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0

2020.07.31

진중권, “‘좌빨’ 공포마케팅은 보수의 유연성을 죽인다” [진중권의 직설⑨]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7-28 15: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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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간동아’는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고문을 매주 화요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동아DB]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동아DB]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21대 국회 데뷔 무대는 나름 인상적이었다. 초선임에도 외교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유려한 말솜씨로 국무총리를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을 여럿 던졌다. 내 눈에는 여전히 ‘꼴 보수’로 보이지만 적어도 그는 다른 꼴 보수들과 달리 천박하지 않고 격조가 있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대정부 질의가 아니라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 가 있었다. 거기서 ‘사상검증’의 문제가 불거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한 일. 아니나 다를까, 청문회에서 그는 후보자를 매섭게 몰아세웠다. 하지만 청문회 직후 여당에서 그를 대대적으로 비난했고, 공세를 펴던 그는 수세에 몰리고 만다. 왜 그렇게 됐을까?

    십자가 밟기

    여당에서는 이를 ‘십자가 밟기’라 부르나 공직자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제 사상을 밖으로 말하도록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하지만 이인영 후보자는 사인이 아니라 공인이다. 공직자는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의원은 자신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들의 뜻을 ‘대의’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어떤 사상과 이념, 혹은 가치관을 가졌는지 유권자들 앞에 투명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 몇 년 전의 ‘통합진보당 사태’는 의원들이 이런 절차 없이 선출됐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당연한 일을 하고도 역공을 당했을까? 검증의 방식이 섬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사상검증을 시작하면 민주당 측에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내세워 반(反)민주, 반(反)자유주의로 프레이밍 하리라는 것은 예상된 일이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태영호씨가 대한민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식으로 반격했다. 그렇다면 태 의원은 처음부터 사인이 아니라 공인에 대한 검증임을 분명히 하면서, 자신의 질문이 사인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아니라 공인의 사상에 의구심을 가진 유권자들을 대신해 던지는 공적 질의임을 강조했어야 한다. 

    사인과 공인의 차이를 흐려버린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십자가 밟기’라는 낙인은 부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태 의원이 수세에 몰린 것은 한국정치의 불행한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보수정권은 정적을 탄압하는 데에 사상검증을 악용했다. 특히 ‘전향’이라는 표현은 자동으로 그 아픈 역사를 환기한다. 과거에 독재정권은 ‘전향’을 안 했다는 이유로 형을 다 마친 이들을 평생 감옥에 가두었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벗어나는 이 가혹한 인권침해의 기억이 있기에 여당에서 정당한 검증마저 손쉽게 ‘십자가 밟기’로 프레이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통합당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들이 이 사회의 ‘오버도그’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언더도그’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소수자가 다수자나 쓰는 전략을 사용하면 당연히 고립을 자처하게 된다. 이번 일에서 보수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직도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좌파’, ‘좌빨’, ‘주사파’, ‘종북좌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모든 이성적 반론을 간단히 제압해 주었던 그 효과적인 무기가 이제는 외려 그 말을 사용하는 이들을 가두는 덫으로 변했다. 보수는 이 점을 인식해야 한다.



    종북좌파?

    7월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인영 후보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7월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인영 후보자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병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즉 상대와 싸우려면 일단 상대를 알아야 한다. 보수진영에 속한 이들은 툭하면 상대에게 ‘좌빨’이라는 낙인을 찍곤 한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대한민국에 정치학적 의미에서 ‘좌파’는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독일의 보수당인 기민당보다도 보수적이고, 정의당의 정책도 사민당에 비하면 한참 오른쪽에 있다. 보수가 사용하는 ‘좌빨’이라는 말은 일종의 경멸어(pejorative)일 뿐, 정치학적으로 잘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고로 상대를 ‘좌빨’이라 부르는 것은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 혹은 ‘선동’에 가깝다. 

    ‘주사파’라 불리는 NL세력은 정치학적으로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 민족주의 우파에 속한다.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은 남한의 운동세력에게 사회주의 강령을 내세우지 말 것을 요구한다. 남한에서 미국을 몰아내려면 자본가를 포함해 되도록 많은 세력을 규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떼를 몰고 북한을 방문한 정주영 회장을 그들은 ‘민족자본가’라 부르며 통일운동의 동지로 여겼다.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한 것은 그들과 싸운 PD세력으로, 이들은 일찌감치 혁명노선을 포기하고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합법정당에 합류했다. 이들의 성향은 서구식 사민주의에 가깝다. 

