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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검찰개혁

“항고사건 즉시 처리해 줍니다”

서울 남부지청 이복태 부장검사… 고검 거치는 관행 깨고 직접 재수사 여부 결정

“항고사건 즉시 처리해 줍니다”

“항고사건 즉시 처리해 줍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이복태 형사2부장(50)은 부장 타이틀만 10년째 달고 있는 ‘만년 부장’이다. 20년이 넘는 검사생활 동안 ‘물 좋은’ 법무부와 대검에는 단 한 번도 가보기 못한 채 지검-지청 등 ‘야전’만 돌아다닌 전형적인 수사 검사다. 요직 진출이나 발탁 인사 같은 은전을 받은 바 없는 그가, 역대 검찰총장도 추진하지 못한 검찰 개혁을 진행하고 있어 화제다. 그가 벌이는 개혁은 거악을 상대하거나 정경유착을 무너뜨리려는 화려한 투쟁이 아니다.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한 국민을 달래고 다독이는 ‘정겨운’ 개혁이다.

검찰제도 중에 ‘항고’(抗告)라는 게 있다. 국민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 사건을 수사해 주십시오’ 라고 검찰에 고소장을 내밀게 된다. 이때 검찰이 국민(고소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해자(피고소인)를 기소하면 고소인의 억울함은 풀릴 수 있다. 그러나 피고소인을 기소할 수 없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릴 경우, 고소인의 억울함은 극에 달하게 된다. 이럴 때 고소인이 신문고처럼 두드릴 수 있는 제도가 ‘항고’다. 항고는 ‘처음 이 사건을 조사한 검사의 판단이 잘못된 것 같으니 다른 검사로 하여금 조사케 해달라’는 의뢰서이다.

불기소 결정 땐 고소인에 설명해 줘

이처럼 항고는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의미있는 제도지만, 지금까지 검찰 내에서는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받아왔다. 이미 동료 검사가 불기소 결정을 한 것을 다른 검사가 뒤집어서 기소한다면 두 검사 사이가 불편해지기 때문에 항고사건은 기피 대상이었다. 그래서 항고사건은 무조건 고검에 보내, 고검으로 하여금 재조사 여부를 판단케 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고검이 고소인의 주장을 인정해 ‘재기(再起)수사’를 명령하면, 그제서야 지검-지청은 재수사에 착수하는 것이다.

항고사건이 고검을 거쳐 지검-지청으로 되돌아올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데, 그러는 사이 이 사건을 처음 수사한 검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수사를 맡은 검사는 처음 수사한 검사에 대해 부담감 없이 재수사에 착수할 수가 있다. 이러한 관행은 ‘국민의 공복’인 검찰이 국민 편에서가 아니라 검사 편의를 위주로 항고사건을 처리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복태부장은 이런 관행을 깨고 지검-지청으로 항고장이 접수되면, 부장인 그가 직접 검토해 재수사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35건의 항고사건을 재수사시켜, 그중 43%인 15건을 기소케 했다. 재검토를 해도 불기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사건일 경우에는, 항고인(고소인)을 불러 “당신 주장은 옳지만 지금의 형법 조항으로는 처벌할 수가 없으니 민사로 다퉈보라”고 안내해준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검사가 불기소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검찰 관행은 검사는 ‘나랏님’ 처지에서 결과만 통보하고, 고소인은 ‘아랫것’ 처지에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부장은 자신의 ‘개혁’ 작업에 대해 “이런 것도 취잿거리가 되느냐”며 검사의 의무를 다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 “검찰은 너무 권위적이고 조로화되고 있다. 이제 땅에 떨어진 검찰의 권위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검사들은 권위라는 장막 뒤로 숨지 말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은 이부장이 시도한 개혁을 전국 검찰조직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주간동아 2000.02.24 222호 (p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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