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6

2000.01.06

“국가보다 개인, 논리보다 감성”

‘밀레니엄 변화’ 10가지… 브레이크 없는 ‘사이버 시대’, 보디 업그레이드도 ‘눈앞’

  • 입력2006-05-25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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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다 개인, 논리보다 감성”
    프로메테우스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진정 가이아의 시대다. 종래의 국가는 지배하고 군림했지만, 미래의 국가는 서비스할 뿐이다. 지식은 논리와 형식을 중시하는 하드웨어 형태에서 감성과 내용을 중시하는 소프트웨어 형태로 변하고 있다. 돈은 뱅킹 머니에서 전산망을 타고 휘몰아 다니는 일렉트로닉 후로잉 머니로 변한 지 오래다. 학교는 단지 가르치고 배우면서 준비하는 곳에서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 즉 모험을 합작하는 곳으로 변한다. 몸 또한 한 번 형성되면 그만인 것에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하나의 시계 아래 모두가 살았지만 앞으로는 각자의 시계 아래 각각이 살 것이다. 우리 일상은 더 이상 현실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가상공간을 통해 더 확장된다. 사이버 워크(cyber work)가 물리적 노동을 점점 더 많이 대체하는 가운데 전쟁 역시 물리전(phisical warfare)에서 사이버전(cyber warfare)으로 중심 이동을 하고 있다. 누구도 이 변화들을 멈출 수 없다.

    1. 지구가 변한다

    지난 시대가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시대였다면, 새로 맞이한 시대는 대지의 여신으로 상징되는 가이아의 시대다. 러브록(J. E. Lovelock)의 말처럼 지구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그는 지구 자체의 밸런스 시스템을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 이름을 따서 ‘가이아’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이아가 파괴되고 생명체로서의 지구가 신음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체감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더 나아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명은 급변하는 지구환경의 생태 밸런스를 회복하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2. 국가가 변한다

    종래의 국가는 지배하고 군림했지만, 미래의 국가는 서비스할 뿐이다. 국가가 서비스의 기능을 포기한다 면 그 국가는 사라질 것이다.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환경 경제 안보 정치 문화 등의 갖가지 문제들이 더 이상 국민국가 단위에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클린턴 1기 행정부의 노동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 역시 한 국가의 국민이 한 배를 탄 경제운명공동체라는 생각 자체가 이제는 허구라고 말한다. 지난 시대의 사람들은 개인의 부와 경쟁력이 국가의 부와 경쟁력에 의존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개인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대체할 것이다. 국가는 다만 개인의 경쟁력이 방해받지 않도록 제반의 서비스를 해줄 뿐이다.



    지난 시대의 지식이 논리와 형식을 중시하는 하드웨어 형태였다면, 새로 맞이한 시대의 지식은 감성과 내용을 중시하는 소프트웨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논리와 형식 중심의 지식은 컴퓨터와 데이터베이스가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그런 종래의 지식은 습득의 대상이 아니라 접근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감성과 내용 중심의 지식은 그 자체가 콘텐츠웨어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처가 된다.

    4. 돈이 변한다

    지난 시대의 돈이 가시적으로 쌓이고 집적되는 특성을 가진 뱅킹 머니였다면, 새로 맞이한 시대의 돈은 비(非)가시적으로 온라인망을 타고 휘몰아 다니는 일렉트로닉 후로잉 머니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띨 것 이다. 동구블록의 붕괴와 소련의 해체,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 등으로 인한 냉전의 종식후 사회주의권의 25억 인구가 새로 시장경제권에 편입함으로써 ‘돈’, 즉 자본에 대한 수요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이로 인해 이동성 강한 금융자본이 그 어느 때보다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몇해 전 사실상의 세계은행인 미국연방준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이사장은 “지금 세계 금융시장은 칸막이 없는 거대한 유조선과 같다. 한쪽에 구멍이 뚫리면 전체가 침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었다. 지금 그 경고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구 각지로 뻗어있는 온라인망을 타고 휘젓는 사이버 머니화되어 버린 투기성 이동자본의 급증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5. 학교가 변한다

    지난 시대의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면서 준비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새로 맞이한 시대의 학교는 단지 준비의 마당이 아니라, 직접 시도하는 조인트 벤처, 즉 모험합작의 매개장이 될 것이다.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2010년께 가서는 범지구적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 인력의 고(高)기술화`-`초(超)정보화`-`다(多)용도화`-`범(凡)지구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이미 각급 학교의 교육내용을 대폭 바꾸고 있다. 세분된 전공을 없애고 다양하고 폭넓게 유연성있는 지식응용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 교육콘텐츠개혁의 핵심방향이다. 아울러, 여성인력의 사회진출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새로 맞이한 시대에는 여성 교육에 성공하는지의 여부가 교육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6. 몸이 변한다

