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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정치인과 거짓말

입열면 거짓말 ‘믿지마 입술’

한국 정치인들의 거짓말 백태… “일부 사람은 정신과 치료 받아야 할 정도”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입열면 거짓말 ‘믿지마 입술’

입열면 거짓말 ‘믿지마 입술’
프로복싱 전 세계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는 지난 10월 세계적인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링에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링 복귀 발언이 CNN AP통신 등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알리는 “농담이었다”고 자신의 발언이 불러온 파장을 서둘러 진화하면서 “아직도 내 말에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재미있다”고 머쓱해했다.

알리의 이같은 거짓말이야 한 순간의 재미나 애교쯤으로 넘어가도 별 일 아니다. 그러나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에 의해 벌어지는 거짓말의 향연이나 논쟁은 국론의 분열과 국력의 낭비, 오도된 가치관의 범람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다뤄질 사안이 아니다. 최근 연일 대서특필되는 언론대책 문건 사건도 마찬가지다. 관련 당사자들인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와 한나라당 정형근의원 등의 얘기가 서로 달라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사람, 혹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서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깊어졌다.

김영삼전대통령은 지난 4월6일 거제도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거짓말 제일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어린이 교육을 위해서도 부끄럽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출세해서 되겠나…” YS의 이같은 독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면 이같은 비난을 일삼는 YS 자신은 정작 어떠했을까.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기록은 YS가 거짓말과 실언에서 남을 비판할 처지가 아님을 보여준다.

김대중대통령은 정계복귀 직후인 지난 95년 6월 지방선거 유세에서 YS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나보고 식언을 한다, 거짓말을 한다 하는데 김영삼대통령이 더 많이 한다. 80년 ‘정계 은퇴한다’ 해놓고 안하고, 87년 독일에서 ‘김대중씨를 사면복권시키면 대통령후보를 양보하겠다’고 하고선 안하고… 자기가 식언한 것은 괜찮고 남이 식언하는 것은 문제삼나.”



DJ YS JP 이회창 … 모두가 거짓말

“쌀 개방은 절대 안됩니다. 제가 당선되면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92년 11월23일, 14대 대통령선거운동이 시작된지 이틀째인 이날 민자당 대통령후보 YS는 경기도 용인의 유세 현장에서 이렇게 공약했다. 나중에 공보팀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었다는 변명이 뒤따랐지만, 어찌됐든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겠다는 YS의 말은 그의 임기 내내 대표적인 거짓말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대선 자금을 밝힐 자료가 없다”는 92년 대선자금과 관련된 발언도 국민에게는 거짓말로 인식된다. 15대 대선을 앞둔 97년 11월에는 당시 이회창신한국당대표의 탈당 요구에 ‘누가 만든 당인데…’라며 거부하던 태도를 바꿔 전격적으로 탈당을 했다. YS의 거짓말은 지나친 자신감과 사안에 대한 턱없는 단순화, 아전인수식 해석에 따른 경우가 대다수.

김대중대통령의 경우 92년 정계은퇴 발표는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이 되었다. 김대통령은 지난 92년 12월19일 대선에 패한 다음날 “이제 저는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 생활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7개월 뒤인 95년 7월13일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김대통령은 87년 대선 때도 불출마 약속을 어긴 것으로 공격받았다.

97년 대선의 막판에 터진 IMF 재협상론과 정리해고 문제도 김대통령에겐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되었다. 김대중후보는 97년 12월4일 첫 텔레비전 연설에서 “근로자 해고 문제 등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IMF 조건에 대해선 재협상하겠다”고 말해 ‘집권후 IMF 재협상’ ‘정리해고 유예’ 등의 의지를 피력했다. 그러나 대통령당선자 시절에는 재협상론을 일체 꺼내지 않았고, “대선 때 나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말을 했었다”고 반성하며 “임금삭감만으로 기업의 부도를 방지할 수 없을 때는 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정리해고 불가피론’으로 돌아섰다.