    정권 내의 586세력이 주사파였던 것은 젊은 시절의 짧은 기간뿐이다. 그 후로는 이념과 상관없이 살아오다가 지금은 권력욕과 재물욕만 남은 평범한 속물 정치인들이 되었다. 다만 과거의 습속이 흔적으로 남아 가끔 주책없이 튀어나오는 것뿐이다.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태영호 의원을 “변절자”라 부른 것을 생각해 보라.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전대협 의장 시절에는 아마 주사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30년 전의 일, 이 시점에서 굳이 사상검증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4선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이렇다 할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이미 검증은 끝난 것이다. 

    현재 ‘주사파’라 불릴 만한 세력은 이석기가 이끄는 경기동부연합 세력뿐이다. 새끼수령(이석기)의 사면을 위해 벌인 차량시위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문화 자체가 이질적이다. 사실 이들은 영화에 나오는 끈 떨어진 간첩처럼 관성에 따라 이제는 의미도 없는 활동을 계속하는 중이다. 윤미향 의원이 중심이 된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에서 일단이 드러났듯이 그들은 소수의 컬트 집단으로 전락해 운동과 영업을 일치시킨 일종의 ‘경제공동체’로, 이러저러한 연줄로 정부나 지자체의 사업을 따내 근근이 먹고 살아갈 뿐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민중당은 지난 총선에서 1.05% 득표로 정당을 해산해야 했다.

    베네수엘라?

    ‘종북 좌파’가 이념적 낙인이라면, ‘포퓰리즘’ 타령은 그것의 시장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왼쪽에서 볼 때 보수의 비판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국이 곧 베네수엘라가 된다’는 소리였다. 부동산이면 부동산, 기본소득이면 기본소득,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들어가는 대목에선 빼놓지 않고 이 베네수엘라 타령이 등장한다. 그 바탕에는 규제나 복지에 반대하는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 관념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나 복지정책은 대개 남미가 아니라 서유럽에서 빌려온 것들인데, OECD국가를 왜 굳이 남미의 빈국과 비교하려 드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종북좌파’든 ‘베네수엘라’든 이제까지 보수는 대중을 설득하는 데에 주로 공포 마케팅을 활용해 왔다. ‘종북좌파’라는 낙인에는 ‘저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가 북한이 된다’는 메시지가, 그리고 ‘베네수엘라’라는 비난에는 ‘저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 나라가 베네수엘라가 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전자가 정치적 버전의 종말론이라면, 후자는 경제적 버전의 종말론인 셈이다. 어느 쪽이든 공포를 활용해 대중을 손쉽게 사로잡겠다는 발상에서는 매한가지다. 문제는 ‘수꼴(수구꼴통)’이라 불리는 소수집단 외에 그런 공포 마케팅에 넘어갈 대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공포 마케팅은 대중을 사로잡기는커녕 자기들만 고립시킬 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정부는 코로나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게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는 행정력으로 영업의 자유를 강제로 제한한 예라 할 수 있다.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살포했다. 이것은 보수에서 비난하던 ‘퍼주기’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보수에서 이를 ‘베네수엘라’ 따라하기라 부르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마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게다. ‘베네수엘라’ 타령은 결국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놓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공포 마케팅의 문제는 그것이 보수의 정책적 상상력을 극도로 제한해 버린 데에 있다. 정치란 결국 국가를 운영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시장이나 기업에 맡겨놓고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라고 하니, 설사 정권을 잡아도 딱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정책을 창안해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의 정책에 빨간 딱지 붙이는 것 외에 대중에게 던질 메시지도 없는 셈이다. 과거처럼 낙수효과라도 있다면 ‘대기업이 잘 되는 게 곧 모두가 잘 되는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낙수효과마저 사라진 마당에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는가? 그러니 망할 수밖에. 

    한국보수는 그동안 ‘극우반공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의존하며,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종북좌파’ 혹은 ‘사회주의’라는 딱지를 붙여왔다. 보수대중은 오랫동안 그 선동에 세뇌되어왔다. 그러니 당이 달라지려고 해도 개혁이 쉽지가 않다. 자기들이 ‘좌빨’이라 불러온 그 정책을 당에서 채택하는 것을 대중이 용인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공포 마케팅이 보수로 하여금 개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연성, 발전에 필요한 최소한의 상상력마저 박탈해 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달라지려면 일단 입에서 ‘좌빨’이라는 단어를 떼어 내라. 그래야 보수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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