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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문제

화이트 USA… 법마저 백인편?

법원, 죄없는 흑인 사살한 백인 경찰에 무죄 선고…흑인단체들 거세게 반발

화이트 USA… 법마저 백인편?

화이트 USA… 법마저 백인편?
미국이 또다시 인종문제로 시끄럽다. 지난해 2월 뉴욕 브롱크스 지구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흑인 아마두 디알로 사건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년만인 2월25일 뉴욕주 법원은 디알로를 범죄자로 오인하고 41발의 총알을 발사한 경찰관 네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들은 디알로가 뒷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그가 총을 꺼내려 한다고 생각하고 방어를 위해 총을 쏘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작 19발의 총알을 맞고 벌집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디알로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총이 아닌 지갑이었다.

이처럼 애매한 상황에서 법원이 경찰들의 손을 들어주자 할렘의 흑인교회를 중심으로 한 흑인 인권단체들이 “경찰 눈에 흑인은 범죄자로만 보인단 말이냐”며 일제히 들고일어난 것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26일 이후 계속 사건의 추이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지켜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덤덤한 편이다. 백인 경찰에 의해 흑인 범죄용의자들이 구타당하거나 사살당한 사례들은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대개의 경우 법원은 흑인 범죄자로부터 대다수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폭력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경찰의 입장을 합리화해 준다.

그래서인지 백인이 가해자이고 흑인이 피해자이며 법이 백인의 편을 드는 사건은 잊을 만할 때마다 다시금 매스컴에 등장하곤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 저변에, 흑인은 범죄자이든 아니든 물리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적인 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종차별의 역사는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 깊숙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그것은 미국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이며 원죄이기도 하다.

디알로 사건으로 연일 신문지면이 채워지고 있던 2월의 마지막 주말 ‘뉴욕타임스’에 나온 한 기사는 다시금 미국의 뿌리깊은 원죄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1906년 미국 남부의 테네시 주에서 에드 존슨이라는 흑인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죄목은 백인 여자에 대한 강간이었다.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피해자의 진술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서 존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배심원 중 한 사람은 재판 중에 존슨을 구타하기까지 했다.

존슨은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그에게 항소심을 기다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사형집행을 기다리지 못한 백인 폭도들이 감옥을 습격한 것이다. 폭도들은 차타누가 시 중심가로 한참 존슨을 끌고 다닌 뒤에 테네시강의 다리 난간에 존슨을 달아맸다. 존슨은 “나는 결백하다”(I am innocent)는 말을 남긴 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성이 채 풀리지 않은 백인 몇몇은 허공에 매달린 존슨에게 마구 총을 쏘아댔다. 벌집이 된 그의 시체는 테네시 강물 위로 떨어졌다. 존슨을 끌어내기 위해 감옥을 습격한 폭도들에게 죄를 물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폭도 중에는 당시 법원의 실력자들도 끼여 있었기 때문이다.

94년전 사건이 새삼스럽게 신문지면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테네시주 법원은 최근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한 끝에 존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주 법원의 판사인 더글러스 메이어는 이 사건에 대해 “당시의 법원과 백인 사회가 이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했다고 볼 수 없다. 그들은 범인이 아니라 분풀이할 흑인을 찾아냈을 뿐이다. 따라서 범인을 특정인, 즉 에드 존슨이라고 볼 수 있는 확증은 아무 데도 없다”는 이유로 존슨의 무죄를 선고했다.

젊은 나이에 죽은 존슨은 자손은커녕 무덤조차 남기지 못했다. 한 세기 전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차타누가의 흑인 목사인 폴 멕더니엘이 오래된 사건 기록에서 존슨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멕더니엘은 변호사인 르로이 필립스와 마크 커리던에게 사건 기록을 가져갔고 존슨의 무죄를 확신한 변호사들은 사건에 대한 책을 냄으로써 지역 사회에 존슨 사건을 환기시켰다.

존슨처럼 백인들에게 린치를 당한 흑인들의 피해 사례는 미국 역사에서 끝없이 발견된다. 미국에서는 1882년부터 1944년까지 60여년간 무려 4708건의 백인에 의한 흑인린치 사건이 발생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원인이 된 로드니 킹 사건,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디알로 사건은 이 수치스러운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해자가 폭도에서 경찰로 바뀌었다는 점뿐. 그리고 법원은 로드니 킹을 구타하고 디알로를 사살한 경찰들에게 여전히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존슨 사건의 판결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100여년 전의 사건까지 끄집어내어 진실을 밝혀낸 미국은 역시 정의가 승리하는 나라인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존슨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애국심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존슨 사건에 대한 무죄선고를 이끌어낸 변호사 필립스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해 장밋빛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무죄 선고라는 사건의 결말을 통해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곧 해결될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당사자인 존슨은 이미 죽음이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 세기 후에야 내려진 무죄 판결이 존슨에게 무슨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죽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은 법이다.

뉴욕 상원의원 선거전은 ‘흑백 戰’

힐러리 “법원 결정은 잘못”… 줄리아니 “법원 판결은 옳다”


‘미국의 인종문제는 교회의 설교단에서 시작되어 정치판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 교회의 흑인 목사들이 인종차별문제를 제기해서 여론을 불러일으키면 정치인들이 이를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기 때문이다. 디알로 사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사건은 뉴욕주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와 힐러리 클린턴의 맞대결로 비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줄리아니는 디알로 사건에 연관된 경찰들에게 무죄가 선고되던 25일 곧바로 법원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은 뉴욕 경찰은 여러 인종들이 모여 있는 뉴욕 사회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찰 구성원들 중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말로 줄리아니의 입장을 비판했다. 그러자 줄리아니는 NBC TV와의 회견 중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은 감정이나 편견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시돋친 말로 힐러리의 주장을 맞받아쳤다.

한편 뉴욕타임스와 CBS 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뉴욕 시민 50%가 디알로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응답했다. 법원 결정을 지지하는 응답은 30%에 그쳤다.




주간동아 225호 (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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