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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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은 기자촌, 분당은 임원촌

신도시 ‘빅 2’ 10년… 거주 직업군 정치·문화성향등 입체 비교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7-03-15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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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은 기자촌, 분당은 임원촌
    ‘분당’과 ‘일산’. 비수도권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겐 낯선 이름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한국 도시의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

    일산과 분당은 폭발적인 속도로 ‘자가발전’하며 도시건설 10년만에 신도시의 양대 핵으로 떠올랐다. ‘한국 최고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이 두 도시는 ‘새로운 도시 스타일’을 창출하고 있다. 삭막한 위성도시에 불과했던 곳을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18일 오후 경기 분당신도시 중탑동 ‘예비군훈련장’. 어깨를 움츠린 채 호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있는 200여명의 예비군들 앞에 노해식예비군동대장이 나타났다. 노씨는 이날도 예외없이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분당예찬론’을 폈다. “여러분은 한국의 1등도시 분당의 예비군들입니다. 훈련내내 분당에 살고 있다는 자긍심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노씨는 분당에 사는 가수 김건모씨와 탤런트 차승원씨의 예비군훈련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분당에 는 이들과 같은 전문직종 예비군들이 많은데 이들이 묵묵히 앞장서서 ‘분당에선 예비군도 최정예’ 라는 분위기를 주도한다고 한다.

    일산-탤런트, 분당-법조인 많아



    최근 국토연구원 조사에선 분당이 수도권도시 중 주민만족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은 꼴찌였다. 지난해 건설교통부 조사에선 일산이 가장 쾌적한 도시로 나타났다. 이들 구청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의 70%는 ‘이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분당과 일산시민들의 절대다수는 외지에서 온 이주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역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으며 자기 고장을 자랑스러워한다. 분당 시민들은 우스갯소리로 ‘천당 다음에 분당’ 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분당`-`일산 시민들이 이처럼 자긍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캐스터 서기원씨(분당동)는 “일주일만 살아보면 안다”고 말한다.

    일산과 분당은 서울보다 훨씬 많은 도심공원과 녹지,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펼쳐진 전원, 서울 강남구를 능가하는 국내 최대의 대형유통시설(백화점 대형할인점 등이 분당 8개, 일산 6개), 스포츠센터(분당 19개, 일산 14개), 문화센터(분당 11개, 일산 8개), 잘 발달된 음식문화, 강남 8학군 못지 않게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신흥명문고들, 사통오달 뻗은 도로망이 이국적인 주거단지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일산에는 170여개의 업무용 건물이 있다. 분당에는 한국통신 한국토지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대한송유관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에너지관리공단 등 공기업들의 본사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베드타운’을 탈피하지 못하는 전국 대다수 신도시와는 사정이 다르다.

    분당 ‘프라자부동산중개소’에 따르면 현재 분당의 32평형대 아파트가격은 2억2000만원 선. 서울시내 웬만한 곳보다 더 비싸다. 89년과 90년에 개발이 시작된 분당과 일산은 10여년만에 전형적인 ‘중산층의 도시’가 됐다.

    지난 9월 한 방송국에서 일산 공무원의 외국어구사 능력이 분당 공무원보다 못하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일산구청은 발칵 뒤집어졌다. 최태열일산구청장은 당장 계장급 공무원 13명을 데리고 분당구청으로 가서 ‘벤치마킹’했다. 일산구 김운용녹지계장은 “일산이 더 낫다고 인정받도록 해달라는 주민들을 많이 만난다”고 말했다.

    분당과 일산은 서로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이는 두 도시 주민에게서 보이는 ‘이질적 성향’ 에서 기인한다. 두 도시는 애초 이주민의 유입경로부터 달랐다. 일산엔 주로 서울 강북, 분당엔 서울 강남쪽 사람이 몰려왔다는 것이 최태열구청장의 설명이다.

