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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21세기 예술의 진로

‘순수’는 가라, ‘퓨전’시대로

21세기 예술 신개념들… ‘가상현실’도 새로운 환경으로

‘순수’는 가라, ‘퓨전’시대로

‘순수’는 가라, ‘퓨전’시대로
새로운 예술을 이해하는데 연극, 영화, 미술 같은 장르적 특성은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현상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혼성, 잡종, 퓨전

‘순수의 시대’는 끝나고 모든 것은 뒤섞인다. 고급과 저급한 예술의 구분은 사라지고 동양과 서양, 예술장르 사이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대표적인 작품이 92년 베니스비엔날레 수상작인 로버트 윌슨의 ‘기억/상실’로, 진흙으로 만들어진 방에서 퍼포먼스와 시낭송을 하는 설치 작품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공간’을 매개로 건축과 무용이 만나거나(‘춤과 건축의 만남’) 미술가의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기 도 했다(‘크로스’전). 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문학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짜깁기이며 음악은 전자음을 ‘샘플링’으로 뒤섞어 ‘테크노’를 만들어냈다. 3D컴퓨터 그래픽은 클릭 하나로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한 이미지를 꺼내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 혼성의 극단적인 형태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 즉, 사이보그이다.

디지털 비디오

1960년대 누벨바그 영화를 만든 것이 가벼운 35mm 카메라와 녹음기였다면 ‘도그마95’로 상징되는 90년대 영화의 혁명을 이루고 있는 것은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다.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는 원래 가정용 비디오로 개발됐지만 그동안 비디오카메라의 단점이었던 해상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디지털로 촬영된 영상은 ‘키네코’(비디오 영상을 필름으로 전환시키는 한 방식) 작업을 통해 극장에서 영화로 상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조영각사무국장은 “필름 대신 저렴한 비디오테이프로 촬영하고 편집은 개인용 컴퓨터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제작비가 크게 줄고 기동성이 커졌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즉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노동자뉴스제작단’ ‘푸른 영상’같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일찌감치 디지털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해왔고 외국에서는 라스 폰 트리에가 95년 칸에서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백치들’을 공개해 충격을 주었다. 이제 디지털 비디오는 할리우드와 충무로, 방송과 독립영화인 뿐 아니라 미술작가들도 애용하는 미디어가 됐다.

‘n’세대는 중심(center)에 모여 있지 않고 흩어져 익명으로 존재하면서 수평적 통신망을 통해 연결돼 있다. 네트워킹의 가장 큰 특징은 인터액티비티(쌍방향성)이다. 즉, 예술가가 대중에게 일방적으로(수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도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소설이 여러 가지 갈래로 풀려 나가기도 하고 ‘사이버’ 미술작품은 감상자의 ‘클릭’에 의해서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모나리자’를 인터넷으로 구경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네트 컬처의 진정한 모습은 ‘네트워킹’의 구성방식 그 자체에 있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컴퓨터 화면을 클릭하면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전자망으로 연결된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소통방식’과 ‘의식의 흐름’을 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데 (‘네트워킹’)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트 컬처의 걸작은 장 뤼크 고다르의 ‘영화 이야기’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미 존재하는 사진, 필림, 회화를 ‘생각’의 프로세스를 따라 연결한 에세이다. 한편으로 네트 컬처의 무서운 힘을 보여준 것은 영화 ‘블레어 윗치’의 인터넷 마케팅이다.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원래 항공기 조종사의 훈련을 위한 시뮬레이션이었던 ‘가상 현실’은 이제 새로운 예술의 환경이 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 영상미디어연구센터의 김형곤박사는 “기존의 모니터 단말기를 없애고 공간 자체를 단말기로 만드는 방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3D 그래픽으로 이뤄진 가상 현실 안에서 인간은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그 세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사용자)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상 현실’이 삶을 대체하고 현실이 ‘가짜’가 될 것이라는 초기의 기술중심적 믿음은 의심받고 있다. 현실 대 가상 현실의 이분법이 아니라 가상 현실을 인간 내면의 심리가 표현된 삶(이것이 바로 예술이기도 하다)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가상 현실’에 가장 열광하는 쪽은 할리우드 영화들과 3D 게임에 익숙한 관객들이다. ‘매트릭스’는 ‘현실의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카메라 120대로 찍은 ‘플로 모’ 촬영 기법을 통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점 이동을 보여준다. 가상 현실에서 리얼리즘이란 수(digit)로 전환된 선과 점과 움직임을 얼마나 정교하고 빠르게 짜맞추는지에 달려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에 달려 있다.

디지털 혁명+바우하우스 운동?

“미래예술은 미디어 테크놀로지 아트” … 새 르네상스 예고


20세기 내내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에 대해 해롤드 로젠버그는 ‘새로움의 전통’이라 칭했지만 이제 그 에너지는 거의 소진되었다. 모더니즘의 추진력이 급격히 저하된 1970년대를 주목하면서 이브 미쇼는 “30년 전에 20세기는 끝나버렸다”고 평가했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에 대응해 온 아방가르드(정치적인 것이든 미학적인 것이든)의 죽음을 의미한다. 각종 미술 중개기구와 국제 미술 시장의 확대로 예술 제도는 100년 동안 상당히 팽창했지만 그에 맞서 대안적 가치들을 생산해온 미술들 은 전망을 상실하고 혼란에 빠져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좀 더 유력하고 새로워 보이는 것은 멀티미디어 테크놀로지 아트이다. 정보미디어가 지배할 세상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미술이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독일의 ZKM, 프랑스의 르 푸레누아 미술대학, 일본의 ICC, 미국 MIT대학의 미디어 랩 등은 새로운 미디어 아트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최고의 첨단 테크놀로지 예술기관들이다. 이 기관들은 미래 예술이 미디어 테크놀로지 아트가 될 것이라 예견하면서 엄청난 자본과 기술,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혁명의 개념을 20세기 초 일어난 바우하우스 운동의 이념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바우하우스’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란 기계산업 시대의 생산 방식 이래 미술과 일상, 디자인과 순수 미술을 통합하려는 진보적인 예술운동이었다. 이제 그 양자의 결합은 새로운 르네상스,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컴퓨터 테크놀로지 혁명으로 인한 ‘통합적’ 세계 문화의 도래를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테크놀로지 자체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근본적이고 전면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인문학 시대(지식사회)를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기술주의 혹은 기능주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멀티미디어 테크놀로지에 대한 표피주의적 해석과 오해에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새로운 예술을 문화산업 논리와 연관짓는 천박한 경제주의적 관점이 억압적인 현실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 새로운 세기를 위한 새로운 예술은 단지 환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주간동아 2000.01.13 217호 (p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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