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2000.03.02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보는 눈

  • 입력2006-02-03 1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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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보는 눈
    지난 1월31일 세계 133개국 대표들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생명공학 의정서(Biosafety Protocol)를 채택하는데 합의했다. 이로써 농산물 수입국들은 유전자조작농산물(GMO)에 대해 수입제한 조치를 취하고 자연산 제품과 구분해 GMO 표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됐다. 물론 이 합의문은 모호한 면이 많아 각국의 해석과 시행 방법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도 생명공학의 안전성 문제는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소비자보호원이 국내 시판 두부 중 82%가 유전자조작된 수입콩을 원료로 사용한다고 발표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반면 두부생산업자들은 이에 반발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결국 논쟁의 양 당사자 모두 유전자조작 식품이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암묵적 가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동안 수입해 두부를 만들어 먹었던 콩은 과연 어떤 유전자조작 과정을 거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의 농화학회사인 몬산토는 라운드업이라는 제초제를 생산-판매해 왔다. 이 제초제는 독성은 약했지만 잡초뿐만 아니라 농작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많아 이 회사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콩의 제초제 저항력을 높인 뒤 농민들이 안심하고 제초제를 뿌릴 수 있도록 했다. 몬산토의 자체 자료에 따르면 ‘라운드업 레디’라 불리는 이 새로운 품종은 수확량은 크게 늘리는 한편 농약 사용은 최고 40%까지 줄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미국내에서만 매년 10억달러를 절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화학농약에 찌든 농산물과 아직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생명공학 농산물 중 소비자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게 할 것인지의 문제로 요약된다. 물론 제3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약은 물론이고 유전자조작 종자도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2, 3배나 비싸고 농경방식의 성격상 대규모화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현재의 영농방식을 완전히 대체할 대안은 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유전자조작에 의한 농산물 생산은 그동안 환경오염과 인류건강에 막대한 위협을 미쳐왔던 화학농법을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 한마디로 농약을 지금보다 적게 섭취할 수만 있다면 ‘잠재적 유해성’만을 갖고 있는 생명공학 농산물 도입은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더구나 이로써 콩 옥수수 밀 등 주식류의 가격을 크게 인하시켜 소비자들의 가계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현재 8억5000만명에 이르는 전세계 영양실조 및 기아인구에게 풍부한 식량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명공학 농업제품에 대해 정책입안자들이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대중적 감정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극히 복잡하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GM 농산물 표시는 반드시 시행해야 할 제도임에는 분명하나 일정한 기준치를 두어서 파종에서 수확, 가공 과정에 이르는 동안 생길 수 있는 자연산 제품과의 혼합을 허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분리 처리에 따르는 추가비용 발생으로 자연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우선 농산물 표시제도를 시행하여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두고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의 GMO 거부감이 심할 경우 유전자조작 식품은 팔리지 않을 것이고 자연산 식품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판매될 것이다. 이렇듯 일정한 가격차로 두 가지 종류의 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반영되면 GM 식품을 금지할지 허용할지에 대한 흑백논리는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된다. 식품안전에만 집착하여 GMO 수입을 일체 금지할 경우 가격상승은 물론, 정보통신에 이어 머지않아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될 수 있는 생명공학 분야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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