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5

2021.09.03

대우조선, 인도軍 잠수함 6척 수주 ‘눈앞’…독 든 성배 안 되려면?

印 ‘갑질’에 판 엎은 프랑스 다쏘 반면교사, 기술이전·품질보증 조건 잘 따져야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1-09-0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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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해양(DSME)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사진 제공 ·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DSME)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사진 제공 · 대우조선해양]

    2015년 1월 프랑스 굴지의 항공기 메이커 ‘다쏘(Dassault)’는 인도 정부와 전투기 거래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다쏘는 인도가 요구한 전투기 사양이나 구매 조건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제안을 들고 나왔다. 견적서에 제시한 금액도 인도 측 조건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사실상 판을 엎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인도는 MMRCA(Medium Multi Role Combat Aircraft) 프로그램을 진행해 세계 전투기 메이커 사이에서 ‘큰손’으로 떠올랐다. 인도가 사업 공고 당시 밝힌 전투기 도입 규모는 126대, 여기에 추가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옵션 물량 63대까지 합하면 189대에 달했다.

    F/A-18E/F(미국 보잉), F-16I(미국 록히드마틴), 유로파이터 타이푼(유럽합자기업 EADS), MIG-35(러시아 미코얀), JAS-39(스웨덴 사브)를 제치고 라팔(프랑스 다쏘)이 2011년 최종 승자가 됐다. 그런데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후 인도와 프랑스는 4년 넘게 협상을 질질 끌다 2015년 4월 결국 협상 결렬·사업 파기를 선언하고 돌아섰다.

    “인도 생산 물량도 품질보증하라”

    인도 국영 방위산업체 힌두스탄항공(HAL)의 테자스 전투기. [뉴시스]

    인도 국영 방위산업체 힌두스탄항공(HAL)의 테자스 전투기. [뉴시스]

    다쏘는 무슨 연유로 이 사업 수주를 걷어찬 것일까. 협상 테이블에서 비상식적 조건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은 인도였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다쏘에 전투기 126대 중 108대는 인도 힌두스탄항공(HAL)이 기술을 도입해 생산하고, HAL 생산 물량의 납기·품질보증도 책임질 것을 요구했다. HAL은 세계 항공업계에서 악명 높은 인도 국영 항공기 제작사다. 이렇다 할 기술력이 없는 데다, 사내 부정·부패가 극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HAL 주도로 1983년 자국산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외국의 기술 지원 하에 부품 상당수를 외국산에 의존했는데도 첫 양산형 모델 테자스의 실전 배치는 2015년에야 이뤄졌다. 인도 항공기 개발·제작의 비효율성이 드러난 대목이다. 인도 정부는 이런 전력이 있는 HAL이 생산하고, 심지어 인도 현지에서 제작된 부품을 장착한 라팔 기체에 대해서도 다쏘가 품질을 보증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전투기 국산화에 필요한 핵심 기술의 이전도 요구했다. 당연히 다쏘가 판을 엎을 수밖에 없었다.



    뜬금없이 인도 전투기 얘기를 꺼낸 이유는 한국 방위산업체가 2015년 다쏘와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어서다. 인도 해군 차세대 재래식 잠수함 도입 사업 ‘P75I’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우조선해양(DSME)이 그렇다. 인도는 1997년 ‘프로젝트 75’ 구상으로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6척, 재래식 잠수함 18척 등 24척의 잠수함 도입을 뼈대로 한 국가전략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재래식 잠수함 도입 사업 1단계로 프랑스 나발그룹(Naval Group)의 스콜펜(Scorpene)급 잠수함 6척(기술도입사업 형태)을 인도에서 건조 중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참여한 것은 해당 사업의 후속 물량 6척 수주전이다.

