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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화이트칼라 IMF 2년

‘상위 20’의 비상구를 뚫어라

자격증 유학 고시 등 실력쌓기 몸부림… 창업코너엔 직장인들 북적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상위 20’의 비상구를 뚫어라

‘상위 20’의 비상구를 뚫어라
서울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인 세계적 휴양지 괌(Guam). 관광객이 뜸한 11월 첫째주 내내 이 섬 투몬(Tumon)만 지역의 고급호텔들은 한국에서 몰려온 손님들로 ‘이상특수’를 맞았다.

리젠시호텔엔 40명의 한국인이 찾아왔다. 이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힐튼, 임페리얼, 하얏트 등 10여개의 특급호텔들도 많게는 한 호텔당 200명의 한국인 투숙객을 받았다. 11월1일부터 7일까지 투몬만 지역엔 800여명의 한국인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바다나 시내로 드라이브하거나 쇼핑을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휴가철도 아닌 시즌에 괌까지 와서 며칠씩 조용히 있다 돌아간 것일까.

이들은 모두 ‘수험생’들이었다. 11월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괌에선 미국공인회계사협회 주최 미국공인회계사(AICPA) 시험이 있었다. 시험장소는 괌 투몬만 일대 9개 호텔의 컨벤션홀. 이들은 이 시험에 응시해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인 응시생 중 60%는 직장인들로 추정됐다. 리젠시호텔 프런트매니저 곽봉근씨는 “이 호텔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응시생 중 30명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왔다”고 말했다.



괌에서 투숙하며 미국공인회계사 시험준비

미국공인회계사시험은 5월과 11월 두 차례 실시된다. 곽씨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미국공인회계사 열기가 이렇게까지 뜨겁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시험부터 한국인 응시생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 이 때문에 서울-괌 직항노선을 유일하게 운항하고 있는 아시아나는 3대의 비행기를 추가로 투입해야 했다. 또 여행객이 폭증하자 여행사에서 거래하는 항공료도 10여만원이 올랐고 예약을 했음에도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괌으로 가는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한국인 응시생 중에는 아예 사이판이나 오사카를 경유해 괌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시험이 끝나고 돌아올 때도 응시자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여행사들에 따르면 11월6일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좌석이 모자라 며칠 동안 괌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폭등한 항공료에다 2, 3일씩 늘어난 호텔숙박비, 전형료를 합치면 한 번 시험보는 데 100만원 이상의 경비가 든다는 것. 서울 종로3가 국제회계학원의 민진희원장은 “그러나 합격률은 30%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경비와 시간, 노력을 들여가며 미국공인회계사 시험을 보는가. 11월초 괌에서 벌이진 이 소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민원장은 “한마디로 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직장인들의 몸부림”이라고 설명한다.

주변에서는 억대 연봉자들이 출현하는 반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얇은 월급봉투와 좁아진 승진문…. 많은 직장인들은 지금 ‘엑서더스’를 꿈꾸고 있다.

이들은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비롯, 국제재무분석사, 선물중개사, 증권분석사, 투자상담사 등 요즘 각광받는 신종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바치고 있다. 또 미국경영대학원(MBA)이나 로스쿨 등 으로의 유학, 합격자 정원이 늘어난 사법시험 도전, 헤드헌터업체 등을 통해 전직을 모색하거나 창업- 부업을 모색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11월4일 오후 7시, 유학시험용 영어를 가르치는 서울 압구정동 박정어학원. 직장인 200여명이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다. 이들은 미국 일반대학원이나 경영대학원 진학을 위해 GRE나 GMAT라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은행원, 대기업 직원, 공무원 등 다양하며 직장생활 5∼10년차 경력의 80년대 학번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이 두 개의 시험을 주관하는 한미교육위원단에 따르면 요즘 매일 100∼150 여명이 응시해오고 있다. MBA는 직장경력 2년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응시생들의 대다수는 전-현직 직장인들이라고 한다.

박정학원 수강생 이모씨(32·은행원·연세대 경제학과 87학번)는 “전문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억대연봉을 꿈꾸면서 꾹 참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MBA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난관은 하나 둘이 아니다. 2년내 학위를 취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줄잡아 1억2000만원 이상. 장학금혜택은 전혀 없다. 미국내 200여개 대학 중 스탠퍼드나 왓튼스쿨 등 상위 50위권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졸업장을 받아도 국내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박정어학원 강사 유림씨는 “국내엔 이미 600여명의 MBA 출신이 있다. 그러나 각광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MBA에도 거품이 많다”고 말했다.

11월5일 오후 서울 신림동 사법시험준비학원인 한국법학원. 삼성그룹 계열사를 다니다 최근 그만둔 이모씨(31)가 수강신청서를 접수하고 있었다. 내년 2월 실시되는 1차시험에 대비한 ‘속성반’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2500명의 수강생 중 30대 이상은 30%.

이 학원 한경훈기획실장은 “내년엔 합격자 정원을 200명 늘려 900명을 뽑는다고 하자 다시 도전장을 내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창업이나 부업에 관심을 돌리는 직장인도 많다. 교보문고 경제-경영매장의 소자본창업이나 부업관련 서적 30여종은 하루 평균 100여권 정도씩 꾸준히 팔려나간다. 교보문고 직원 최진희씨는 “최근엔 집에서 컴퓨터통신을 이용해 돈을 버는 ‘IP(Information Provider)산업’관련 서적이 직장인들사이에 인기” 라고 소개했다.

“임금은 IMF 사태 이전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지금처럼 직장생활을 해봐야 비전이 없다. 아마 20대 80 사회에서 영원히 80에 속할 지 모른다.”

LG그룹에 다니는 김모씨(30·연세대 89학번)의 말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전망이 아닐까. 그러나 젊고 패기만만한 직장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들은 평범함을 거부하며 ‘업그레이드’를 위한 ‘반란’을 꿈꾸고 있다.

“미국대학원 입시문을 열어라”

직장 사표 내고 매일 12시간 이상 영어공부… 스터디그룹 결성도


GRE, GMAT를 준비하는 전-현직 직장인들 사이엔 요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는 게 유행이다. 11월4일 기자가 만난 한 그룹의 멤머 임모씨(31·서울대 신문학과 88학번)는 ‘고시공부’하듯 GRE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이가 찰 대로 찬 만큼 더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1년전부터 시험을 준비해온 임씨는 4개월 전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뒀다. 2년간의 유학 비용은 월급과 퇴직금을 모은 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그의 그룹은 5명의 직장인과 임씨로 이뤄져 있다. 멤버들은 평일엔 새벽에 1시간,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의 2시간을 합해 모두 3시간의 강의를 듣는다. 임씨는 “수험서적을 멤버들에게 할당해 각자 맡은 부분의 요점을 정리한 뒤 주말이나 휴일에 돌아가며 강의를 해주는 식으로 그룹스터딩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둔 뒤부터 임씨는 매일 영어를 12시간 이상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GRE시험에 응시해 그가 원하는 미국의 정보통신 관련 대학원에 갈 수 있는 성적을 얻었다. 그러나 입학자격을 얻기 위해 선 또 하나의 관문 ‘토플’이 남아 있다. 듣기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임씨가 토플에서 600점 이상을 받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임씨는 “용감하게 직장을 박차고 나오니 인생을 건 엄청난 ‘모험’과 고된 ‘수험생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9호 (p36~37)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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