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0

2021.07.30

에스파 노래 부르는 바다, 커버는 사랑이다

[미묘의 케이팝 내비] 재탕과는 다른 커버 붐… 다른 해석과 스타일로 즐거움 제공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1-08-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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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그룹 에스파(위)의 노래 ‘Next Level’을 선배 가수 바다가 커버한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처]

    걸그룹 에스파(위)의 노래 ‘Next Level’을 선배 가수 바다가 커버한 유튜브 영상. [유튜브 캡처]

    얼마 전 가수 바다는 걸그룹 에스파의 노래 ‘Next Level’을 부르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했다. 바다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소속 가수 특유의 응어리진 목소리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부르자 “SM은 얼른 이 가수를 캐스팅하라”고 외치는 팬도 있었다. 바다가 과거 SM 소속 걸그룹 S.E.S. 멤버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젊은 세대의 재미있는 착각이었다.

    이처럼 앨범을 정식으로 발매하지는 않으나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불러 보이는 일을 ‘커버(cover)’라고 한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가수와 크리에이터의 커버 영상이 올라와 있는데, 모두 다른 스타일과 해석을 선보인다. 이런 커버 영상은 해당 가수의 팬에게도, 원곡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큰 즐거움이다.

    우리는 곡이 어떤 가수의 ‘소유’라는 인식에 익숙하다. 윤종신 곡은 윤종신의, 레드벨벳 곡은 레드벨벳의 것이라고 말이다. 비단 사용료나 저작권 차원만이 아니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어떤 노래든 원곡 가수 또는 그 곡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가수와 연결 짓는다. 그래서 남의 곡을 부르는 행위도 원곡 가수와 무관할 수 없다. 말하자면 누군가 S.E.S.의 노래를 커버할 때면 S.E.S. 노래의 옷을 빌려 입는 격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기 취향의 표출이나 해당 곡과 가수에 대한 애정, 존경의 표현 등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 곡’이 없는 가수는 어딘지 아마추어 같은, 자격이 부족한 가수처럼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물론 이것은 대중음악이 발아한 20세기에 생겨난 사고방식이다. 반드시 ‘유일한 정답’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실제로 트로트는 역사상 수많은 레퍼토리 가운데 어떤 곡이든 가져와 부르거나 앨범으로 내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 과정에서 원곡 가수가 누구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클래식 성악가가 가곡을 부르거나, 재즈 가수가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를 부르는 것과도 비슷하다. 또는 타인의 곡을 자유롭게 재해석해 (주로 비상업적 용도로) 내놓는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에서도 비슷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하나의 곡은 누군가의 사유물이기보다, 몇 가지 단서를 충족하면 사용할 수 있는 공동자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 불고 있는 커버 붐은 케이팝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가요계는 빠른 템포의 ‘가요 리믹스’를 제외하면 리믹스 문화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튜브 등에서는 해외 팬들이 케이팝을 리믹스하고, 한국어로 노래하는 커버 영상을 올리거나 영어 버전을 커버하며, 안무를 따라 추는 ‘커버 댄스’ 문화가 이미 10년 전부터 인기였다. 여기에 아티스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활발해지면서 다른 가수의 곡을 부담 없이 커버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 나는 지나친 리메이크 붐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재탕으로 시장을 점령하는 것과 커버를 통한 공감 및 교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케이팝은 유사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커뮤니티로도 작동한다. 이에 커버는 서로가 같은 관심사와 취향의 역사를 지니고 같은 노래에 감명받았음을 표현해 커뮤니티 속 서로를 확인하는 일이다. 아울러 이를 위해 콘텐츠를 공동자산처럼 활용한다. 분명 케이팝은 고도로 상업적인 문화상품이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화현상들을 부산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커버 문화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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