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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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질병 번져도 역학조사 의무 없는 반려동물

[이학범의 펫폴리]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전국 확산… 역학조사 법적 근거 공론화 필요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4-07-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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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건강하던 반려묘가 갑자기 일어서지 못하고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는 일명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한 지 만 3개월이 됐습니다(고양이 집단폐사 사건, 고양이 괴질병 사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글에서는 대한수의사회가 지칭한 ‘고양이 신경근육병증’으로 부르겠습니다).

    반려묘가 잘 일어서지 못하고 검붉은 소변을 누는 증상을 보이다가 심한 경우 폐사에 이르는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가 4월 발생했다. [GETTYIMAGES]

    반려묘가 잘 일어서지 못하고 검붉은 소변을 누는 증상을 보이다가 심한 경우 폐사에 이르는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가 4월 발생했다. [GETTYIMAGES]

    ‘문제 사료’도 원인 아니라는데

    이 사건이 처음 공론화된 건 4월 11일이었습니다. 대한수의사회가 “원인불명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며 “(반려묘가) 잘 일어서지 못하거나, 안 움직이거나, 검붉은 소변을 누는 등 이상 증상을 보이면 즉시 동물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당부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죠.

    이후 반려묘 보호자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관련 사례가 공유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정확히 몇 마리가 이런 증상을 보였는지, 또 그중 몇 마리가 폐사했는지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동물단체가 “5월 1일까지 262가구 436마리 반려묘가 증상을 보였다”며 자체적으로 제보받은 결과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또 동물병원 수의사들도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의심 사례를 공유하고 있는데, 5월 말까지 208마리의 의심 사례가 모집됐고 이 중 69마리가 사망해 사망률 33.2%를 기록했습니다. 물론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만 해야겠지만요.

    사건 발생 이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된 건 바로 ‘사료’입니다.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의심 사례를 모집 중인 동물단체는 “사망하거나 급성 질환을 겪은 반려묘의 공통된 특징은 대부분 특정 제조원(공장)에서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생산된 반려묘용 사료를 먹었다는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사료를 급여한 뒤 증상을 보였다는 반려묘 보호자들 사례도 계속 공유됐습니다.

    그러나 정부 검사 결과 사료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4월 19일 검사를 의뢰받은 30여 개 사료 중 3개에 대한 검사 결과를 먼저 발표했습니다. 신경근육병증 의심 반려묘를 진료한 동물병원에서 직접 의뢰한 사료였기 때문에 이 사료에서 뭔가가 검출됐다면 사료가 이번 사태 원인으로 특정됐을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모두 적합’이었습니다. 의심 물질이 전부 불검출(음성)됐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5월 12일 다시 한 번 사료 검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번에도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의뢰받은 사료 30여 개뿐 아니라 시중에 유통 중인 사료 20여 개까지 수거해 검사한 결과였습니다.

    일각에선 정부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요. 검사 결과 자체는 믿을 만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국내에는 사료 시험 검사기관 및 검정기관이 20개 이상 있습니다. 이 기관들을 평가·지정·관리하는 곳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이고 정부의 사료 검사도 바로 이 농관원에서 시행됐습니다. 검사 항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중금속 5종, 곰팡이독소 7종, 잔류농약 37종, 동물용의약품 27종, 미생물 1종, 멜라민 등 총 78개 유해물질을 검사했습니다. 그 밖에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바이러스 7종, 기생충 2종, 세균 2종에 대한 검사도 진행했는데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검사 항목에는 인터넷상에서 의심 물질로 지목됐던 성분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검역본부에 의뢰된 반려묘 10마리에 대해서도 병원성미생물 17종, 근병증 관련 물질 34종과 살서제, 멜라민, 동물용의약품, 농약 등 유해물질 859종까지 총 910개 항목을 정밀 검사했는데, 마찬가지로 음성 판정이 났거나 폐사와 직접적 인과성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원인물질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추가 조사 및 검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나가는 시점에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역학조사 부족해 원인 못 밝혀”

    여기서 돌아볼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역학조사’입니다.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재난형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정부는 역학조사를 시행합니다. 문제가 된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 현황, 주변 환경, 농장 관계자의 이동 동선, 농장에 출입한 외부자 현황, 사료·깔짚 종류와 그 구입·관리 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전염병 바이러스가 어디서 어떻게 유입됐는지 파악하죠.

    반면 반려동물 질병의 경우 역학조사를 할 법적 근거가 없고 이를 주도할 기관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얼마 전 학회에 ‘국내 반려동물 질병 예찰 및 역학조사 체계의 현황과 과제’를 다룬 논문이 발표됐는데요. 연구진은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태와 관련해 “(사료에) 노출된 반려묘와 그렇지 않은 반려묘의 위험을 비교하는 역학조사 대신 사료에서 유해물질을 검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역학조사가 부족해 구체적 원인과 연관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소, 돼지, 닭 등 농장동물 전염병은 가축전염병 예방법이 근거가 돼 평상시 발병 여부 감시, 의심 증상 발생 시 신고가 의무화돼 있습니다. 주요 가축전염병이 확인되면 역학조사가 시행되고 구체적인 역학조사서도 작성되죠. 반면 반려동물과 관련해선 이런 규정이나 지침이 없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반려동물과 관련해 또 어떤 집단폐사 사건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반려동물 질병을 감시하고 역학조사를 시행할 법적 근거와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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