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8

2020.12.11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반중력 [궤도 밖의 과학 36]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12-08 1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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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인지 곰인지 쉽게 분간이 되지 않는 로봇이 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캐릭터 중의 하나인 ‘도라에몽’이다. 이 친근한 녀석은 배에 달린 4차원 주머니에서 필요한 미래 도구를 종종 꺼내는데, 작품 속에서 도라에몽이 꺼낸 최초의 도구이자 상징은 바로 대나무 헬리콥터다. 끝에 작은 프로펠러가 달린 막대기를 어디든 붙이기만 하면 날 수 있는데,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이건 헬리콥터가 아니다. 통상적인 헬리콥터라면 꼬리 프로펠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체가 빙글빙글 돌게 된다. 고작 머리에 붙인 프로펠러가 몸 전체를 들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잘못하면 소중한 두피와 머리카락만 이륙해버릴 것이다.

    ‘백 투 더 퓨처’에서 호버보드를 날게 하는 힘

    영화 ‘백 투 더 퓨처2’ 속 호버보드. 상상 속의 반중력을 설명하는데 자주 등장한다. [Universal Pictures]

    영화 ‘백 투 더 퓨처2’ 속 호버보드. 상상 속의 반중력을 설명하는데 자주 등장한다. [Universal Pictures]

    실제 극 중의 설정에서는 프로펠러로 양력을 발생시켜서 나는 게 아니라, 날개에서 직접 반중력(antigravity, 反重力)을 생성해서 날아간다고 한다. 반중력은 중력과 상반된 개념으로 모든 것을 밀어내는 성질을 말한다. 중력에 반하는 힘으로 몸이 떠오른다면, 결과는 나쁘지 않다. 물론 그게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고전 명작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는 미래에 도착한 주인공이 애들이 타는 호버보드를 강탈해 위기를 벗어나는데, 이 역시 반중력을 이용한 탈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 기업은 초전도체를 이용해 호버보드를 현실적으로 구현했는데, 액체 질소로 온도를 영하 196℃로 유지해야 하기에 상용화가 쉽지 않아 보인다. 

    반중력은 게임 속에도 자주 활용되는 소재다. 우리가 게임에 몰입되는 이유는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이 가상의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인데, 반대로 어느 순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상황에 도달하게 되면 속박에서 벗어나며 심리적 쾌감을 얻게 된다. 평소에 마음껏 하늘을 날거나, 자동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마리오 카트’라는 게임의 여덟 번째 시리즈에는 허공을 떠다니는 카트를 타고 비행하는 반중력 트랙도 등장했다. 

    반중력을 써서 날아다니는 대표적인 비행체는 미확인비행체(UFO)다. 이름 그대로, 식별하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비행체라 실제 어떻게 반중력을 써서 날아다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주로 내부 고발자를 통해 불쌍하게 고문당하는 외계인의 이야기와 함께 언급된다. 특히 이런 미확인비행체는 미국 네바다 주에 있는 군사 작전 지역에 주로 모여 있는데, 바로 여기가 음모론의 고향이라 불리는 51구역이다. 

    몇몇 이들은 꽤 상세한 묘사로 그 형태를 폭로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최초의 스텔스기였던 F-117이나 정찰기 U-2, 초음속 SR-71 등 미국의 신형 군용기가 51구역에서 시험비행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다른 나라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테스트하기 좋은 지역일 테고, 51구역에 누군가 물리 한계를 뛰어넘는 과학기술을 처음 목격했다면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연결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사실 반중력 자체는 과학적인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인데,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다. 중력권을 벗어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지구를 떠나는 일 말고도 닥쳐서 해결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로켓에 들어가는 무거운 연료와 산화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륙조차 쉽사리 할 수 없다면 영화가 제대로 진행될 수나 있을까. 그냥 반중력으로 한 마리의 주작처럼 날아오르는 거다. 과학적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SF영화 ‘인터스텔라’도 마찬가지다. 더는 인류가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벗어나려면, 기존의 방식으론 힘들다. 고작 우주정거장까지 가기 위해서도 탑재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을 할 텐데, 수많은 인구를 태운 우주선이 떠오른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머피의 딸 쿠퍼가 종이 뭉치를 집어던지며 중력 방정식을 풀어냈고, 인류에게는 다른 행성 이주라는 희망이 생겼다. 혹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장치로부터 온 신)’라는 문장을 알고 있는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무대장치를 타고 내려와 모든 문제를 해결해버리는 오래된 표현으로부터 비롯된 말인데, SF영화에서 반중력이 그러하다. 누구나 간단히 쓰고 있는 기술이지만, 따로 원리를 설명하지는 않는 해결사다.

