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2

2000.02.24

‘마담뚜’가 사라진다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맞선업체 선호… “‘士’자보다 벤처기업가 펀드매니저 소개해 주세요”

  • 입력2006-07-19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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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담뚜’가 사라진다
    70년대 이후 상류층 사회의 결혼시장을 주도하던 속칭 ‘마담 뚜’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이들은 사법연수원생이나 의사 박사 등 이른바 ‘사’자 돌림 신랑감이나 지색(知色)을 겸비한 명문대 출신의 신부감을 상류층 자제들과 맺어주던 비공식 중매집단.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주말을 이용해 마담뚜들이 맞선장소로 주로 애용한다는 롯데호텔 커피숍을 찾았지만 마담뚜가 낀 자리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서울 플라자호텔 커피숍도 2, 3년전에 비해 주말 맞선자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이곳 직원의 귀띔이다.

    작년 말, 대통령의 조카딸 김혜영씨와 사법연수원생을 연결시켜 화제가 된 상류층 결혼전문회사 에스노블 대표 이장희씨에 따르면 “최상류층은 지금도 강남 모 의상실의 C사장 같은 마담뚜를 찾는다. 하지만 마담뚜들 스스로 30% 이상 수입이 줄었다고 호소할 정도로 그쪽 시장이 위축돼 있는 게 사실” 이라고 한다.

    강남에서 10년 가까이 마담뚜 일을 하고 있다는 이모씨(56·서울 방배동)도 “최근엔 결혼 성사는 고사하고 맞선을 보일 적당한 상대를 구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수입이 약간 줄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절반도 안되는 것으로 보였다.

    마담뚜의 몰락에 대해 결혼전문업체인 ㈜선우의 이순진이사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단언한다. 이제 서민층 상류층 할 것 없이 마담뚜나 결혼상담소에 의한 폐쇄적인 중매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혼전문업체를 통한 짝짓기로 결혼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선우가 회원7팀에서 하이클라스 회원 560여명 정도를 특별관리하는 것을 비롯, 대형 결혼전문업체들은 저마다 일정 숫자의 상류층을 특별관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상류층만 회원으로 받아서 결혼중매를 하는 에스노블은 창립 9개월만에 회원이 700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왜 이들 상류층은 기존의 마담뚜를 마다하고 결혼전문업체를 찾는 것일까. 이순진이사에 따르면 최근 결혼적령기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MF사태 이후 선호하는 남편의 직업이 과거의 ‘사’자에서 벤처기업가와 펀드매니저 등 금융-증권 직종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담뚜의 수첩에는 여전히 사법연수원생들과 명문대 졸업생 명단만 들어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결혼연령층의 의식변화를 못쫓아간 것이죠. 또 이직이 잦고 새롭게 등장하는 이들 새로운 업종의 인재들을 파악할 능력이 마담뚜들에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더구나 이전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가 강한 결혼적령기의 신세대에겐 만남이 자유로운 결혼전문업체의 열린 구조가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다. 선우에서 만난 김성진씨(32·의사)는 마담뚜가 끼면 집안간의 혼사가 되어 만날 때마다 이모저모 신경쓰였는데, 결혼전문업체는 개인들끼리 연결시켜주니까 만남이 훨씬 덜 부담스러운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소개받은 사람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조건을 보고 서로 마음에 들어야 만나니까요. 그런 면에서 훨씬 더 객관적으로 폭넓게 상대방을 고를 수 있어서 좋죠.”

    상류층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이들 업체는 대부분 하이클라스의 회원자격을 엄격히 제한한다. 희망자의 절반 이상이 서류심사에서 탈락할 정도. 더 나아가 강남의 특정고교나 일류대학의 특정 동창회원들을 회원으로 유치하기도 한다. 그래야 상품성 높은 회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에스노블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입한지 6개월이 지나도록 소개 한번 못받았다는 명문여대 출신 여성의 항의편지가 오를 정도로 회원들의 수준이 높다.

    사실 마담뚜의 장점은 음성적으로 중매가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그들이 속한 상층사회에서만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는 결혼전문업체보다 마담뚜 시장이 신분노출이 잘돼 문제라고 한다. “마담뚜는 보통 한 명이 많아야 40~50명을 관리해요. 그것도 여자가 70% 이상이죠. 그 정도 인원관리만으로는 중매 성사가 잘 안되니까 자기들끼리 서로 자료를 돌려요. 그러다 보니 금방 누구 자식이 중매시장에 나왔다는 소문이 돌죠. 누가 그걸 좋아하겠어요.”

    마담뚜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도 이들을 멀리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마담뚜가 한번 만남을 주선할 때마다 소개비로 20~30만원씩 챙기고, 결혼이 성사되면 몇천만원을 요구하는 데 비해 결혼전문업체는 회비가 최고 100만원을 넘지 않고, 10명에서 15명을 소개시켜주니 훨씬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셈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문제죠. 맞선자리에 나가는 게 마치 저 자신을 돈으로 사고 파는 물건으로 만드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내가 뭐가 부족해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몇차례 마담뚜를 통해 맞선을 보았다는 진재희씨(28·여)는 마담뚜 이야기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담뚜의 농간에 속아서 결혼했다 파혼까지 한 친구를 보고는 결혼전문회사의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결혼전문업체는 오히려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 소개하니까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담뚜의 몰락은 결혼전문업체들과의 경쟁력 상실이 큰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제 마담뚜가 필요없을 만큼 상류층의 저변이 확대되고 안정됐기 때문이라고 에스노블 이장희대표는 분석했다.

    “이미 상류층 사람들은 그 자제들이 특정 그룹을 만들어 자생적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상류층 내에서 배출되는 ‘사’자들도 크게 늘었고요. 굳이 과거처럼 다른 계층에서 능력있는 배우자를 찾을 필요가 없어진 거죠.”

    작년 8월 결혼한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손녀딸과 쌍용그룹 김석원회장의 장남 커플도 명문 초등학교 동창으로 상류층 자제들의 사교모임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진 사례다. 또한 서울대와 이화여대 출신의 사교모임을 통해 결혼하는 게 최근 상류층 사회의 유행풍조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듯 몇년 전부터 사법연수원 주변엔 마담뚜가 사라졌다. ‘사’자 중에서도 상류층 출신들은 이미 은밀한 시장에서 거래가 끝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등급 신랑감 후보로 평범한 집안의 법조인보다는 직업이 좀 뒤떨어진다 해도 상류층 출신을 선호해요. ‘사’자가 그럴 정도이니 평범한 집안 사람은 결혼전문업체 회원으로 가입했다 하더라도 상류층과 맞선을 보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하죠. 아주 예쁘면 모를까.”

    이제 과거와 같이 가난한 집안에서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상류사회에 편입할 가능성은 사라져가고 있다. 결국 마담뚜의 몰락은 상류층과 서민층간의 벽이 한층 더 두터워졌음을 알려주는 입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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