가깝다는 사람들이 적잖게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에이전트나 양 사에 접근해 “당신네 기종이 선정되도록 해줄테니 이익금(또는 커미션)의 절반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 중 대표적 인물로 경찰 출신 ㅇ씨와 해사 출신 ㄱ씨가 꼽히고 있다. 이러한 브로커들의 움직임은 자칫 제2의 율곡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공군이 추진 중인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F-X)은 해군의 차기 잠수함 사업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이 사업은 아직 응찰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로비스트(브로커)들이 활발히 움직이는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많은 업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회사는 4개국 6개사다. 미국에서는 보잉사가 ‘F15 스트라이크 이글’과 ‘FA18 슈퍼 크루즈’ 두 기종으로, 록히드마틴사는 F16 시리즈 중 최신형인 ‘블록 60/62’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다소사가 ‘라팔’을, 러시아에서는 국영무기수출회사가 ‘수호이 35’를, 영국의 BAS사를 중심으로 한 유럽 4개국은’ 유러파이터 타이푼’으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공군이 내부적으로 평가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 보잉사의 FA18과 록히드마틴사의 F16 블록 60/62는 몇몇 분야에서 기준점을 넘기지 못해 사실상 탈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나머지 4개 기종 중에서도 러시아의 수호이 35는 전자장비 성능과 후속 군수지원 능력이 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은 미국의 F15 스트라이크 이글과 프랑스의 라팔, 유럽 4개국의 유러파이터 타이푼 3개 기종간의 경쟁으로 압축될 전망이다.

    한국 공군은 F15를 주력기로 하는 미국 공군과 아주 밀접한 연합작전을 구사해 오고 있다. 때문에 한국 공군의 차기 주력 전투기로 F15 스트라이크 이글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군이 너무 미국제 무기에 의지하면 자주성에 문제가 된다는 지적 때문. 또 “F15는 70년대에 나온 오래된 모델이고, 라팔과 타이푼은 이제 막 생산되는 최신 모델이다. F15는 ‘진공관 시절’ 작품이고, 라팔과 타이푼은 ‘반도체 시대’의 모델이므로 같은 값이면 라팔이나 타이푼이 더 낫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유럽 국가의 공군도 미국 공군과 연합 작전을 자주 펼치므로, 한국 공군이 라팔이나 타이푼을 구입하더라도 미 공군과의 연합 작전에는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한국 공군이 유럽제 전투기를 선정할 경우,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한국 방어를 위해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미국이 매우 언짢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 군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무기를 선정할 때마다 미국 눈치를 심하게 살펴 왔다.

    이러한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과 별도로 공군은 KF16 전투기 20대를 추가 생산하기로 결정했는데, 최근 여기에 아주 흥미있는 변수가 생겨났다. 전투기 엔진을 생산하는 미국 GE사가 아주 싼 가격에 KF16용 엔진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 전투기 엔진은 전투기 전체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고가품인데, 지금까지 KF16에 탑재된 엔진은 전부 미국 프랫앤드휘트니(P&W)사 제품이었다. 지난 4월초 GE는 한국의 ‘UI엔터프라이즈’라는 컨설턴트회사를 통해 추가 생산되는 KF16용 엔진 총 가격을 1억달러 미만에 응찰했다.

    GE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한국 시장을 독점해온 P&W는 크게 놀라, 추가 생산되는 KF16용 엔진 총 가격을 무려 3000만달러나 낮춰 역시 1억달러 미만에 응찰했다. 이로써 추가 생산하는 KF16의 엔진시장은 GE와 P&W간의 화끈한 싸움터가 됐는데, 전략가들은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에도 이러한 ‘구도’를 활용하자고 제의한다. 즉 기종-엔진-전자장비-탑재무장별로 나눠 경쟁시켜, 기종은 최신 모델인 라팔이나 타이푼 중에서 선정하고, 엔진을 비롯한 기타 부분은 미제 중에서 선정하자는 것이다.

    전략가들은 이렇게 하면 경쟁이 치열해져 패키지로 구입하는 것보다 가격이 크게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은 비록 기종에서부터 탑재 무장까지 일괄 판매하는 데는 실패했어도, 핵심 부품에 대한 공급권을 장악하게 되므로 심기가 덜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전략가들은 한국군의 자주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 때 이런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차기 잠수함사업과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이 육군 위주로 편성된 국방부에서 육군사업에 밀려 한때 ‘찬밥’ 대우를 받았다면, 공군 방공포병이 운용할 방공미사일(SAM-X) 도입 사업은 전투기 조종사들 위주로 편성된 공군 내에서 ‘톡톡히’ 냉대를 받아온 경우. 공군 조종사들은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할 때는 방공 미사일로 스커드를 요격할 것이 아니라, 전투기로 먼저 스커드 기지를 폭격해야 한다”며 차기 주력 전투기사업 우선론을 주장해 왔다.

    이 바람에 공군 내 방공포병은 이미 수명 연한이 지날 대로 지난 나이키 미사일로 하늘을 지키고 있는 상태다. 97년 12월 인천에서는 수명 연한이 지난 나이키 미사일이 오발사되는 ‘경천동지’할 사고까지 발생했다. 이 사고 직후 국방부와 공군은 새로운 방공미사일 도입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나, 공군 내에서 차기 주력 전투기를 먼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상태다.

    방공미사일 도입 사업에는 미국 레이디온사의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러시아의 S300미사일이 경쟁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육군은 공격헬기(AH-X)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공격헬기는 공중에서 미사일 등을 발사해 적 전차를 파괴하는 헬기다. 이러한 헬기의 대표로는 미국 보잉사의 ‘AH-64D 아파치 롱보’가 있다.

    아파치는 지난 90년 사막을 무대로 한 걸프전에서 크게 위력을 떨쳤으나, 99년 산악지역에서 벌어진 코소보 전쟁에서는 계곡풍에 휘말려 2대가 추락했다. 이런 이유로 아파치는 산악이 많은 한국 지형에는 맞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산악지형에 적합하고 기동력이 좋은 프랑스와 독일 합작회사인 유로콥터사의 ‘타이거’와 남아공 데넬사의 ‘AH-2 루이볼크’다.

    따라서 공격헬기사업은 ‘아파치 롱보’와 ‘타이거’ ‘루이볼크’간의 3파전으로 압축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업은 중도에 폐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한국 육군은 북한군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전차를 보유하고 있고, 비록 구식이긴 하나 북한군에는 없는 공격헬기(AH-1S 코브라)와 공격헬기를 보조하는 스카우트헬기(500MD, BO-105)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상당수의 전략가들은 “공격헬기 사업에 들어갈 예산은 공군의 방공미사일 도입 쪽으로 돌리는 것이 국익 면에서 효율적이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전략가의 객관적인 판단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전략무기 선정이다. 최종선택으로 갈수록 정치적 요인이 크게 개입하고, 로비스트들의 상대편 흠집내기도 치열해져 ‘나도 못먹지만, 너도 못먹게 하는’ 이전투구로 변모하기도 한다. 국방부는 선거 후 벌어질 무기선정 게임을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공정하게 치러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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