    백만장자의 애증으로 시작된 반중력 연구

    반중력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백만장자도 있었다. 20세기 초 월스트리트에서 활동했던 로저 밥슨은 당시 작용 반작용이라는 물리학 법칙을 주가 분석에 활용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경제 전문가로 금융에 관한 자문을 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고, 나중엔 미 대선에도 출마했었다. 특히, 남다른 분석력으로 미국의 경제위기였던 대공황을 예측하면서 슈퍼스타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경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던 그에겐 큰 상처가 하나 있었는데, 어릴 적 큰 누나를 익사 사고로 잃었던 기억이었다. 

    보통 이러면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텐데, 밥슨은 좀 더 근원적인 것에 분노를 느꼈다. 바로 중력이다. 중력이 자신의 누이를 장악하고 깊은 바닥으로 끌고 갔다고 여긴 그는, 악랄한 힘의 만행을 회상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중력은 우리를 넘어지고 다치게 하는 악마이기에, 중력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분노가 만들어낸 강한 동기 부여는 결국 ‘중력연구재단(Gravity Research Foundation)’을 설립하게 했고, 미국 13개의 대학에는 ‘반중력 석’이라는 석조 기념비가 세워지게 된다. 물론 반중력이라는 사이비 과학에 가까운 단어는 학생들의 공분을 샀고, 이 기념비는 당시 여러 번 발길질에 넘어지며 중력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미 국방부가 4월 27일(현지시간) UFO의 비행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 3편을 공식 공개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제공]

    미 국방부가 4월 27일(현지시간) UFO의 비행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 3편을 공식 공개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제공]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밥슨의 원한은 희미해졌고, 원래 목적과 달리 중력 자체를 제대로 연구해보자는 식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1967년 밥슨이 사망한 이후에는 매년 중력과 관련된 훌륭한 논문을 선정해서 상금을 수여했는데, 정통파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이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스무트도 받았다. 유행에 따라 연구비가 투입되는 비중이 바뀌는 풍토 때문에, 중력에 관한 연구를 도저히 이어가기 힘든 시절에도 다행히 중력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물리학자들은 버틸 수 있었다. 만약 밥슨의 중력에 대한 원한이 없었다면, 과연 이 어려운 연구가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심지어 재단의 보조금을 계속 받았던 터프츠 대학은 1989년 우주론 연구소를 설립했고, 현재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중력 연구소로 평가받고 있다.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중력을 미워하던 마음이 결국 사랑으로 변했고, 반중력의 발견이라는 허무맹랑한 목적 덕분에 인류는 중력이라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중력에 반하는 힘은 우주 속 보이지 않는 척력

    그렇다면 반중력은 어디에도 없을까? 새로운 결론을 위해 우선 명확히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중력은 인력일까, 아니면 척력일까. 간단한 질문이다. 당연히 중력은 당기기만 하니 인력이다. 척력은 중력의 반대되는 힘이기 때문에 아마도 반중력이 있다면 미는 힘인 척력일 것이다. 수식으로 보면 가장 정확하다. 뉴턴이 발표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보면,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하며, 전부 질량 중심을 향해 운동하고,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만약 음의 질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2017년 4월,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팀은 음의 질량으로 이루어진 물질을 만들어냈다고 발표했다. 질량이 음수라면 운동 법칙에 따라 밀어내면 멀어지는 대신 오히려 가까워지게 된다. 따라서 두 물체 중 하나가 음의 질량이라면, 질량 차이를 이용해서 척력으로 밀어내는 상황을 만들 수 있고, 혹시 모두 음의 질량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물질이 아니라면 반중력을 만들 수 있다는 걸까. 이제 더는 유사 과학에 가까운 반중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며, 그 대신 중력을 거부하며 반대로 밀어내는 현상이 실제로 우주에 존재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우주에 존재하는 척력이자 비어있는 공간의 에너지, 암흑에너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미지의 에너지로, ‘우주가 커질수록 늘어나는 공간만큼 에너지도 커져서 우주의 팽창을 점점 가속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만약 반중력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면, 현재로서 가장 이 단어에 어울리는 힘은 중력에 반하는 척력, 암흑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지식을 쌓는 행위를 평생 동경하면서도, 어린 시절이 지난 뒤 나타나는 상상력은 종종 경계한다.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건 위험하지만, 상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문을 여는 건 멋진 일이다. 얼마나 많은 위대한 발견이 오직 머릿속으로만 하는 사고실험에서 왔는지 기억하자.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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