    인도는 수중에서 오랜 기간 작전할 수 있는 공기불요추진(Air-Independent Propulsion·AIP) 시스템을 탑재한 잠수함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잠수함 기술의 최신 트렌드인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의 AIP 잠수함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잠수함 6척을 건조하는 직접 비용으로 예산 4300억 루피(약 6조8200억 원)를 책정했다. 잠수함 1척에 1조1300억 원꼴이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세계 유수 잠수함 메이커가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졌다. 1차 사업을 수주한 프랑스 나발그룹이 호주 수출형인 ‘쇼트핀 바라쿠다(Shortfin Barracuda) Block 1A’ 모델을 제안했다. 독일 잠수함 명가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hyssenKrupp Marine Systems)은 베스트셀러 잠수함 214형의 확대 개량형인 216형·218형 잠수함을 제시했다. 스페인 나반티아(Navantia)는 자국 해군에 납품한 S80 잠수함을 확대 개량한 S80+ 모델, 러시아 국영무기수출업체 로소본엑소퍼트(Rosobonexopert)는 아무르(Amur)-1650형 잠수함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 대우조선해양도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개량한 DSME 3000 모델을 내놓았다.

    프랑스 방위산업체 나발그룹(Naval Group)이 기술이전 형태로 건조한 인도 해군 스콜펜급 잠수함. [사진 제공 · 인도 해군]

    프랑스 방위산업체 나발그룹(Naval Group)이 기술이전 형태로 건조한 인도 해군 스콜펜급 잠수함. [사진 제공 · 인도 해군]

    ‘수직발사관’ 탑재 가능 유일 모델

    1차 사업을 따낸 ‘디펜딩 챔피언’의 새 모델 쇼트핀 바라쿠다의 최대 약점은 가격. 현재 척당 건조 비용이 3조 원을 넘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은 216형과 유사한 함정을 건조한 경험이 없어 발목을 잡혔다. 나반티아의 S80+는 자국 해군에 인도한 잠수함에서 설계 결함 문제가 지적돼 수주 가능성이 낮아졌다. 중국이 유사한 모델 설계도를 확보한 러시아제 잠수함도 인도군엔 매력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경쟁자들이 뚜렷한 한계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의 DSME 3000이 최종 승자가 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유력한 라이벌인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이 입찰을 포기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마저 나왔다. DSME 3000은 다른 모델들과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 제품이다.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을 통해 검증된 선체, 세계 최고 수준의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을 이용한 AIP 시스템, 경쟁 모델 중 유일한 수직발사관 모듈을 갖춘 재래식 잠수함계의 명품이다. 인도는 P75I 잠수함에 수직발사관을 탑재해 자국산 브라모스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운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충족할 모델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탑재 설계를 완료한 DSME 3000이 유일하다. 인도 측이 제시한 척당 1조 원 안팎의 가격을 맞추면서 이처럼 높은 사양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K-9 자주포 수출 신화 이어가야

    문제는 계약 조건이다. 이번 사업은 해외 협력업체 선정→해당 업체가 인도 국내 조선소와 파트너십 체결→인도 현지에서 기술이전 방식으로 잠수함 6척 건조 순서로 이뤄진다. 인도는 이 과정에서 상당한 수준의 ‘부품 국산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일각에선 부품 60% 이상 자국산화를 제시했다는 관측도 있다. 한국이 도산 안창호급 잠수함 개발 과정에서 구현한 국산화율이 76%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국내 잠수함 기술을 전부 이전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향후 인도가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품질 보증에 관한 계약 부분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인도는 자국산 부품을 사용해 인도에서 건조하는 ‘인도산 잠수함’에 대해서도 기술협력업체의 품질 보증을 요구하고 있다. 인도 방위산업의 정밀성, 사업 관리 능력 등을 고려하면 한국 조선업체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지나치게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한국은 인도에 K-9 자주포를 기술이전 생산 방식으로 수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우수한 품질과 사업 관리 능력으로 인도 고위층을 감탄케 했다. ‘K-방산’의 명성을 이어가면서도 인도 잠수함 사업 수주가 독이 든 성배가 되지 않으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 업체의 치밀한 준비와 전략 수립은 물론,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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