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9

2022.03.04

러시아 우크라 침공에 희귀 가스 수급 차질… 전쟁 장기화 시 반도체산업 타격 우려

자동차, 가전 업계도 초긴장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2-03-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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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한 시설물이 불길에 휩싸여 연기가 치솟고 있다. [CNN 홈페이지]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한 시설물이 불길에 휩싸여 연기가 치솟고 있다. [CNN 홈페이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적 불안감 또한 증폭되는 가운데, 반도체산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특수 가스인 네온, 제논, 크립톤 등을 공급하는 주요 국가들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이스블릭(Iceblick), 인가스(Ingas), 크라이오인(Cryoin) 같은 업체를 통해 전 세계 네온 가스 용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업체의 공급망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

    크립톤 수입량 30% 이상 우크라이나 차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들여온 네온 가스의 수입국별 비중은 중국(66.6%), 우크라이나(23.0%), 러시아(5.3%) 순이다. 대중(對中) 수입 의존도가 높지만 우크라이나의 비중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크립톤 수입은 우크라이나(30.7%), 중국(25.6%), 미국(21.1%), 러시아(17.5%) 순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비중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국내 기업들은 이들 가스 비축량을 평소 대비 3~4배로 늘리고 대체 공급선도 두고 있다고 밝혔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네온은 대기 중에 0.00182% 농도로 존재하는 희귀 가스다. 흔히 알고 있는 네온은 간판용 조명에 쓰이며, 붉은 주황색 빛을 발한다. 네온은 액체공기의 분류(분별증류)에 의해 상업적으로 추출되는데, 공기가 유일한 공급원이라서 헬륨보다 값이 훨씬 비싸다.

    반도체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은 설계한 회로패턴을 실리콘 웨이퍼(반도체를 만드는 토대가 되는 얇은 판)에 도포하고 빛을 조사함으로써 마치 사진을 찍는 것처럼 회로패턴을 새기는 리소그래피(Lithography)다. 이때 정밀하게 회로를 새기기 위해 DUV(Deep Ultra Violet: 심자외선)를 주로 사용한다. DUV에는 엑시머레이저(excimer laser: 국소 부위 치료에 사용하는 고출력 자외선 레이저 장비)가 필요한데 여기에 네온 가스가 주재료로 쓰인다. 엑시머레이저는 특수 가스를 혼합한 것으로 의료용은 물론,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노광장비와 레이저 결정화(Excimer Laser Anneal·ELA) 장비 등에 사용된다. 네온, 불소, 아르곤 등 특수 가스를 혼합해 제조하며, 혼합물 중 네온이 95% 이상을 차지한다. 크립톤과 제논은 반도체 회로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 쓰인다.

    네온과 크립톤은 제철 과정의 부산물이자 폐가스의 희귀 성분이라서 초대형 철강 공장에서 회수해야 한다. 옛 소련은 네온, 크립톤, 제논 성능을 갖춘 제철소용 산소 공장을 가동하면서 상당량의 네온 가스를 생산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역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해 네온을 과잉 공급해왔는데, 근래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동유럽에 있는 많고 오래된 산소 공장은 네온 가스가 나오지 않는 새 장치로 교체되기도 하고, 철강산업이 위축됨에 따라 서서히 폐쇄됐다. 이로 인해 네온 가스 부족 현상이 나타나다 결정적으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하며 가스 가격이 치솟았다. 당시 러시아가 국제 제재를 받고 우크라이나의 공급 물류도 흔들리면서 가스와 금속 가격이 폭등했다. 네온 가격도 10배나 올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신 중국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으나 불확실한 대안이다. 중국도 오래된 공장이 멈추거나 추가 희귀 가스 회수가 불가능한 새로운 공장으로 대체되고 있어서다. 희귀 가스를 원하는 강력한 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 ROI(투자자본수익률)를 위해 희귀 가스 회수 기능이 없는 신규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네온 가스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고급 정화 생산 능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1월 포스코가 특수 가스 전문 소재기업 TEMC와 손잡고 광양제철소 산소 공장에 네온 가스를 추출하는 설비를 구축했다. 크립톤, 제논 가스의 국산화 기술 개발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포스코는 하반기부터 국산 네온 가스를 반도체 소자업체에 본격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국내 수요의 16%가량을 충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생태계 위협

    현재 반도체 관련 리소그래피는 전 세계 네온 가스 수요의 약 70%를 차지한다. 메모리의 경우 낸드플래시는 100% DUV 노광 기술이 사용되며, D램도 90% 이상이 DUV를 사용하고 있다. 네온 가스는 용량이 충분히 생산되거나,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공정으로 대체될 때까지 향후 몇 년 동안 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지속된다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스 공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전쟁으로 국제 에너지 및 원자재 수급과 가격 불안이 고조되는 것 또한 큰 문제다. 반도체 공급망은 원자재, 장비, 웨이퍼 제조, 포장, 팹리스(반도체 설계 및 개발 전문업체) 회사, 유통업체 등 다국적 회사가 참여하는 복잡한 생태계다. 공급망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19 팬데믹 하에서 글로벌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 이후 반도체 부족에 직면한 자동차산업, 데이터산업에도 이중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애널리틱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대만, 일본, 중국 반도체업체들이 타격을 입어 가격 상승과 공급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부족에 따른 도미노 효과로 자동차, 전자제품, 스마트폰 산업 등에 비용 증가와 생산 침체를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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