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특집 | 성과 제일주의의 두 얼굴

성과급 파티 끝나자 성과연봉제 폐지 시위

실적 부풀리기, 방만 경영하고도 눈먼 돈 꿀꺽…정부 밀어붙이기에 노사 갈등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7-15 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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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경제계는 성과급 파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부실·방만 경영의 대명사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과 금융당국의 제재를 여러 번 받은 KB금융이 대표적이다. 먼저 대우조선해양은 5조4000억 원대 회계사기(조작)를 통해 전 임직원이 4900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사고 있다. 고재호 전 사장은 자신이 대표로 있던 2012년 4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4900억 원을 지급했다. 이 금액을 임직원(1만3000명) 1인 평균으로 환산하면 3800만 원에 이른다. 이 중 고 전 사장은 7억 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대우조선해양이 해양플랜트 사업 등에서 원가를 축소하거나 매출액을 과다 계상하는 수법 등으로 분식회계를 저질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원하는 영업이익이 도출될 때까지 시뮬레이션을 해 적당한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나오면 해당 금액을 예정원가로 확정하는 방식으로 회계조작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고 전 사장이 이 같은 회계조작을 바탕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을 발행해 45조 원에 이르는 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KB 금융은 'KB 내분 사태' 당사자인 임영록 전 회장에게 10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지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5월 KB금융이 전직 회장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7월 5일 경제개혁연대가 KB금융 평가보상위원회 이사회 의사록 열람을 청구한 뒤 밝혀낸 바에 따르면 당초 예상대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이 지급됐다.



    징계받고도 억대 성과급 챙기는 CEO

    임 전 회장은 KB금융 사장으로 재직한 3년(2010년 7월~2013년 7월)에 해당하는 성과급으로 단기성과급 1억9600만 원, 장기성과 연동주식 3만6608주(13억1200만 원 상당)를 받았다. 회장으로 일한 기간(2013년 7월~2014년 9월)에 대해선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탓에 성과급을 지급받지 못했다. 부도덕한 경영으로 재임 기간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는 점에서 과연 임 전 회장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임 전 회장은 2014년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과 충돌한 뒤 징계를 받았다. 경제개혁연대는 “KB금융은 평가보상위원회가 경영진의 비윤리적 행위, 손실 유발, 법률 위반의 사항에 대해 환수 적용 여부 등을 결정토록 하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용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이 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에 대해 KB금융 측은 “법적 문제가 없다”고 맞섰지만, KB금융 노동조합(노조) 측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KB금융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책임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최근 정부가 금융회사 측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전 경영진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일은 2만여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밝혔다.

    이들은 과연 어떤 근거와 명분으로 일반 직장인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고가의 성과급을 챙기는 것일까. ‘성과급제’는 사전적 의미로 조직구성원이 달성한 성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적으로 제공하는 보수제도를 말한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수행한 작업 성과나 능률을 평가해 그 결과에 따라 지급하는 보수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에 비춰보더라도 과연 우리나라 기업들이 성과급제를 본래 목적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성과급제가 성공하려면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성과급제는 이 지점에서부터 취약점을 드러낸다.



    대우조선해양만 봐도 기업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산업은행)은 제대로 관리·감독을 이행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부터 산업은행의 자회사가 됐지만 산업은행의 허술한 감독으로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처럼 지내온 게 사실이다. 6월 15일 감사원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출자회사의 분식회계 등을 적발하고자 2006년 ‘재무 이상치 분석시스템’을 구축해놓고도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상태를 분석하지 않았다. 감사원이 이 시스템을 이용해 2013~2014년 재무 상태를 조사한 결과 최고 위험 등급인 5등급(특별관리대상)이 나왔을 뿐 아니라, 2년간 8785억 원 흑자로 기록된 수치도 6557억 원 적자로 산출됐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정부에서 강행하고 있는 조선업 구조조정 계획에 맞춰 자사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총 5조3000억 원 규모의 자구책을 내놓았다. 이들이 제시한 계획안에는 인력, 설비, 자회사 등 생산요소를 축소하고 기업문화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보상체계, 즉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만약 계획대로 성과연봉제가 제대로 시행된다면 우리나라 조선업체에서 최초 사례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성과와 직무 난이도 중심의 보상체계를 수립해 이익이 날 경우에만 보상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성과연봉제는 최근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에서 노사 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사안이다. 심지어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 부르는 공공기관에서도 개혁 방안으로 성과연봉제를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과 부채, 고용 세습, 입찰비리, 낙하산 인사, 관피아(관료+마피아) 등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공공기관은 국가의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국민을 위해 공무를 수행하는 관공서를 포함해 공기업, 준정부기관까지 포함되며 총 120개에 달한다. 



