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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에서

헬로 Mr.화이트

헬로 Mr.화이트

헬로 Mr.화이트
우리 집에서는 밤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다. 후식으로 사과를 먹을 때가 많고, 대충 과일도 생략하고 TV나 보다가 누가 먼저인지도 모르게 잠들 때도 있다. 우리 부부는 바둑 한 수 두고,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잘 때도 많고….

군에 간 큰아이가 14박15일로 휴가를 나왔다. 저녁식사 후 남편은 통신 바둑을 두고,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읽고 있었다.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라고 리차드 브로티간의 작품 어딘가에 씌어 있다’라는 문구를 읽을 때였다. 나는 책을 펴 놓은 채 아이들 방에 가서 “커피 마실 거니?” 하고 말했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 잔 4개를 꺼냈다. 가족이 모두 모인 밤에 커피향을 즐기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라고 하루키는 쓰고 있다.



큰아이가 휴가를 나오기로 한 날 아침에 부대로 전화를 했다. 벌써 집으로 떠났다고 화이트 병장이 말했다. 아들이 집으로 오고 있다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You are very kind. I heard about you from my son. Thank you!” 했더니 저쪽에서 알아들었는지 좋아했다.

서전 화이트. 그는 미8군 한국군지원단(KATUSA)으로 복무중인 큰아이의 상관이다. 30대 초반의 흑인 병사인데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에 있다고 한다. 가족과 이역만리 떨어져 지내는 화이트 병장이 안쓰러웠다.

캠프로 전화를 하면 우리 아이 아니면 화이트 병장이 받는다. 처음 전화했을 때는 당황해서 ‘Thank you’ 소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중후한 목소리로 멋있게 영어로 얘기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꼬부랑 말을 한참 하다가 안바꿔주면 아들이 그 자리에 없나보다 했다. 그런데 요즘은 화이트 병장인지 우리 아들인지 구별이 잘 안될 정도로 목소리가 어려 보인다.

“이제 어머니를 잘 알기 때문에 긴장감이 많이 없어져서 그럴 겁니다”고 큰아이는 설명한다. 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외워뒀다가 적당히 하게 됐으니까. 그는 착하고 친절하고 유머가 있다. 큰아이와는 장난도 잘 치고, 일을 가르칠 때도 상대방 입장에서 잘 알아듣도록 배려해 준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식으로 표현한다면, ‘서젼 화이트의 피부색은 어둠처럼 검고, 그의 마음은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하다’고 해야 할까.

7월에 미국으로 돌아갈 화이트 병장 책상 위에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 사진이 있다고 한다. 그가 떠나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지만, 화이트 병장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모여 커피 타임을 즐기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주간동아 227호 (p9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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