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금융업’ 넘보는 ‘테크’의 아킬레스건

토스 발목 잡은, 대출 아닌 대출 같은 상환전환우선주의 정체는?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10-07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금융위원회가 10월 10일부터 ‘3호’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은행) 선정을 위한 예비인가 신청을 받기로 했지만, 접수 개시 전부터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수차례 인터넷전문은행업 불참 의사를 밝혀왔던 네이버가 11월 네이버페이를 분사하기로 하면서 은행이 아닌 간편결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5월 예비인가 심사 때 ‘혁신성 부족’으로 탈락한 키움증권도 10월 초 현재 재도전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빚으로 변할 수도 있는 주식’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기업) 대열에 합류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역시 마찬가지. 특히 토스는 상환전환우선주(Redeemable Convertible Preferred Stock·RCPS)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인터넷은행은 물론 증권업 진출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토스는 5월 금융당국에 금융투자업(증권업) 인가를 신청했는데, 심사를 맡은 금융감독원(금감원)이 RCPS로 인한 자본 적정성 문제를 지적해 5개월 넘도록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금감원이 문제 삼는 대목은 토스의 자본금 129억 원 가운데 RCPS가 96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그래프1 참조). 즉 토스가 증권사 대주주 역할을 할 정도로 자본 면에서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잣대’는 5월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심사 때도 동일하게 적용돼 ‘토스은행’ 탈락의 주요 근거가 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토스는 총 6차례에 걸쳐 RCPS를 발행해 투자금을 유치했다. 현재까지 토스의 누적 투자금은 3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RCPS란 ‘대출은 아니지만 대출 같기도 한’ 주식이다. 우선주(Preferred Stock)기 때문에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에 우선해 배당을 받고, 전환(Convertible)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동시에 상환(Redeemable) 권리도 있어 투자자는 발행 회사에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토스는 ‘투자한 지 3년 후부터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투자금에 8% 단기 이자를 붙여 상환한다’는 조건으로 RCPS를 발행했다. 한편 최근 발행되는 RCPS에는 통상적으로 우선주임에도 의결권이 부여돼 있다. 토스가 발행한 RCPS도 마찬가지. 토스의 투자자는 회사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하면서 우선적인 배당과 보통주 전환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자를 붙여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야놀자, 우아한형제들도 피할 수 없는 ‘돈줄’

    RCPS는 현재 벤처투자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자 유형이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이 1조9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는데, 그중 우선주 투자가 1조1500억 원으로 전체 투자의 약 61%를 차지했다(그래프2 참조). RCPS 비중은 해마다 늘어 지난해 55%에 달했는데, 반년 새 6%p 증가한 것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우선주 투자는 대부분 RCPS”라며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벤처 투자는 RCPS가 대세”라고 전했다. 




    국내 유니콘 기업 9개사(토스, 야놀자, 엘앤피코스메틱, 옐로모바일, 우아한형제들, 위메프, 크래프톤, 쿠팡, 지피클럽)만 봐도 RCPS는 피할 수 없는 ‘돈줄’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년도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한 화장품업체 지피클럽과 미국 소재 쿠팡LCC가 지분 전량을 갖고 있는 쿠팡을 제외한 7개사 중 6개사가 RCPS를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특히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은 자본금 54억 원 중 72%에 해당하는 39억 원이 RCPS이다. 숙박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야놀자는 현재까지 3600억 원을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RCPS 방식의 투자금으로 추산되는 것이 1360억 원이다.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조달한 쿠팡LCC도 대부분 RCPS 형태로 투자받았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최근 급성장을 발판으로 내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콘텐츠 커머스 기업 블랭크코퍼레이션도 2017년 소프트뱅크 산하 벤처캐피털인 소프트뱅크벤처스로부터 65억 원을 RCPS 형태로 투자받았다. 최근 RCPS로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상환 의무 조항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피해 투자를 유치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벤처투자업계에 RCPS 투자가 확산되는 것은 스타트업과 투자자 둘 다에게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투자자는 스타트업이 승승장구해 주식시장에 상장될 경우 전환권을 행사,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꿔 이익을 실현하고, 기업 사정이 나빠질 경우엔 상환권을 행사해 투자금을 돌려받음으로써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RCPS 활용은 국내에 앞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널리 확산된 투자 방법이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변호사는 “다만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의 경우 상환권 실익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초기 투자에 한해 상환권 없는 우선주 투자가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스타트업은 회계 및 재무상 이점을 누린다. 2011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이 도입되면서 RCPS가 자본이 아닌 부채로 분류되기 시작했지만, 비상장회사에 한해서는 RCPS가 여전히 자본으로 간주된다. 또 투자자가 상환권을 발동하기 전까지는 사채(社債)와 달리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과거에는 상환우선주(Redeemable Preferred Stock·RPS)가 주된 투자 방식이었는데, K-IFRS 도입 이후 RPS가 상장 여부를 떠나 모두 부채로 잡히면서 그 대안으로 RCPS 투자가 일반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회의 차단이냐, 금융사의 기본이냐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왼쪽)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뉴시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왼쪽)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뉴시스]