    일산과 분당에 거주하는 주요 직업군은 확연히 구분된다. 거의 모든 중앙언론사가 강북과 여의도에 몰려 있는 탓에 일산은 거대한 ‘기자촌’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일산구청에 따르면 900여명의 기자가 일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산에 거주하는 이모 기자(36)는 “주민 중 기자가 하도 많아 서 일산에선 부실시공 등 생활민원이 터지면 그 즉시 보도되거나 해결된다”고 말했다. 배우 탤런트 가수 등 연예인(500여명)과 문인(200여명)도 많고 금융계 종사자와 항공업계 종사자도 적지 않다. 강북에 위치한 청와대, 총리실,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 감사원, 경찰청소속 공무원도 일산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반면 분당엔 대기업체 임원(수백명), 사업가, 판-검사 등 법조인(200여명), 전현직 정치가와 고위관료(50여명)들이 많이 살고 있다. 분당경찰서 정보과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 근거지를 둔 전문직업군이 폭넓게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신기동 느티마을 등 공무원아파트 2000여세대엔 국가정보원 직원들도 상당수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당은 또 전현직 군장성 200여명이 살고 있는 ‘별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자민련 일산지구당에 따르면 일산지역 유권자의 출신 고향은 영남 22%, 호남 20%, 충청 20%, 원주민 18% 등 고루 분포돼 있다. 일산유권자들은 96년 총선 땐 한나라당, 97년 대통령선거 땐 국민회의, 98년 시장선거에선 국민회의, 99년 시장보궐선거 땐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다. 출신지역이나 특정정당에 표가 몰리지 않았다. 인물 본위의 투표 성향을 보였다고 일산구 선관위 주승만국장은 분석한다.

    분당에서도 유권자 출신지는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으나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한나라당 분당지구당 조직부장은 “전통적 한나라 지지지역인 서울 강남-서초구에서 이주해 온 주민이 많은데다 일산보다 보수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분당은 영장 불곡 청계 맹산 등 높고 낮은 산으로 동서남북이 둘러싸인 분지 지형. 강남의 생활양식이 유입돼 ‘화려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인 상류문화’가 형성돼 있다.

    일례로 분당사람들은 분당을 ‘학교 8학군, 음식 8학군, 골프 8학군’이라고 부른다. 특히 골프 열기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분당 시내엔 골프연습장만 36개가 영업중이다. 경기 남부지역 60여개 골프장과 근접해 있기 때문에 아예 집을 분당으로 옮긴 ‘골프 마니아’가 많다는 게 골프연습장 조남익사장의 설명이다.

    분당 사람들이 좋아하는 등산에서도 분당 특유의 고급문화가 형성돼 있다. 금곡동의 주부 6명은 최근 등산복 차림으로 백두산 여행을 다녀왔다. 서현역 주변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박영옥씨(여·40)는 “분당은 음식천국이지만 손님들의 입맛이 까다로워 웬만큼 잘 만들지 못하면 망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분당은 행정구역상 성남시 분당구로 돼 있다. 3년전 독립시 운동을 폈던 분당주민들은 지금도 이 부분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분당구의 생활보호대상자는 3138세대. 그러나 성남 구시가지의 생보자는 9900세대에 이른다. 분당구청 한 공무원(40)은 “분당과 서울 청계천 재개발 때 이주해온 저소득계층으로 형성된 구시가지 사이의 교류는 거의 없다. 택시는 웃돈을 줘야 오갈 정도다”고 말했다.

    분당은 독립지향적이다. 김영일분당구청장은 “분당에 첨단 디자인-벤처단지를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분당주민이 분당에서 일하고 분당에서 사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반면 일산은 대외개방형이다. 지리적 여건부터 분당과는 다르다. 일산은 서해-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한 한강하구의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일산은 ‘국제해양도시’를 지향한다. 고양국제꽃박람회 등 관광이벤트를 개발했고 최근엔 동양 최대규모의 국제종합전시관이 들어서기로 결정됐다. 고양시에서 분리해 달라는 입주 초창기의 요구도 없어졌다.

