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경제

한국 경제 산소호흡기 떼면 회복 불가능?

6년째 정부만 바라보다 초래한 사상 초유의 불황 5가지 특징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juwon@hri.co.kr

    입력2016-05-30 16: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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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황의 시간이 너무 길다.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말은 이제 익숙할 지경이다.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조정’이라는 무서운 용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은 지 오래다.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피로감은 쌓여만 가고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현 상황만 유지해도 좋겠다는 말이 입버릇이 되는 기묘한 분위기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불황기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보자. 일반적으로 경기는 파동 형태를 보인다. 바닥 부근을 지날 때는 ‘U자형’ 같은 모습이 전형적이다. 하강 국면에서 상승 국면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것으로, 이 경우 추세가 전환하는 시기를 대략적으로나마 예측할 수 있다. 경제가 급작스럽고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경우 ‘V자형’ 추세가 종종 나타난다.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서 반작용의 힘으로 순간 원래 상태로 방향을 트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외환위기 직후의 경기흐름이다.

    반면 지금의 불황은 ‘늪지형’ 불황이다. 특별한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처음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없었으나, 아무도 이유를 모른 채 경제가 늪에 빠지는 것처럼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침체 강도가 누적되는 모양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5년 이상의 경기흐름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을 보면 2011년 3.7%를 기록한 이후 2%대로 급락했다 2014년 3.3%로 반등한 뒤 2015년 다시 2%대로 하락했다(그래프 참조). 올해도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일제히 한국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올해까지 6년간 불황이 이어져 바닥을 모른 채 가라앉는 늪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셈이다.





    멀티딥, 수요 충격, 전방위, 자생 불가능

    두 번째 특징은 ‘멀티딥(multi-dip)형’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하강하다 상승으로 전환되는 바닥 지점은 단 1개다. 그러나 회복세가 미미하거나 경기반등 시점에서 다른 충격이 발생하면 경기가 다시 침체되면서 저점이 여러 개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저점이 3개 이상인 경우를 멀티딥이라고 부른다. 지금 한국 경제의 많은 지표에서 이렇듯 여러 저점이 발견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어디가 바닥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나중에 보면 가라앉는 경로상 잠시 쉬어가는 포인트였을 뿐이고, 이후에는 더 깊은 바닥이 우리를 기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세 번째 특징은 원인 자체가 ‘수요 충격형’이라는 점이다. 불황은 그 발생 원인이 수요에 있느냐 공급에 있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오일쇼크다. 갑자기 석유 공급에 문제가 생겨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고물가와 저성장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때의 불황은 ‘공급 충격형’이다. 반면 현 불황은 글로벌 수요가 장기간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발생한 ‘수요 충격형’이다. 침체가 너무 길어져 기업에서 가계, 가계에서 기업으로 소득이 순환되는 고리가 끊어지고, 이에 따라 소비심리와 투자심리가 계속 악화되는 것이 원인이다. 절대수요 부족 현상이 재화와 서비스 시장에 나타나면서 불황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재고가 계속 쌓이고 가동률이 수년째 하락하는 모습이 바로 이러한 수요 부족 현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경제 내에 좋은 부문이 없는 ‘전방위형’ 불황이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든 경제가 불황 국면에 진입하는 경우에도 호황을 보이는 부문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외환위기 직후 내수(서비스업)는 어려웠어도 수출(제조업)은 환율 상승 등으로 호조를 보였던 게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조업 생산증가율이 장기간 낮은 수준에 머무는 가운데 서비스업마저 생산증가율이 하락 추세를 지속해 경기를 받쳐줄 부문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민간의 체력이 고갈된 ‘자생 불가능형’ 불황이라는 점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은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최근과 같이 2%대 성장률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만약 그동안 정부가 적극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지금의 경제성장률은 1%대 중반에 그쳤을 것이다. 오랜 기간 정부가 경기진작을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민간은 스스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정부라는 산소호흡기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다.



    선도 주력산업이 중요하다

    이렇듯 현 불황이 가진 특성을 꼼꼼히 살펴보면, 사상 초유의 늪지형 불황에서 탈출하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대응이 아니라면 발버둥 칠수록 늪 속으로 더 빠져들어갈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경제를 끌 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선도 주력산업이다. 대내외 경제여건이나 산업지형에 대규모 변화가 발생하고 산업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인 만큼,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쳐 산업정책과 관련한 중·장기 방향성과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고 주력산업군의 범위를 넓혀나감으로써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간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 불황이 장기화하면 고용시장 불안과 사회 취약계층의 생활고 문제가 우려되는데, 기존 사회보장정책을 개선하고 부정 수급 등 공공자금 누수를 차단해 실효적인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현 불황이 수요 침체에 원인이 있음을 감안할 때, 이에 대응하려면 그 반대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수요 확대 충격, 즉 금리인하와 추경 편성의 정책조합(policy mix)이 반드시 필요하다.

    밀도 높은 민관 공조를 통해 수출 증대  노력에 나섬으로써 해외 수요를 확보해나가는 일도 중요하다. 구매력 높은 미국시장에 대한 수요 분석 강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활용 극대화, 인도·베트남·이란 등 신흥시장 진출 지원 등 다양한 수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민간 자생력을 복원하기 위해 소비와 투자 진작을 유도할 수 있는 미시적인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 기업의 재고 압력 해소와 민간소비 확대를 동시에 도모할 수. 있도록 대규모 할인행사를 통해 소비심리를 개선하는 방안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기업 투자에 대한 신속한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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