    IT업계에서 일상다반사인 RCPS라는 ‘덫’에 걸린 토스는 최근 공개적으로 금융당국에 불만을 토로했다. 9월 18일 이승건 토스 대표는 은성수 신임 금융위원장이 참석한 행사에서 “금융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로 증권업 진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인터넷은행 진출도 멈출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금감원은 토스 측에 RCPS의 상환권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토스 측은 “투자 후 일정 시한이 지나야 상환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당장 상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토스가 빠른 속도로 기업 가치가 성장하고 있어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할 이유도 없다. 또 회사에 이익금이 있어야 상환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투자 시한 3년이 지나 현재 상환권 행사가 가능한 토스의 RCPS는 절반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1조 원으로 평가된 토스의 기업가치는 올해 8월 2조7000억 원으로 1년도 안 돼 2배 넘게 성장했다. 또한 상법상 상환권 행사는 ‘배당가능 이익’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회사가 영업 활동으로 쌓아놓은 이익이 있어야만 투자금을 회수해갈 수 있다. 2013년 설립된 토스는 매년 적자를 내 현재 결손금(누적 적자)이 1000억 원을 넘어선 상태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RCPS의 상환권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실제로 행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타트업이 성공가도를 달리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이유가 없고, 스타트업이 망하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RCPS 문제로 토스 같은 테크핀(TechFin·기술+금융)의 금융업 진출이 막히는 것은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기회 차단”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시각은 다르다. 토스가 비상장기업이라 RCPS가 부채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해도, 자본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업에 진출할 때는 RCPS가 가진 잠재적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가 신흥 금융사의 향후 사업 전망을 좋지 않게 평가해 상환권 행사로 그간 쌓아놓은 이익금의 상당 부분을 회수해갈 경우 해당 금융사 고객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금융당국으로서는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으로 예금자 보호를 해주는 은행과 증권사는 공공성이 매우 큰 기관인 만큼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재무적 안정성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말했다. 

    RCPS의 상환권 행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온라인쇼핑몰 팀그레이프에 각각 20억 원, 15억 원을 RCPS 형태로 투자했던 KB증권과 DS자산운용은 이듬해 팀그레이프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자 연대보증을 선 모회사 옐로모바일을 상대로 투자금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도 발목 잡혀

    한편 YG엔터테인먼트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에 670억 원을 토해낼 위기에 처한 상태다. 2014년 10월 LVMH그룹 산하 투자회사 ‘그레이트 월드뮤직 인베스트먼트’는 YG엔터테인먼트에 RCPS 방식으로 610억 원을 투자했는데, 이 투자 계약에서 5년 후 주당 4만3574원에 보통주로 전환하거나 투자금에 연 2% 이자를 얹어 돌려받는 옵션을 걸었다. 청구일인 10월 16일이 보름도 남지 않은 10월 2일 현재 YG엔터테인먼트 주가는 2만3350원으로 올해 초 최고가(5만800원)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YG엔터테인먼트가 1200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어 LVMH그룹 측에 투자금을 돌려줄 여력은 충분하지만, 대외 이미지 등을 고려해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상환권 행사를 유보하고자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스가 증권업 및 인터넷전문은행업에 진출하려면 RCPS의 상환권 문제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나 증권사와 운명을 함께하는 주요 주주는 K-IFRS 기준으로 자본 적정성을 심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토스 투자자들이 상환권 자체를 없애거나, 상환권 행사 가능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는 해결책이 거론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토스 투자자들이 보통주 전환 계획서를 제출하고 금융당국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한 발씩 양보할 수 있지도 않겠느냐”고 견해를 피력했다. 토스에 투자한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은 단독으로 행동하기보다 다 함께 움직인다. 토스의 주요 투자자가 여럿이기 때문에 의견을 한데 모으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