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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화장해야 사는 한국 남자

인당 구매 비용 세계 1위, 남성 뷰티 유튜버 등장…“그루밍족 만드는 건 과도한 경쟁”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화장해야 사는 한국 남자

2015년 ‘Beatwo’라는 UCC(User Created Contents·사용자 제작 콘텐츠) 제작자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남자는 어떤 이미지인가’라는 인터뷰 영상을 제작해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약 100만 명이 본 이 영상에서 외국인들은 한국 남자를 다양하게 평가했다. 그런데 그들의 평가 중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한국 남자들이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깔끔하고 외모를 꾸미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는 점이었다.

해외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자의 인당 화장품 구매 비용은 세계 1위, 시장 규모는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한국 남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외모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화장품 매장은 대부분 남성 섹션을 분리해놓았다. UCC에서도 여성이 대부분이던 뷰티 분야에 최근 남성 창작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한국의 고도 경쟁사회와 관련 있다고 진단한다. 무한 경쟁사회이다 보니 외모도 하나의 경쟁수단이 됐다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화장품 사랑

화장해야 사는 한국 남자

서울 마포구 홍익대 근처 한 화장품 매장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남자들. 최근 화장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많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약 3만 원(25달러 30센트). 영국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2014년 발표한 세계 화장품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한국 남성의 인당 월간 화장품 구매 비용이 세계 1위라며 공개한 액수다. 이 통계에서 한국 남자들의 화장품 구매 비용은   2위인 덴마크의 4배에 육박했다. 사용 금액이 높은 만큼 시장 규모도 컸다. 세계 남성 화장품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19%로 중국에 이어 2위였다.

화장품 사용량도 많다. 2015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국내 화장품 소비자 사용실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자는 월평균 13.3개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양모(22) 씨는 “남자라도 피부 관리는 기본”이라며 “여드름이나 뾰루지를 가리려 BB크림을 쓰는 친구가 많다”고 밝혔다.



화장품 제조사 LG생활건강의 관계자는 “불황에도 남성 화장품시장은 해마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판매 매장을 찾는 남성 고객도 많다. 롯데 드러그스토어(의사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을 파는 가게. 외국에서는 약국에 가까우나 한국에서는 화장품을 주로 판매한다) LOHBs 관계자는 “남성 화장품시장이 커지고,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이 많아져 매장에서도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자 전국 모든 매장에 남성 전용 섹션을 설치했다. 남성 화장품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앞으로 개점할 매장에도 남성 전용 섹션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남성 화장품 판매량이 늘면서 화장에 서툰 남성을 위한 UCC도 인기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남성 뷰티 유튜버는 로션이나 BB크림 같은 기초화장과 피부톤 정리에서부터 색조화장 방법까지 다양한 화장법을 친절히 알려준다. 이 가운데 10대 남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유튜버 ‘원딘’은 3만 명에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할 만큼 인기가 높다. 고등학생 이모(17) 씨는 “뷰티 유튜버들이 올리는 화장법 중 색조화장은 대부분 재미로 보지만 기초화장이나 BB크림 사용법은 실제로 따라 해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보기 힘들던, 화장하는 남자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트렌드연구소 인터패션플래닝이 드러그스토어를 이용하는 남성들에게 화장품을 사용하는 이유를 조사한 결과 이들 남성의 39%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32%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라고 응답했다. 즉 70% 이상의 남성이 경쟁사회에서 외모로 우위를 점해 자신감을 얻으려고 화장을 하는 것이다.



화장술은 경쟁사회의 생존 무기?

화장해야 사는 한국 남자

화장품 매장 앞에서 기초 화장품을 살펴보는 고등학생들. 10대 남학생도 화장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

직장인 김모(27) 씨는 2년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피부 관리와 화장을 시작했다. 김씨는 “취업 준비 첫해 서류전형에만 합격하고 계속 면접에서 떨어졌다. 여드름 자국으로 빨갛게 얽은 얼굴이 부끄러워 면접관과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며 “취업 준비 두 번째 해에는 주위의 조언을 얻어 BB크림으로 여드름 자국을 가리고 면접을 봤다. 외모 콤플렉스가 해결되니 면접에서도 자신감이 생겨 원하던 회사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6) 씨도 “면접 준비를 하면서 화장을 처음 한 후 그루밍족이 됐다”고 밝혔다. 정씨는 “꼭 가고 싶은 기업의 면접을 앞두고 서울 강남 메이크업숍에서 화장을 받았다. 불안한 마음에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하자는 생각으로 한 화장이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며 화장을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화장하는 남자가 늘어난 이유가 “변화된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택광 경희대 문화분석전공 교수는 “내면이 아닌 외모가 평가기준이 돼버린 한국 사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처럼 경쟁이 심한 사회에서 구직자의 역량이 비슷하다면 외모 관리로 자신을 돋보이게 해야만 취업도 가능하고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사회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도 “남성에게 화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 수단”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청년들은 면접 전 쌍꺼풀 수술을 하고 기혼 남성은 직업을 유지하려고 그루밍을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한민국 남성은 처절하게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은 이제 여성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라도 화장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 교수는 “다윈의 성 선택론에 근거해 살펴봤을 때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강한 남자가 필요 없어졌다. 여성은 이제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성보다 부드럽고 다정하며 외모가 매력적인 남성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주간동아 2016.07.20 1047호 (p36~37)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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