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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인터넷의 새 흐름

“소프트웨어, 이젠 빌려쓴다”

인터넷 통해 응용 프로그램 대여하는 ASP 인기… “맞춤 서비스 가능… 또 하나의 혁명”

  • 샌프란시스코=김상현 기자walf@donga.com

“소프트웨어, 이젠 빌려쓴다”

“소프트웨어, 이젠 빌려쓴다”
지방이나 해외로 잠시 출장을 간 사람이, 차가 필요하다며 렌터카 서비스업체 대신 자동차판매 대리점을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돌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일 것이다. 만약 직장상사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는 출장지에서 곧바로 해고통지서를 받을지도 모른다.

컴퓨터소프트웨어 시장에도 이와 비슷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사는 것보다 빌려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상황. 이때 필요한 것은 인터넷 접속 환경을 갖춘 컴퓨터와 웹브라우저 정도다(인터넷 접속 속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내게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다른 전문업체의 서버에 모두 들어 있다.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빌려 쓴다. 비용은 사용 시간당, 혹은 매월 일정하게 지불한다. ‘브라우저 안의 가상 사무실’인 셈이다.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다시 말해 인터넷을 통해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업체(Service Provider·그래서 흔히 ASP로 약칭된다)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시쳇말로 ‘핫’(Hot)하고 ‘쿨’(Cool)한, 인터넷의 새 흐름이다. 실제로 ASP는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손쉽게 에인절(벤처자본가)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브라우저 안의 가상 사무실”

코리오의 조너선 리(한국명 이종민·39) 사장은 ASP에 대해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새로운 시장” 이라며 “앞으로 훨씬 더 많은 ASP들이 생겨나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ASP는 단순히 소프트웨어를 파는 방식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ASP는 소프트웨어의 본질은 물론, 사람들이 컴퓨터를 쓰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을 혁명이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다.



얼마 전까지, 흔히 ‘홈페이지’로 불리는 웹사이트들은 여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확연히 구별됐다. ASP는 그 차이를 점점 더 좁힌다. 웹사이트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웹사이트의 초기 화면이 나타나듯 워드프로세서나 표 계산프로그램(스프레드시트), 일정관리 프로그램이 브라우저 안에 나타난다. 이것은 웹사이트인가, 아니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인가.

이미 간단한 프로그램들은 온전히 웹으로 ‘전향’했다. 핫메일(www.hotmail.com) 같은 공짜 이메일(주소록도 겸하고 있다)이나 웬(www.when.com) 같은 일정관리 서비스가 그러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머지 않아 거의 모든 종류의 패키지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을 통해 존속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러한 전망에 힘을 보태기라도 하듯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를 인터넷으로 쓸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앞다퉈 발표했다. 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제품에 대적하기 위해 비슷한 종류의 스타오피스를 인수,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료. 그러나 자사의 응용프로그램을 ASP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기업들에 대한 인증 프로그램(CSP)을 공개했다. 그러나 종래의 프로그램들을 인터넷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승부는 ‘새로운’ ASP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드콤’은 그런 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기업이다. 비드콤은 건설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인터넷 기반의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건축설계사, 시공사, 하청업체, 금융업자 등 건설 과정에 개입된 수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손쉽게 전체 공정과 자신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짠 것이다.

벤처자본가인 비노드 코슬라는 “ASP야말로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라고 말한다. 코슬라는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로 꼽히는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앤 바이어스’(KPCB)의 파트너 중 한 사람. 그를 만나려는 벤처기업가들이 줄을 서 있다. 다시 그의 말이다. “워드프로세서 같은 응용프로그램들은 보통 500가지 이상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기능은 기껏해야 대여섯 가지에 불과하다. 이를 인터넷용 소프트웨어로 제공할 경우 개별 이용자나 그룹의 요구에 맞출 수 있으므로 그만큼 경제적일 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속도도 한층 더 빨라질 것이다.”

ASP는 그 대상에 따라 소-중-대기업용으로 나눌 수 있지만(표 참조), 서비스 방식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코리오나 US인터네트워킹 같은 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아니다. 이들은 고객 기업의 요구에 맞춰 해당 소프트웨어들을 묶어 서비스한다. 일종의 소프트웨어 서비스 대행사인 셈이다.