또한 대선 과정에서 자민련 김종필총재와의 합의를 통해 발표된 ‘2000년 이전까지 내각제 개헌’ 약속도 결국 불이행의 거짓말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총리는 “내각제만이 살 길”에서 “내각제도 국가적 차원을 고려해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중이다.

정치인들은 주로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는 총리직을 물러난 뒤 96년 언론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바가 없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신한국당 입당)와 같이 움직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불과 보름 뒤 신한국당 입당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또한 정치 참여 문제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과 달리 그동안 YS와의 수차례 회동을 통해 입당 교섭이 진행됐음이 밝혀졌다. 97년 10월 당시 신한국당 강삼재사무총장이 ‘DJ 비자금’을 폭로했을 때에도 이총재는 비자금 명세에 대해 “시민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배재욱전청와대사정비서관에 의해 당에 넘겨진 것이었다.

국민회의 이인제당무위원 역시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때 “경선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대통령선거전에 출마했다.

박정희전대통령은 3선개헌을 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10월유신을 통해 다시 집권했다. 전두환전대통령도 지난 88년 백담사로 떠나기에 앞서 연희동 집과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거짓말이 되었다. 이는 70억원 사회 환원을 약속하고 지키지 않는 김현철씨도 마찬가지다.

노태우전대통령은 처음 수천억원 비자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아무리 잘 참는 노태우지만 이번만은 참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그는 비자금문제로 결국 감옥까지 갔다. 그는 3당합당 직전에는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임창열경기지사가 97년 11월19일 경제부총리 취임기자 회견에서 ‘IMF 불용론’을 주장한 것은 언론계와 금융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경제 청문회에서의 임지사는 “IMF로 가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에 의한 거짓말의 심각성은 그것이 빠른 속도로 전염돼 결국 사회 전체가 오염된다는 데 있다. 최근의 고급옷 로비 사건 청문회, 소위 ‘밍크 청문회’에서 라스포사 정일순사장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느냐, 회사의 판매 대장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로 일관했다. 연정희씨도 자신의 집 평수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로 버텼다. 그밖의 증인들도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진술만을 거듭했다. 이는 결국 5공 청문회, 한보 청문회, 경제 청문회 등을 오염시킨 정치인들의 ‘유산’이 상속된 결과였던 셈이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정치인들은 증인들을 향해 “거짓말하지 말라”고 윽박지르지만, 실상은 그들이 더 많은 거짓말을 해왔다. 국회의원 출신인 최기선인천시장의 경우도 최근 경기은행 로비사건과 관련해 처음에는 “어떠한 압력도 대가도 없었다”고 혐의 사실을 부인했지만, 결국 2000만원의 ‘떡값’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한보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정치인들도 돈을 받은 사실이 흘러나왔을 때 처음에는 모두 “사실무근” “정태수총회장을 만난 적도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당시 김우석전내무장관은 “(검찰이) 오라니까 가는 거지…”라고 짐짓 여유를 부렸으나 소환과 동시에 구속됐다.

지난 대선에서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한나라당 서상목전의원도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다. 국세청장이 일개 국회의원의 말을 듣고 그런 일을 하겠는가”라고 완강히 부인했었다.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가성이 없는 순수한 정치자금이었다”고 해명하는 게 습관이다. 정치권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가리켜 “숨쉬는 것을 빼놓고는 모두 거짓말”이라는 자조적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박철언의원은 지난 89년 정무장관시절 북한에 다녀왔으면서도 “다녀온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90년 당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인 강영훈총리 등은 평양에서 가족을 만나고도 서울에 돌아와서는 이를 부인했다. 물론 남북문제라는 특수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솔직하지 못하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정치인들이 무슨 얘기를 했다가 신문에 나 문제가 될 경우 ‘와전’ 운운하며 책임을 신문에 돌리고 딱 잡아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 얘기를 듣고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들에게 빤한 거짓말을 하고 만 셈이다.

