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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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미술품 된 이건희의 아름다운 선물

대한민국판 테이트 모던 탄생할까

  •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2021-05-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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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사진 제공 · 삼성]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사진 제공 · 삼성]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지엄은 단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 없던 2018년 연간 방문객 수는 1000만 명이 넘었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현대미술관은 어디일까. 뉴욕 현대미술관도, 파리 퐁피두센터도 아니다. 바로 런던 테이트 모던이다. 2000년 개관해 스물한 살이 된 미술관이지만 2019년 한 해 600만 명 넘게 방문했다. 개관 260년이 넘은 대영박물관 방문객 수와 비슷하다. 런던에 있는 테이트 브리튼과 지역에 있는 2개 분관까지 합하면 테이트 미술관 전체 방문객 수는 연간 800만 명에 달한다. 그중 절반은 외국인 관광객이다. 짧은 역사에도 테이트 모던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건 뛰어난 소장품과 획기적 전시, 상설전 무료 관람제 덕이다.

    그런데 영국 국립현대미술관 이름이 왜 테이트일까. 테이트 미술관은 제당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헨리 테이트가 국가에 기증한 근현대미술품 65점과 건립 비용을 토대로 1897년 세워졌다. 그래서 기증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국립미술관임에도 테이트라는 이름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빈센트 반고흐 작품을 270점 이상 소장한 네덜란드 크뢸러 뮐러 미술관도 소장품과 미술관 부지를 기증한 설립자 이름을 딴 국립미술관이고,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도 세계적인 예술품 수집가였던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설립된 국립미술관이다. 이렇게 해외에는 국립미술관이지만 설립자나 기증자 이름을 딴 미술관이 꽤 많다.

    최근 국내 문화계 핫이슈는 ‘이건희 컬렉션’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유물 2만1600여 점,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근현대미술품 1400여 점이 국가에 기증됐기 때문이다. 이번 기증 미술품은 감정가만 3조 원대에 달한다. 국보급 유물은 물론이고, 국내외 거장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그야말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기증품 규모가 워낙 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만큼 별도의 전시관이 세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 서로 유치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라 이건희 컬렉션 이슈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판 테이트 모던이 탄생할 수 있을까.

    놀라운 이건희 컬렉션 리스트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건희 컬렉션’의 실체는 무엇인가. 미술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소문만 무성하게 떠돌던 이 회장의 소장품 리스트엔 과연 어떤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 걸까.

    겸재 정선, ‘정선필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사진 제공 · 삼성]

    겸재 정선, ‘정선필 인왕제색도’, 국보 제216호. [사진 제공 · 삼성]

    단원 김홍도, ‘김홍도필 추성부도’, 1805. [사진 제공 · 삼성]

    단원 김홍도, ‘김홍도필 추성부도’, 1805. [사진 제공 · 삼성]

    대규모 기증을 받는 대표적인 두 기관의 소장품 목록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은 9797건(2만1600여 점)을 기증받는다.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선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를 비롯해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마지막 그림 ‘김홍도필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돼 있다. 1946년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총 43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이 중 5만여 점이 기증품이다. 그러니까 2만 점 이상의 이번 기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사진 제공 · 삼성]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사진 제공 · 삼성]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장욱진, ‘나룻배’, 1951. [사진 제공 · 삼성]

    장욱진, ‘나룻배’, 1951. [사진 제공 · 삼성]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품 1226건(1400여 점)을 기증받는다. 미술계와 일반인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목록이기도 하다. 이번 기증품에는 국민 화가로 사랑받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와 ‘나룻배’ 등 한국 대표 작가의 근현대미술품 460여 점이 포함돼 한국 근현대미술사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이중섭의 ‘황소’는 화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소의 표정과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소는 이중섭이 젊은 시절부터 그린 각별한 소재이면서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자 우직한 한민족의 표상으로 해석되곤 한다.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9~1920. [사진 제공 · 삼성]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1919~1920. [사진 제공 · 삼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189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1890년대. [사진 제공 · 삼성]

    폴 고갱, ‘무제(Untitled)’, 1875. [사진 제공 · 삼성]

    폴 고갱, ‘무제(Untitled)’, 1875. [사진 제공 · 삼성]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1893. [사진 제공 · 삼성]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1893. [사진 제공 · 삼성]

    ‘이건희 컬렉션’에서 가장 주목받는 리스트는 아마도 서양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일 테다. 인상주의 창시자로 불린 클로드 모네부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카미유 피사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등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던 세계적 거장의 작품이 대거 포함돼 놀라움을 자아낸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나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가야 볼 수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상설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미술 애호가들을 가슴 설레게 한다.

    특히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수련 연못 그림이 모네의 대표작이자 가격도 천문학적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모네는 43세 때 프랑스 지베르니에 정착해 연못과 정원을 직접 가꾸며 수련 연못 시리즈 수백 점을 제작했다. 말년에는 시력이 나빠져 추상화처럼 그렸는데 역설적이게도 20세기 추상미술의 전조를 보여주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됐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다. 모네의 수련 그림 한 점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950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비가 50억 원가량인 것을 감안할 경우 이번 기증이 아니었다면 절대 소장할 수 없는 그림이다.

    빌럼 더코닝, ‘무제X IV’, 1975. [사진 제공 · 삼성]

    빌럼 더코닝, ‘무제X IV’, 1975. [사진 제공 · 삼성]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1940. [사진 제공 · 삼성]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1940. [사진 제공 · 삼성]

    잭슨 폴록과 함께 1세대 추상 표현주의 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빌럼 더코닝의 1975년 작 ‘무제’ 시리즈도 관심을 끈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같은 시리즈 중 한 점은 2016년 74억 원에 거래된 바 있고, 작가의 작품 최고가는 3000억 원에 달한다. 가난한 목수에서 가장 위대한 미국 화가가 된 폴록처럼 더코닝 역시 신화적 성공 스토리를 가진 작가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미국에 밀입국해 오랫동안 불법체류자로 살다 고생 끝에 추상표현주의 거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호안 미로의 ‘구성’,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도 국가 예산으로는 구입하기 힘든 귀중한 서양미술 걸작이다.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총 1만2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5400여 점이 기증품으로, 이번 1400여 점의 기증은 역대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앞으로 두 번 다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일 것이다.

    개인 수장고에서 공공 미술관으로

    해마다 1000만 명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에 가는 건 파블로 피카소,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그림을 언제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무얼 볼 수 있을까. 그 흔한 피카소 작품도, 워홀의 대표작 하나도 없다. 어느 미술관이든 그곳을 상징하는,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시니그처 작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무리 건축이 멋들어져도 그 안에 볼거리가 없으면 사람들은 가지 않는다. 국립미술관들은 늘 예산이 빠듯한 법. 따라서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과 양질의 소장품 기증은 필수적이다. 또한 기증 행위와 선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돈이 있다고 미술품과 문화재를 수집하는 것도 아니고, 부자라고 다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도 아니다. 안목 높은 수집가로서 한 개인이 대를 이어 일군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은 선례가 돼야 한다. 여러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나라 기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건 분명하다. 잘 보존하고 잘 보여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미술관을 마련해 다른 수집가들에게도 자극제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번 기증품 중엔 수십 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많다. 공개된 적이 없어 연구도 되지 않아 정보가 없는 것도 많다. 개인 수장고를 벗어나 공공장소로 나와야 활발한 토론과 연구가 이뤄질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 공개 전시가 열릴 올여름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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