    지난 시대에 몸은 오직 한 번 성장하고 형성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새로 맞이한 시대에는 몸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보디 업그레이드가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이보그(cyborg)로의 길이 열린 셈이다. 시황제도 할 수 없었던 불로장생의 꿈을, 새로 맞이한 시대에는 약간의 재력만 있어도 육체적인 노쇄현상을 늦추고 늙은 신체를 젊게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의 50대와 60대 부유층 사이에선 노화된 장기를 교체하는 보디 업그레이드 수술과 노화현상을 억제하는 호르몬 요법의 시술이 확대되고 있다. 이 신판 불로장생술은 유전공학과 생명과학의 발전으로 가능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젊어질 수 있는 육체에 비해 뇌의 기능이나 정서 등 정신의 영역을 젊게 하는 의학적 요법은 아직 미개척상태에 있다. 그래서 보디 업그레이드를 한 노년층들 중에는 젊어진 육체와 여전히 늙은 상태인 마음간의 불균형에서 오는 신종 노이로제가 심각한 사회병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시대에는 하나의 시계 아래 모두가 살았다. 새로 맞이한 시대에는 각자의 시계 아래 각각이 살 것이다.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이른바 나인 투 파이브(9 to 5)의 관리된 시간 관념은 무너져 내리고 내가 스스로 일할 때를 정해서 워크타임을 할당하는 식의 시간관념이 보편화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시간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라는 도식 속에서 쳇바퀴 돌 듯 관리된 시간(managed time)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에는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되어 광속도로 이루어지는 일과 소통(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세이브되고 창출된 시간(creative time)이 나올 것이다. 내가 필요한 만큼의 시간만을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세이브해서 사고 파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새로운 자본으로 등장할 것이다.

    8. 공간이 변한다

    지난 시대에 우리의 주된 공간은 현실공간이었다. 그러나 새로 맞이한 시대에 우리의 생활은 가상공간을 통해 더 확장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지난 15, 16세기의 지리상 대발견을 통해 팽창하기 시작했던 공간감각이 제국주의시대를 정점으로 수축하기 시작해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지구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든 미디어혁명을 거쳐 이제는 인터넷상의 한 점으로 응축되고 압축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의 빈번한 ‘전자적 위치이동’은 사람들의 공간감각 자체를 팽창에서 압축으로 전환시킨 셈이다.

    아울러, 지난 시대에 우리는 우주로 첫발을 내딛었다. 새로 맞이한 시대에 우리는 미지의 우주공간으로 더 가속적인 확장을 시도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지구 안의 공간시대에서 지구 밖의 공간시대로 옮아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생명과 유전자의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 우리의 눈을 외부의 거시공간에서 내부의 미시공간으로 더 깊이 옮겨놓고 있다.

    9. 일이 변한다

    1912년에는 T형 포드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4664시간의 단위시간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오늘날 컴퓨터는 생산과정에서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제거해가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이란 책에서 물리적 노동의 종말과 사이버 워크(cyber work)의 출현을 이야기했다. 지난 시대처럼, ‘몸을 움직이고 손이 수고해야’ 무엇인지를 수확할 수 있다는 고전적 노동의 공식은 무너졌다. 새로 맞이한 시대에는 ‘마음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 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일의 공식이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10. 전쟁이 변한다

    지난 시대의 전쟁은 물리전(phisical warfare)이었다. 그러나 새로 맞이한 시대의 전쟁은 사이버전(cyber warfare)으로 전개될 것이다. 전쟁사가 존 키건(John Keegan)의 말처럼 전쟁은 일종의 문화양식이다. 인류의 삶 전반이 사이버 환경으로 더 폭넓게 진입하는 이 시대에 전쟁 역시 사이버전의 양상을 띨 것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지난 90년의 걸프전은 새로 등장하는 사이버전의 예고탄이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과 방어는 전혀 새로운 안보환경을 만들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투영역의 경계는 매우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극단적인 경우, 적의 핵심 네트워크에 침투할 수 있는 해커와 프로그래머만 있어도 된다. 실제로 걸프전 당시, 유럽의 해커들은 100만달러만 주면 미군의 군사작전능력을 무력화시켜주겠다는 제안을 사담 후세인에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존 워든(John Warden)의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공격`-`방어 능력 개발은 21세기의 전쟁양태에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군대의 컴퓨터`-`정보체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우주에서 중력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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