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특집 | 세월호 참사 2주기

다시 4월, 흘려보낸 2년의 기록

시작도 못 해본 원인 규명…여소야대 정국에 마지막 기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4-18 09: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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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청문회에선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문할 계획입니다. 저희가 청문회 주제를 침몰 원인으로 잡은 이유는 그것이 참사 원인 규명의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청문회에서 이석태 위원장이 한 말이다. 이 청문회는 3월 28일 열렸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713일째 되는 날이다.

    2년 전 어느 봄날 아침, 잔잔한 바다에서 배가 가라앉았다.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됐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일부 유가족과 정치 세력만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모른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대법원도 지난해 11월 같은 판단을 했다. 사고 당시 세월호를 몬 3등 항해사와 조타수에게 검찰이 적용한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당초 검찰은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조타 미숙에 의한 과도한 조타’와 이에 따른 급변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건 ‘최대 적재 화물량 초과 및 고박불량 등의 업무상 과실과 알 수 없는 다른 원인이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대법원도 이 판결을 확정했다. 문제는 ‘알 수 없는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를 오늘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참사 원인 규명의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2년이 갔다.

    지난해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 ‘알 수 없는 다른 원인’으로 ‘조타기 고장 혹은 선체 이상(프로펠러 오작동)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내용을 확인해줄 세월호 선체는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맹골수도 거친 조류 아래 있다. 우리는 오늘까지 그 배와 그 안에 갇혀 있을지 모를 9명의 실종자조차 건져내지 못했다.





    여전히 잠겨 있는 진실

    하지 못한 게 또 있다. ‘101분의 비밀’을 푸는 일이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101분이 흐른 10시 30분, 물 밑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사이 살아서 뭍으로 올라온 사람은 172명이 전부다. 뒤늦게 발견된 동영상 속에서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김동협 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여기 보시면 지금 배가 기울었거든요. 보이시죠? 지금 거의 한 60도 기울어진 거죠. 지금 구조대가 오고 있대요. 해상구조대.”

    김군이 이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한 건 오전 9시 10분쯤이었다. 배가 가라앉기까지 아직 8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나 침착하려 애쓰던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내가 진짜…”라고 탄식하다 끝내 “아, 진짜 나 무서워요, 지금. 나 어떡해요”라고 울부짖기까지, ‘해상구조대’의 손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이거 끈 꽉 묶었습니다”라며 구명조끼 입은 모습을 보여준 김군은 크고 많은 꿈을 채 펴지 못한 채 결국 숨을 거뒀다.

    왜 우리는 김군을 구하지 못했을까. 이를 초래한 구조난맥상의 원인도 2년이 흐른 오늘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해 형사책임을 진 사람은 현장에 출동했던 123정 정장(당시 해양경찰 경위)밖에 없다. 4월 11일 안산시 ‘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분향소)에서 만난 김일곤 씨는 “많은 사람이 ‘세월호 이야기가 이젠 지겹다’고 말한다. 지겨울 수밖에 없는 건 지난 2년간 아무 진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2년 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울었는데, ‘진상을 밝히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외쳤는데 지금까지 사고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했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시곗바늘을 2년 전으로 돌려보자. 세월호가 침몰하고, 충격과 분노와 슬픔이 온 나라를 휩쓸고 간 때로 말이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특조위에 수사·기소권을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희생자 유족 등과 이에 반대하는 여당 사이 갈등이 이어진 결과다.

    오랜 힘겨루기 끝에 특조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한 게 그해 11월. 특조위가 구성되기까지는 이로부터 4개월이 더 걸렸다. 이번엔 특조위 조직과 예산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면서다. 마침내 특조위원은 여당 추천 5명, 야당 추천 5명, 유가족 추천 3명, 대법원 추천 2명, 대한변호사협회 추천 2명 등 총 17명으로 확정됐고, 이석태 위원장 등은 지난해 3월에야 임명장을 받았다.

    하지만 이때도 특조위 활동이 시작되지는 못했다. 이번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특조위 조사 범위를 축소하고 핵심 직책을 정부 파견 공무원에게 맡기려 했다. 이석태 위원장 등이 이에 반대해 단식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양자의 타협으로 시행령이 공포되고, 특조위 직원들이 출근을 시작한 건 지난해 7월의 일이다. 관련 예산이 8월 집행되면서 특조위는 9월에야 비로소 ‘진상규명조사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여기까지 이르는 데 1년 5개월이 걸렸다.



    다시 ‘원인 규명, 재발 방지’

    이후에도 특조위는 파행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새누리당 추천으로 특조위에 참여한 이헌 전 특조위 부위원장이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사퇴하는 등 여야 추천위원 사이에, 또 파견 공무원과 별정직공무원 간 의견차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한 특조위원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출마가 좌절되자 다시 여당 추천을 받아 복귀하는 등 책임감 없는 행동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이 특조위에 기대한 ‘사고 원인 규명’은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세월호특별법이 규정한 특조위 활동 기간이 최대 1년 6개월에 불과한 것도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세월호특별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1일을 특조위 출범일로 볼 경우,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특조위는 머잖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상황이다. 그런데 아직 전남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는 세월호는 빨라야 7월, 늦으면 9월 무렵에나 물 밖으로 나온다. 자칫하면 특조위가 선체 조사조차 하지 못한 채 해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세월호 침몰 후부터 줄곧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기록을 수집, 관리해온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13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진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가 총선 전 각 당에 세월호 참사 관련 의견을 물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은 모두 △특조위의 독립적 조사 활동 보장과 특별검사 임명 관련 3개 과제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보존, 미수습자 전원 수습 관련 3개 과제 등 12개 정책과제에 동의했다. 야당이 힘을 합쳐 특조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이제라도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렇게 다시 첫걸음을 내딛자는 얘기다.  

    어느새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이 지났고, 다시 봄, 4월, 그날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드넓은 바다만 망연자실 바라보던, 그날 그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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