또다른 유형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예 ASP 노릇을 겸하는 경우다.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오라클의 경우 ‘비즈니스 온라인’ 부서를 신설, 자사의 주요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ASP 경쟁에 관한 한 소프트웨어 기업쪽이 코리오나 US인터네트워킹 같은 독립적인 기업들보다 불리하다고 말한다. 고객 기업들에 제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다양성 면에서 앞서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시스템통합업체에 큰 위협

그렇다면 ‘ASP 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시스템통합(SI) 업체와 시스템 컨설턴트들이다. ASP를 이용하는 일반 기업들은 따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관리할 필요도, 새롭게 업그레이드할 필요도 없다. ASP 업체들이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시스템 컨설턴트는 얼마 안가 시스템 ‘리절턴트’(Resultant)들로 대치될 것”이라고 벤처자본가인 코슬라는 예견한다. 이들은 기업의 전산망 구축이나 관리를 컨설팅해주는 것이 아니라 ASP 업체들의 서비스 내용이나 문제점을 평가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휼렛패커드(HP)와 IBM 같은 기업들에도 ASP 흐름은 큰 위협이다. 인텔은 ASP에 승부를 걸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 전세계에 12개의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것이다. 군대 벙커를 연상시키는 데이터센터는 초고속 네트워크 환경이 정전이나 천재지변 등에도 잘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ASP의 사령탑’ 같은 곳이다. HP도 퀘스트 커뮤니케이션스와 손잡고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며, AT·T, IBM, 엑서더스 같은 기업들도 ASP의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미트 스트래티지의 분석가 톰 쿠셔비는 그에 대해 “ASP 업체들을 대상으로 ‘도매상’ 노릇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ASP 업체들로서는 고객 기업들이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응용 프로그램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살아남는다. 인텔이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 IBM 같은 기업은 ASP 업체들의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자사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생각이다.

HP의 경영책임자인 프랭크 바커는 미래의 컴퓨터 산업이 “오늘날의 전력산업과 비슷한 모습일 것” 이라고 예견한다. 인텔이나 HP, IBM 같은 기업은 발전소, ASP 업체들은 배전소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일반 회사들도 자체 전력을 생산(자체 전산실을 운영)하기보다는 매월(혹은 매년) 일정 비용을 내고 이를 이용하는 형태로 가리라는 것이다.

“빌딩건설 공정 온라인화 승부”

굵직한 건설사업 잇달아 수주 … “이제부터 시작”


“지금까지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공정을 통합한 사례는 없었다.” 대릴 매가나 비드컴 사장(30·사진)의 이러한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와 비드컴은 건설 공정에 관련되는 모든 문서와 표, 형식 등을 인터넷용 소프트웨어로 통합했다. 건축설계사, 건설회사, 하청업체, 금융업자 등 빌딩을 건설하는 데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프로그램에 접속해 공정의 진척상황은 물론 문제점, 해결해야 할 일, 토론 과제 등을 손쉽게 알 수 있다.

매가나 사장이 빌딩 산업에서 ‘기회’를 발견한 것은 유독물질 취급회사, 빌딩 관련 소프트웨어 회사 등을 거친 독특한 이력 덕택이다. “처음에는 누구도 빌딩 건설 공정을 온라인화한다는 우리 아이디어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래서 첫 빌딩 공사 때는 직원들이 전재산을 털어야 했다.” 130개 업체가 관련된 그 빌딩 공사는 비드컴의 소프트웨어 덕택에 매우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마무리됐고, 빌딩은 사이버증권사인 찰스 슈왑사에 팔렸다. 이후 비드컴은 ‘벼락 스타’가 됐다. 30여 벤처자본들이 돈다발을 들고 몰려들었다.

비드컴은 현재 오라클,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샌프란시스코시 청사, 크라이슬러 사옥, 포드자동차 사옥 등의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세계 빌딩산업 규모는 줄잡아 6500억달러 선. 비드컴은 자체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1만여개의 관련 공급업체를 끌어들였다. 매가나 사장은 “비드컴의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을 세계 빌딩산업의 표준으로 키울 것”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주간동아 209호 (p78~80)

샌프란시스코=김상현 기자wa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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