    분당이 소그룹 단위의 인간적 관계를 중심으로 신도시 특유의 화려한 고급소비문화를 창출했다면 일산은 ‘전통의 계승’과 ‘끈끈한 연대의식’이 특징이다.

    70, 80년대 시낭송회를 하며 저항문학의 산실역할을 했던 일산 백마의 술집 ‘화사랑’. 신도시가 들어서자 ‘숲속의 섬’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그 당시 분위기 그대로다.

    11월16일 일산아파트입주자대표협의회는 주민들에게 공문을 띄웠다. 러브호텔 허가를 주민 힘으로 막는 운동을 펴기 위해서였다. 아파트협의회는 공권력이 가장 무서워하는 ‘뉴파워그룹’. 일산의 주민 성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94년 조직된 이 단체는 세금과다부과, 항공기 소음, 공원유료화 문제에서 주민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특히 정부가 공약한 자족도시건설계획이 슬그머니 유야무야될 조짐이 보이자 150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내겠다며 들고일어나 국제무역전시장 건설 약속을 받아냈다. 채수천아파트협의회장은 “정부의 얼치기 신도시정책에 대항해 ‘연전연승’하는 과정에서 일산 주민들간엔 자연스럽게 정으로 뭉치는 연대감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분당과 일산은 최근에 와선 서로의 장점을 닮아가려 한다. 분당 구미동 주민들은 지난 5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동네 어귀에서 자체적으로 각종 공연을 연다. 일산의 전매특허인 축제문화가 분당에도 이식되는 것이다. 요즘은 2000명의 주민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인데 다른 동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10월14일 롯데백화점은 분당에 이어 일산에서 문을 열었다. 이 백화점 관계자는 “한달 동안 영업해 본 결과 고급품에 대한 일산의 구매력이 분당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산과 분당은 지금 ‘서울’의 대안, ‘미래 한국도시’의 대안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도시 속 딴 나라 같아요”

    분당-분당동, 일산-마두동 주택가 … 집 좋고 경관 뛰어나


    ‘마두동 정발산 기슭’과 ‘구미-분당동 빌라촌’은 일산-분당의 ‘베벌리힐스’로 통한다.

    정발산은 일산신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해 경관이 뛰어나다. 김대중대통령이 살던 집을 비롯해 단독주택 170여가구가 이 산을 둘러싸고 있다. 대부분 70여평의 대지에 유럽 스타일의 담없는 목재건축물로 지어진 이 집들은 영화나 CF, 잡지사의 패션촬영 장소로 각광받는다. 기존 건물과 외형이 비슷하면 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정도로 외관에 신경을 쓴다.

    분당 구미동의 빌라촌은 매매가격이 최고 10억원대에 이른다.


    양희은 “푸근한 일산이 좋다”

    ‘분당’ 차승원 “도로망-좋은 교육시설 맘에 들어”


    일산신도시 정발산 기슭 단독주택에 사는 가수 양희은씨의 일산 자랑은 끝이 없다. 공기 좋고 미국에 살 때처럼 자연과 접할 수 있고 5일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오전 9시10분부터 시작되는 문화방송 라디오프로그램 ‘여성시대’ 진행을 위해 여의도로 출근하는 양씨에게 한가지 흠은 출근시간대 차가 밀린다는 점. 양씨는 오전 6시40분이면 집을 나선다.

    서울 잠실과 논현동에서 살던 탤런트 차승원씨는 지난해 분당으로 옮겼다. “서울 살 때와 다른 점이 별로 없어요.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출장이 잦은 차승원씨는 분당에서 뻗은 사통오당의 도로망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자연환경과 생활시설엔 물론 만족. 시내에 800개가 넘는 학원이 있어 초등학생인 아들 노아의 교육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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