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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선택만 남겨진 부하, ‘똑게’ 상사와 공존하는 방법

  • 박한규 자유기고가

최후 선택만 남겨진 부하, ‘똑게’ 상사와 공존하는 방법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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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대리시절, S 상무께서 최초 관객 100만 명 돌파 영화 서편제의 평일 오후 티켓 두 장을 을 건네주면서 "박 대리는 왜 100만 명이 이 영화를 봤는지를 알아내서 업무에 반영해"라고 했다. 당시 광고, 이벤트, 홍보물 제작 등 대 고객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그분은 회사에서 필자의 머리가 가장 말랑말랑해야 하니 넥타이도 매지 말라고 했고, 전시회, 공연, 스포츠 경기 등 대중들이 모이는 곳은 주중이든 주말이든 찾아다니고 비용은 청구하라고도 했다. 

1998년 과장 시절, 같은 회사에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역, 부서에서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입사 후 10년 동안 개인사까지 자문할 정도로 가까웠던 P 상무는 CEO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고 새 임무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서 흔쾌히 응했지만 새 부서의 사람과 일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두어 달이 지나 그는 내가 만든 보고서 한 장 없다며 책망을 쏟아 냈다. 장벽에 막혀 전달하지 못했던 몇 가지 일을 보고했더니 앞으로 소속 팀 업무뿐만 아니라 P 상무 업무 영역에서 무엇이든 입안해 팀장을 거치지 말고 직접 승인을 받으라고 했다.


부하에게 인정 베풀지 않는 상사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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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다. 직장에서 모든 상사가 부하에게 이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부하가 감동할만한 인정을 선사하는 통 큰 상사와 그 인정에 감읍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는 부하 이야기는 이제 ‘라떼’ 정도로 취급되는 분위기이다. 

하루 9시간, 주 5일.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함께하는 사람이 직장동료다. 그곳에는 일과 사람이 함께 있다. '따로 또 같이'라 했던가. 혼자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없는. 그곳의 사람 사이를 단순화해 보면 그는 동료이거나, 상사이거나, 부하다. 보통 동료 간에는 돈독한 선린우호 관계가 형성된다. 큰 이슈도 없고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든든한 울타리다. 이와 달리 부하와 상사로 묶이면 조화, 갈등, 평화, 분쟁 등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개 원만하지 않다. 

여섯 번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일면식도 없는 동료, 부하, 상사에 대한 판단은 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우선순위는 상사, 부하, 동료다. 상사에 대해서는 성향을 파악해 앞으로 어떤 노선을 취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필자는 자주 만나 작은 일까지 성가실 정도로 묻고 상의하고 1주일 정도면 대충 파악했다. 그러고는 궁극적인 합치율 예상치를 생각해 본다. 절대 100%일 수는 없고 80%를 넘으면 만족한다. 70%를 하회할 경우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맞추어 갈까. 부하의 경우 상사보다는 단순하지만, 대상자가 많다. 능력과 태도 그리고 성격에 대해 관찰한다. 가장 쉬운 항목은 능력이다. 한 두 마디 말로도 가능하다. 태도는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가장 어려운 항목은 성격이다. 참모습을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일상 수준 이상은 피차 드러낼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태도다. 태도는 포신과 같아서 각도와 길이에 따라 포탄(능력)이 날아가는 거리와 정확도가 달라진다. 연한이 낮을수록 특히 일과 사람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정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오죽하면 attitude를 100점이라며 이 단어에 주목했을까. 공교롭게도 알파벳에 순서대로 1부터 번호를 부여해 attitude의 철자 번호를 합하면 100이 되기도 한다.




시각이 달라 유형 분류도 힘들어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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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태도(부지런한가, 게으른가)와 능력(똑똑한가, 멍청한가) 2개 차원, 4개 조합으로 단순화하고 각 유형의 상사와 부하의 조합 양상을 도식화한 것이 있다. 보통 똑똑하면서 부지런하면(똑부) 최상, 멍청하면서 게으르면(멍게) 최악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부하인 경우 '멍게'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단순 반복적인 일을 맡기면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지만 '똑게'는 높은 능력과 게으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사기마저 꺾어놓으니 최악이다. 또 '똑부' 상사는 눈에 보이는 것마다 지적해 부하를 피곤하게 만드니 조직의 효율성을 저해할 위험성이 높으니 지위에 따라 바람직한 조합형도 달라진다. 

경영자는 모든 단위 조직을 '똑게' 상사와 '똑부' 부하의 조합으로 만들고 '멍게'나 '멍부'들만의 결합을 막고 싶겠지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멍게' 부하는 어떤 유형의 상사를 만나도 탈출구가 없다. '멍부' 부하는 '똑게' 상사를 만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면 배우는 거라도 있다. 상사는 부하보다는 위험성이 덜해 '멍부' 상사일 망정 '똑부' 부하를 만나 차라리 '잡아먹히면'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다. '똑부' 상사와 '멍게' 부하가 3일만 점심을 함께 먹으면 둘 다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멍부' 상사와 '똑게' 부하의 조합도 만만하지 않다. '똑게' 부하는 매일 아침 신발 끈을 동여매고 어금니를 앙다물며 집을 나섰을 거다. 필자도 경험했다. 

이 그림을 같은 조직의 상사와 부하들에게 제시하고 각자 지금 상황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결과는 얼마나 일치할까.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원인은 뭘까?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 부족이다. 이것이 갈등의 시발이다. 대부분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다. 누구도 자신이 '멍게'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멍부'라 생각하는 비율도 극히 낮다. 그래서 자신과 상대의 유형을 먼저 상정하고 관계 양상을 확인하면 현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갈등이 반드시 조직에 나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불편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조직의 발전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작정 상사나 부하는 선택권이 별로 없다. 특히 극단적인 선택권만 남겨진 부하라면!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를 자주 인용했는데 어떻게 하면 사랑하게 될까. 자주 접하면 된다. 자주 영화를 보고, 소설과 시를 읽고, 야구 경기장을 찾으면 영화, 시, 소설, 야구를 사랑하게 된다. 부하와 상사도 자주 접해서 서로 사랑하게 되면 알고, 보이고, 느껴 갈등도 자연히 풀리지 않을까. 자주 만나 대화하라. 소주잔이 앞에 있으면 더 좋다. 섭섭했던 일, 부당했던 일, 답답했던 일들을 감정을 배제하고 숨김도 과장도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만족스러운 해법은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빈도는 준다.


불편 해소 욕망이 조직 발전 가져오기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악연도 있다. 헤어져라. 누구에게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다만 직장을 떠날지는 신중해야 한다. 두 번 경험했다. 그 직원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진작 알았고 나 역시 힘들었다. 어느 날 사표를 내밀기에 부서를 옮겨 주었다. 지금 상사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조직 부적응자는 아니다. 다른 사람, 다른 일을 만나면 결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어떤 자물쇠도 열 수 있는 만능키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도 드물다. 입사 동기 중에 사연(社緣)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이가 있다. 학연, 지연, 혈연처럼 직장에서 만나 사연(事緣)이 쌓이면 사연(社緣)이 된단다.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곳에서 일하면서 정이 쌓여 좋은 인연도 만든다면 덤이다. 신입 시절 40대 초반 로열패밀리 K 상무가 슬쩍 던져 준 한 마디가 있다. "직장에서는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게 최고의 행운이야."






주간동아 2020.02.07 1225호 (p38~40)

박한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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