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사회

검찰 수사로 간 변호사의 부동산중개

치열한 생존 경쟁 속 체면 버려…향후 부동산서비스 확대에 잠재고객 확보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4-18 0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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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의 부동산공인중개업 진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변호사들이 운영하는 ‘트러스트부동산’ 때문이다. 트러스트부동산은 공승배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회사 ‘트러스트라이프스타일’의 부동산서비스. 트러스트부동산은 2016년 1월 서울 강남구 한 건물의 전세계약 거래를 성사했다.

    문제는 트러스트부동산 소속 변호사들이 공인중개사 자격증 없이 첫 거래를 주도했다는 것. 공인중개사법 제18조 2항에는 ‘개업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 중개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에 최보경 민주공인중개사모임 대표와 허준 동남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서울 강남구청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강남구청은 트러스트부동산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강남경찰서는 4월 5일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부동산 명칭을 상호에 사용한 혐의’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해당 사건을 송치했다.  

    공인중개사 단체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트러스트부동산의 중개행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2006년 5월 대법원 판결(2003두14888)을 보면 “변호사법 제3조에서 정한 ‘일반 법률사무’는 구 부동산중개업법 제2조 제1호의 ‘중개행위’와는 구별되는 것이고, 일반의 법률사무에 중개행위가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즉 변호사는 부동산중개행위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연구원은 “변호사는 부동산 매매와 관련된 법률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중개행위도 부동산 매매 자문의 하나로 법률 사무에 포함된다”며 “변호사의 공인중개행위는 법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중개 거래로 ‘예비 손님 모셔두기’

    트러스트부동산 측은 “최근의 논란은 사전에 이미 예상했었고 법률 검토를 충분히 한 후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주도하는 부동산 거래가 ‘싸고 안전하다’고 홍보한다. 변호사들이 건물 현장을 직접 살펴 허위 매물이 없고, 법적 분쟁 발생 시 전문적인 법률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장 큰 장점은 일반 공인중개사를 통한 거래에 비해 중개수수료가 낮다는 점. 현행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의 중개수수료는 거래 금액에 따라 0.3~0.9% 상한율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트러스트부동산은 건물 매매 시 거래 금액 2억5000만 원 미만은 법률자문료 45만 원, 2억5000만 원 이상은 99만 원, 임대차 계약 시 거래금액 3억 미만은 45만 원, 3억 이상은 99만 원으로 정해놓았다(표 참조). 즉 매매가격이 10억 원인 아파트 거래 시 공인중개사의 중개수수료는 최대 900만 원이지만 트러스트부동산의 자문료는 99만 원이며, 매매가가 높아질수록 수수료 차이는 커진다. 소비자로선 적은 비용에 변호사가 중개하는 부동산 거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최근 트러스트부동산 같은 변호사 공인중개업소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기존에도 ‘법률사무소 아신’처럼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부동산중개를 한 적은 있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 없이 중개 거래를 한 사례는 트러스트부동산이 처음이다.



    “고가 건물 계약 시 변호사 찾을 것”

    이에 대해 변호사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변호사들이 새로운 수익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흥안 건국대 법과대학 교수(전 한국부동산법학회장)는 “변호사의 공인중개업 진출은 잠재고객 확보에 목적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인중개로 대단한 수익을 노린다기보다 중개로 만난 고객에게 추후 법적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건을 맡고자 ‘예비 고객’을 모셔둔다는 설명이다. 문 교수는 “예전에는 ‘변호사가 공인중개를 하면 체면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가 다수 배출되고 생존 경쟁이 강화되면서 공인중개로까지 눈을 돌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서비스업의 성장 전망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허준 대표는 “한국에도 일본 ‘미쓰이부동산’처럼 부동산종합서비스 회사가 생길 여건이 갖춰질 수 있어 변호사들이 그 시장을 파고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전망의 배경은 국토교통부가 2월 3일 발표한 ‘부동산서비스산업 발전 방안’ 때문. 부동산투자회사(REITs)를 선도적으로 육성하고 수익성 있는 모델을 발굴하며 부동산투자 회사의 상장 요건을 완화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골자다. 또한 중개, 컨설팅, 임대 관리, 세무 등 부동산업과 연계해 종합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우수 서비스로 인증해주는 제도도 포함돼 있다. 허 대표는 “이 방안이 시행되면 중개는 물론 건축, 도배, 이삿짐 등 다양한 세부 영역을 아우르는 부동산종합서비스 시장이 확대될 테고, 변호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장 전망에 따라 일부 로스쿨에서도 부동산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모 대학 로스쿨 재학생은 “최근 학교에 부동산학회가 생겼는데 학생들 열의가 대단하다. 특히 부동산 경매에 대한 관심이 뜨겁고 이 분야에 진출할 계획을 가진 친구가 많다”고 전했다.

    변호사업계는 ‘변호사도 공인중개를 할 수 있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특히 ‘규모가 큰 거래일수록 변호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전문로펌 ‘법무법인 조율’의 정동근 대표변호사는 “변호사는 잘못된 중개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담당하기 때문에 부동산 법무 관련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고가 건물을 중개할 때 중개사와 변호사가 함께 입회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변호사 자문비와 중개수수료를 이중으로 지출하는 것은 경제적 낭비”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단체 간부는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변호사에게 영역 확대 기회가 있다면 마다할 리 있겠나. 변호사업계의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문흥안 교수는 이번 논란을 두고 “변호사 및 공인중개사 업계가 각자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소위 지식인이라 부르는 변호사는 수익 문제를 떠나 공인중개업계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 공인중개업은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공인중개사의 중개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만큼 요율을 조정해 소비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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