우리나라가 IMF를 맞았을 때 외국의 금융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외환 위기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거짓말쟁이 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달러’가 아니라 ‘신용’이라는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재무제표나 회계장부에는 엉터리 숫자뿐이고, 외채 총액도 끝까지 속이는 나라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외환 금고가 텅텅 비어 있었음에도 “외환 보유고가 300억달러 이상이 된다”고 호언장담했던 재경원 관계자들의 허풍은 결국 정치권 오염의 결과가 아닐까. 정신과 의사들은 “거짓말도 심하면 병이며 일부 정치인들의 경우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라고 말한다. 위기상황만 되면 자기보호 차원에서 순간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습관이라는 것. 의사들은 또 “상당수의 거짓말쟁이들은 뇌에서 언어를 구성하는 능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뛰어나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하다.

철학자 몽테뉴는 “거짓말은 실로 저주할 악(惡)이다.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죄를 저지른 사람들보다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더 무거운 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에 대한 일대 경종과 각성이 필요한 것이 작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더욱 그렇다.

외국 지도자들의 ‘새빨간 거짓말’

클린턴, 닉슨 ‘발뺌형’ … 리콴유, 프로퓨모 ‘고백형’


미국의 언어학자 피터 파브는 그의 저서 ‘말, 그 모습과 쓰임새’에서 미국인들이 정부의 공문서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된 것은 존슨 정권 때부터라고 지적했다. 당시 미국정부는 베트남전쟁을 ‘ 전쟁’이 아닌 ‘국가간 무력충돌’로, 숲을 말살하는 ‘고엽제 작전’을 ‘자원 통제 프로그램’으로 표현했다는 것. 또한 미군의 실수에 의한 민간마을 폭격은 ‘항공지시 오류’, 피란민수용소는 ‘새 삶의 마을’, 적진의 허술한 오두막 하나를 폭격하면 ‘구조물 폭격’이 되었다고 한 것. 미국 국민은 그때부터 미국 정치체계에 거짓말이 고질적으로 자리잡았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에서 ‘음모 이론’이 단골 소재가 된 것도 미국 정계가 자초한 결과. 코소보 전쟁은 클린턴 대통령이 자신의 성 추문을 덮기 위한 전쟁으로 발전됐다는 것도 그런 음모이론 중 하나다. ‘지퍼게이트’에서 드러난 클린턴의 거짓말은 결국 듣도 보지도 못한 ‘시가 섹스’나 ‘르윈스키 드레스의 정액’사건까지 탄로시켰고, 코소보 전쟁에 참여하는 미군의 명분까지 우스꽝스럽게 변질시킬 정도가 됐다. 워터게이트의 닉슨도 사임 이유는 불법 도청 사실보다 그의 거짓말이었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최근 피살된 여배우 피아클리카가 자신의 정부였다는 프랑스잡지의 보도에 대해 ‘정적들이 꾸며낸 얘기’라고 말해 거짓말 논란을 빚고 있다.

거짓말은 자주하게 되면 스스로도 결국 이를 믿게 되는 함정이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1938년 3개 연대로 1개 사단을 편성하던 편제를 바꾸어 2개 연대로 1개 사단을 편성해서 원래보다 2배 늘어난 60개 사단을 가지고 있다고 선전했다. 결국 그의 거짓말은 이탈리아 군대를 실제 역량보다 과대평가하게 돼 그의 비극적 최후를 불렀다.

최근 싱가포르 리콴유 전총리의 내한과 맞추어 발간된 자서전(원제:싱가포르의 역사)에는 2차대전 중 정보 분야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사실, 선거운동 중 “중국어 말레이어에 능통하다”며 거짓말을 한 사실 등이 놀랄 만큼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영국의 프로퓨모라는 육군장관은 총리후보가 될 정도로 전도가 양양한 정치인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구 소련의 스파이였던 여성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처음에는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가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잘못”이라면서 그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대저택을 버리고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일생을 보냈다. 나중에 엘리자베스 여왕까지도 “이제는 다 용서받은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비록 세상이 나를 용서한다 해도, 거짓말을 한 내 자신은 용서할 수 없다”고 계속 빈민가에서 살았다. 우리에게 리콴유나 프로퓨모의 예는 언제쯤에나 볼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9호 (p12~14)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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