    공공기관에 부는 성과연봉제 바람

    정부는 2014년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공공기관장 워크숍’을 수차례 개최하면서 공공기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 “전기나 수도, 철도, 고속도로 등 핵심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들이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올 연말까지 전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지시했다. 1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에 따르면 2010년부터 시행 중인 ‘간부직 성과연봉제’를 최하위직급과 기능직을 제외한 전체 직원에게 도입하게 돼 있다. 또한 전체 임금 구성을 기본연봉과 성과연봉으로 단순화하되, 한 조직 내에서 성과평가등급을 5개로 나누고 여기에 강제 할당하는 상대적 평가방식을 설계했다. 등급별 인원 비율은 최고 및 최저 등급을 각각 10% 이상으로 하고 특정 등급이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임금체계 변화는 ‘월급’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인 만큼 노사 합의 과정에서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노동자를 쉽게 자르고 비정규직을 대폭 늘리기 위한 발판으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활용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심지어 정부가 행정권을 남용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근로자를 강압하고 인권유린을 자행한다는 성토도 터져 나온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함께 꾸린 ‘공동대책위원회’는 6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120개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직원 성과연봉제 중 최소 60개 기관이 과반 동의, 노조 동의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취업 규칙을 변경했거나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노조 합의를 강요 또는 절차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성토가 이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은 한정애 의원을 단장으로 총 11명의 진상조사단을 꾸려 공공·금융 부문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불법 및 인권유린 실태가 있었는지 진상조사를 시작했다. 8개 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양한 위법·불법 사례가 적발됐는데, 대표적으로 직원의 동의서를 모으는 과정에서 부서별 할당을 부여하거나 찬반 여부를 인사평가에 반영하겠다는 부당한 지시 등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직원들의 동의가 저조하자 적게는 3번, 많게는 11번이나 상급자 면담이 강제되는 등 강압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모 기관은 이사회 개최 일자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관련 부서 직원들의 카카오톡 내용을 복구하는 프로그램까지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정애 의원실 관계자는 “정권과 기획재정부 설계로 추진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은 정권 말기 성과 창출을 위한 무모한 ‘밀어붙이기’다. 법적 필수 절차인 ‘과반 노조의 동의 절차’를 무시한 채 단독으로 이사회를 강행, 처리하는 불법을 자행한 것은 명백한 근로기준법(제94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결국 국회 차원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며 각 상임위원회에서 위법 및 불법 행위를 한 기관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급증이 반발만 키워

    반대로 노조가 사측의 성과연봉제 협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 반대로만 일관할 경우 이사회 결의만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의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 합의로 도입해야 할 임금체계 개편이 결국 법정으로 갈 경우 노사 갈등과 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고, 노동계는 무조건적인 반대에서 벗어나 노사 자율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기관의 노사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은 섣불리 누구 편을 들어주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공공기관의 ‘기득권 지키기’로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하다. 일반 사기업과 비교해 보수나 근무 여건에서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종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어찌 보면 진일보한 선택일 수 있으나 그보다 중요한 건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내·외부 감시체계가 제대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관피아 등 퇴직자에 대한 특혜, 낙하산 인사 등을 없애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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