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6

2000.01.06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이총재 원외 측근들 총선출마 움직임… 비주류측 “좌시 않겠다” 엄포

  • 입력2006-05-25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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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
    동교동 가신 ‘상도동 가신’이란 말이 있다. 김대중대통령(DJ)과 김영삼전대통령(YS)이 야당지도자로 어려움을 겪었던 수십년간 ‘주군’인 이들에게 충성을 다하며 함께 가시밭길을 헤쳐온 인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의 야당지도자인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에게 ‘가신그룹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건 ‘우문’일 것이다. 이총재에겐 DJ나 YS와 같은 의미의 가신그룹이 없기 때문이다.

    30년의 법관생활과 잠깐의 고위공직(감사원장과 국무총리)을 경험한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게 15대 총선을 바로 코앞에 둔 96년초니 가신이 생겨났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더욱이 ‘구태정치의 표상인 가신정치와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 이총재의 지론이고 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이총재가 측근조차 없이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DJ와 YS의 가신그룹 수준엔 못미치지만 그에게 만만치 않은 충성심을 보이는 ‘측근그룹’이 없지 않다.

    이총재 측근그룹의 큰 특징은 원외인사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다. 대선 국면에서는 ‘원내 7인방’이 득세했지만 야당총재가 된 뒤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 고흥길섭외특보 이원창언론특보 등 원외그룹이 최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이런 원외그룹이 다가올 16대 총선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부 인사들은 평소에도 거의 공개적으로 “금배지가 없으니까 총재를 제대로 보좌하기가 힘들다”며 원내 진입 의지를 다져왔다. 이들은 구랍 12월 중순 비공개 저녁모임을 갖고 원내 진출을 위해 함께 총력전을 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총재 비서실 주변은 총선 열기로 후끈하다. 이총재가 미리 ‘낙점’해준 것도 아니고 당에 공천심사위 간판이 내걸린 것도 아니지만 출마희망지역에 아예 살다시피 하거나 그곳의 여론동향 파악에 공을 들이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는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총재 원외측근들의 출마 움직임은 비이회창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지역구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현역의원이나 비주류측 원외위원장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주류측은 “이총재가 이들 중 다수를 공천, 물갈이를 시도하려 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한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총재의 한 원외측근은 이렇게 반박했다. “이총재가 어디 자기 사람이라고 봐주는 성격인가. 특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차피 각 계파대리인에다 외부인사까지 참여할 공천심사위에서의 경쟁을 스스로의 힘으로 뚫어야 한다.”

    이들 중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맹렬히 뛰고 있는 인물은 황영하 전총무처장관과 유경현운영특보. 황전장관은 오래 전부터 고향인 경기 파주에서 지역구 표밭을 누비고 있다. 문제는 경기지사 출신으로 재선고지를 노리는 이재창의원이 버티고 있다는 점. 이총재는 이런 점을 고려해 황전장관에게 “기다려보라”고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는 “소유하고 있는 산까지 팔아 선거준비를 해왔다. 무소속이라도 뛸 각오도 돼있다”며 불퇴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3선의 의정경험에다 민주평통 사무총장까지 지낸 유경현운영특보는 서울 양천갑 출마의 뜻을 굳혔다. 당초 양천갑과 은평을 두 곳을 놓고 고심했으나 은평을에 이재오의원이 있어 양천갑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 지역에 사무실까지 내고 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출마한다. 설사 공천을 못받더라도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양천갑은 조순 명예총재계로 분류되는 김동수위원장이 갈고 닦아온 곳이어서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현역은 국민회의 박범진의원.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고흥길섭외특보는 경기 성남 분당의 분구에 대비하고 있다. 분당의 인구가 38만명을 넘어 분구가 유력시되기 때문. 그렇지 않으면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7선의 오세응의원과 공천경쟁을 벌여야 한다. 고특보는 “분구가 안되더라도 공천신청은 낼 생각이지만 오의원이 지역구에 출마한다면 양보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재보선 때마다 한나라당후보로 거론됐던 진영 변호사는 서울 강북지역의 한 곳, 특히 용산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4선의 서정화의원이 있지만 전국구로 돌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99년 9월 경기 용인시장 보궐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구범회부대변인도 총선을 재기의 기회로 삼고 싶어한다. 인구가 32만명을 넘는 용인이 분구되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더욱이 용인은 3선의 이웅희의원이 탈당하는 바람에 무주공산인 상태.

    최문휴당무특보는 고향인 전남 고흥에 나갈 뜻을 굳히고 있다. 그의 경우 당내엔 별다른 경쟁자가 없으나 본선에서 국민회의 박상천원내총무와 맞붙어야 하는 게 큰 부담.

    이총재의 연설문을 맡아온 총재보좌역 출신의 송병대기조국장은 대전 서을 출마여부로 고심중이나 갈수록 불출마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그는 “출마할 마음은 있지만 JP가 있는 한 대전에선 힘들다.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과는 달리 지역구 출마 문제에 확실한 선을 그은 인사들도 있다. 이총재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핵심브레인들’로 꼽히는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과 이원창언론특보 등이 그들.

    청와대대변인과 환경부장관을 지낸 윤소장은 99년 12월부터 맡고 있는 총선기획단장이라는 중책에 충실하겠다는 입장. 그러나 그는 이총재의 원외측근들 중 전국구(또는 비례대표) 당선권 ‘0순위’로 꼽히고 있다. 이특보도 “백의종군하겠다”며 한발 물러서 있는 상태며 당내에서는 그의 전국구 공천을 점치기도 한다.

    이흥주 전행정특보도 총선에 나서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그는 현재 이총재의 지역구인 송파갑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지역구 대리관리’에 전념하고 있다. 그 역시 전국구 배려설이 나돈다. 정태윤 총선기획단부단장도 지역구 불출마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정부단장이 서울 강북갑 출마를 버거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무기획 역할을 하는 금종래비서실차장은 아예 ‘불출마선언’을 한 경우. 그는 “나는 전국구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다. 이총재가 집권하도록 돕는 일에 충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총재는 ‘16대 총선에서 3김과 다른 지도자의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키지 못하면 2002년 대선 자체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외부인사와 측근인사들로 ‘이회창식 공천 물갈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총재의 원외측근들이 공천과 본선에서 신선한 인물군으로 인정받아 그의 대권가도에 보탬이 될지, 아니면 경쟁력 없는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걸림돌로 작용할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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