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책 읽기 만보

불완전하기에 인간이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7-19 09: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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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같은 몸매에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미인이 죽을 것 같은 공허감을 호소하며 정신과를 찾았다. 그는 대기업 임원으로 지난 11년간 주중에는 하루 평균 13시간씩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치의가 병가를 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쉴 수 없다고 했다. “저는 아직 한 번도 회사에 병가를 내본 적이 없습니다.”

    완벽주의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타인을 만족게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타인에게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완벽하고 특별한 성과를 끊임없이 내지 않으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성실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고집스러움, 유식한 척하기, 타인의 조언 거절, 유머감각 상실, 타인 사생활 침해 같은 행동으로 철옹성을 쌓는다. 결국 완벽주의는 번아웃증후군, 식이장애, 우울증, 강박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당신을 배신한다.

    오스트리아 지그문트프로이트대 신경과 교수인 라파엘 M. 보넬리가 쓴 ‘완벽의 배신’은 오늘날 성과지상주의가 낳은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 즉 완벽주의에 대한 보고서다. 책 속에 등장하는 77건 사례만 읽어도 독자는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완벽에 대한 반론’은 유전공학의 힘을 빌려 더욱 완벽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유도한다. 청각장애인인 레즈비언 커플이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청각장애를 치료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 생각했고, 자신들의 아이도 청각장애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진 한 집안에서 정자 기증자를 찾아냈고, 그들의 바람대로 청각장애 아들이 태어났다. 다른 사례도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신문에 한 난임부부가 난자 제공자를 찾는 광고가 실렸다. 단 조건이 붙었다. 키 175cm에 가족 병력이 없고 대학입학 시험 1400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난자 제공자에게 5만 달러(약 5900만 원)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청각장애 자녀든, 공부 잘하는 자녀든 부모가 원하는 유전적 특성을 가진 아기를 ‘주문’하려는 이들의 행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이 책 5장 ‘정복과 선물’에서 샌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복과 통제를 높이 평가하는 사회적 세계에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겸손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원하는 대로 자녀를 고를 수 없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한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부모에게 가르쳐준다.” 2010년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새롭게 번역하고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가 해제를 썼다.






    협상의 전략
    김연철 지음/ 휴머니스트/ 768쪽/ 3만2000원

    인간관계, 사회관계, 국제관계에서 벌어지는 협상은 수준과 방법은 달라도 공통점이 있다. 협상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서 남북이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현장을 경험했고, 현재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20세기 주요 협상을 인내의 힘, 인정의 가치, 양보의 역설, 화해의 기술이라는 주제로 분석했다.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서현 지음/ 효형출판/ 272쪽/ 1만4500원


    제주 서귀포 중문관광단지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자리 잡은 집. 새하얀 외벽과 모서리에 난 창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더 특이한 것은 벽이 3개뿐이라는 점이다. ‘저 자신에게 선물로 줄 집을 짓고 싶습니다’라는 건축주가 보낸 e메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바다, 하늘, 태양을 품은 삼각형 주택 시선재(示線齋)가 탄생하기까지 건축가의 시선으로 설계 및 시공 전 과정을 시시콜콜 풀어놓았다.




    중국인 이야기 5
    김명호 지음/ 한길사/ 368쪽/ 1만7000원


    2장 ‘혁명과 여인’ 편에는 마오쩌둥의 여자 장칭과 중국의 홍색공주로 불리던 쑨웨이스가 등장한다. 쑨웨이스는 ‘중국인 이야기 2’에도 소개됐지만, 이 책에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장칭과 쑨웨이스의 악연과 처절한 복수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 마오쩌둥이 선택한 2인자 린뱌오의 죽음에 얽힌 비화, 6·25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북한과 중국의 신경전 등 새로 발굴된 자료를 통해 중국 근현대사에 접근한다.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강준만·강지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268쪽/ 1만3000원


    아빠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고 딸은 같은 대학 같은 과 졸업생. 미디어비평가인 아빠와 일명 ‘빠순이’인 딸이 머리를 맞대고 ‘빠순이 예찬론’을 썼다. 빠순이는 ‘오빠 순이’의 준말로 ‘오빠에 빠진 여자아이’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 딸 강지원은 god로 시작해 동방신기 빠순이가 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아버지 강준만은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받는 빠순이 대신 ‘팬덤문화’의 명예 회복을 선언한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김형태 지음/ 문학동네/ 416쪽/ 1만9800원


    여기서 다섯 가지 힘이란 투시력, 재정의력, 원형력, 생명력, 중력-반중력이다. 작용하는 힘이 같다면 돌아가는 원리도, 문제 해법도 비슷하다는 데서 이 책은 출발한다. 예를 들어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와 마크 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의 공통점은 ‘닮음과 다름을 꿰뚫어보는’ 투시력에 있다. 또한 아마존과 삼성의 핵심 경쟁력을 ‘속도’라고 할 때 이 두 기업이 어떻게 로스코나 터너로 연결되는지 설명한다.




    풀꽃도 꽃이다 1, 2
    조정래 지음/ 해냄/ 1권 397쪽, 2권 399쪽/ 각 권 1만3800원


    “아들 시대에는 통일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처럼, 손자 시대에는 불법 과외가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기대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깊은 배신감이 묻어난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짚은 ‘정글만리’ 이후 조정래는 교육 문제에 눈을 돌렸다. 고교 15년 차 국어교사 강교민을 중심으로 ‘상위 1%’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폭넓은 취재와 예리한 시선으로 파헤쳤다.




    시 읽기의 즐거움
    이시영 지음/ 창비/ 280쪽/ 1만3000원


    “좋은 시는 요란하지 않게 비애를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1996년부터 2015년까지 긴 시차를 두고 써온 글들을 묶어 21년 만에 펴낸 산문집. ‘청록집’ 다시 읽기로 시작하는 1부에서 선배 세대의 시를 섭렵하고, 2부에서는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한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서 청중과 함께 읽은 시들을 골랐다. 3부에는 24년간 ‘창비시선’ 편집자로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게임사전
    이인화·한혜원 책임 집필/ 해냄/ 1304쪽/ 6만8000원


    한국 온라인게임 20주년을 맞아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이사장 윤송이)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회장 이인화)가 의기투합해 온라인게임의 개발, 플레이, 미학, 문화, 시대별 대표 게임선 등 관련 용어를 2188개 표제어로 정리한 사전.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의 이인화, 한혜원 교수를 비롯해 62명의 연구자가 집필에 참여하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감수를 맡았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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