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4

2019.08.30

늦맘이어도 괜찮아

늦맘이 더 오래 산다

100세 이상 살 확률 4.5배 높아 …  자녀 위해 ‘노화의 불리함’ 극복 의지 투철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latermotherhood@gmail.com

    입력2019-09-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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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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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 아이가 배탈이 났다. 새벽 3시 무렵이면 잠에서 깨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아픈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새벽마다 화장실에 동행하다 보니 나도 수면 부족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동갑내기 늦맘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14개월 된 우리 둘째는 요즘 한창 치아가 나는 중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라면 이 말이 의미하는 공포를 알 것이다. 아이들은 치아가 날 때 잇몸이 아프다. 치아가 다 날 때까지 몇 달에 걸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밤에 두 시간마다 깨 우는 아이를 달랜다는 친구는 “We are too old for this(이걸 하기에 우리는 너무 늙었어)”라는 영화 ‘리썰 웨폰’(1987)의 대사를 읊으며 웃었다. 참고로 나와 친구는 갓 마흔을 넘겼다.

    노년의 건강 상태도 더 양호

    경남 함양군 함양읍 상림공원에서 숲 체험을 나온 성민어린이집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 제공 · 김용만 경남 함양군청 주무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상림공원에서 숲 체험을 나온 성민어린이집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 제공 · 김용만 경남 함양군청 주무관]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학창 시절 어버이날이면 별생각 없이 부르곤 했던 ‘어머니의 마음’의 노랫말은 은유가 아닌 ‘다큐’였다. 모든 엄마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연을 맡아 밤낮으로 애쓰며 아이를 길러낸다. 그나마 낮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밤에 일어나는 돌봄은 대부분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문제는, 마흔 다 된 나이에 엄마가 된 늦맘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감퇴하는 체력을 절감하면서 이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재운 뒤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달콤한 ‘육아퇴근’도 늦맘에겐 사치다. 37세에 아이를 낳고 올해 마흔이 된 한 엄마는 “그래도 30대 때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 뭔가를 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도저히 체력이 안 돼 그냥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리곤 한다”고 털어놨다. 

    ‘나이 듦’을 실감하게 되면 눈앞의 어린아이가 말 그대로 ‘눈에 밟힌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내 부모는 40대였지만, 내 아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이면 나는 예순 살을 코앞에 둔다. 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나는 여든을 바라보게 된다. 뒤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여성은 “내가 너무 늙어 어른이 된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고 종종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런데 이런 늦맘에게 위안이 될 만한 소식이 있다. 30대 후반 이후에 출산한 여성이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1993년부터 미국 뉴잉글랜드 백세 연구(The New England Centenarian Study)를 이끌어온 토머스 펄스(Thomas Perls) 보스턴대 의과대학 교수는 2001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40세 이후에 자녀를 출산한 여성이 100세 이상 살 확률이 전체 여성의 해당 확률보다 4.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14년 같은 대학의 한 연구에서도 33세 이후에 아이를 낳은 여성이 95세 이후까지 생존할 확률이 29세 이전에 출산을 마친 여성보다 5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늦은 나이에 출산한 여성이 노년의 건강 상태도 더 양호하다고 한다. 2016년 미국에서 폐경기 여성 83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35세 이후에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여성의 언어적 기억 및 인지 능력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높았다. 

    물론 이 연구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늦게 출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늦맘이 왜 더 오래 살고 노년에 더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제기하는 하나의 가설은 늦은 출산이 가능한 여성의 건강 상태와 에너지 레벨이 원래부터 다른 여성에 비해 더 높았으리라는 것이다. 일종의 선택 편향(Selection Bias)이다.

    당장의 ‘하루육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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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과연 출산 당시 건강 상태의 차이가 95세 혹은 100세 생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과학적 근거를 찾으려면 좀 더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늦게 만난 아이와 더 오래 함께하고자 하는 늦맘의 ‘의지’와 그에 따른 건강관리가 이들의 장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 30대 초반 엄마가 ‘아이와 오래 함께 살아야 하니 지금부터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되뇌는 모습은 흔치 않다. 하지만 늦맘끼리는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눈다. 두 아이를 둔 40대 여성은 “몇 년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는데, 다시 받기로 했다”며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혹시라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미리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늦맘은 건강과 체력을 관리하지 않으면 당장의 ‘하루육아’를 감당하기 어렵다. 30대 후반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아이가 한창 엄마와 밤낮으로 활발하게 부대낄 시기에 40대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늦은 출산으로 몸에 부담이 간 상태에서 신생아 육아에 임했던 후과 역시 만만치 않다. 조금 무리해도 금방 회복이 가능하던 20, 30대 때와는 컨디션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최근 만난 한 헬스 트레이너는 “요즘 퍼스널트레이닝(PT)을 신청하는 40대 아기 엄마가 늘었는데, 다이어트나 몸매 관리가 아니라 ‘체력 증진’이 이들의 목표”라고 했다. 아이가 어리고 맡길 곳 없는 경우 동영상을 틀어놓고 홈트레이닝을 하는 늦맘도 많다. 비타민과 보약을 챙겨먹는 예 역시 흔하다. 늦맘에게 건강 관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학자들도 이 같은 경향에 동의한다. 초산 연령과 건강, 사망률을 연구한 존 미로스키(John Mirowsky) 미국 텍사스대 인구연구센터 박사는 2005년 건강과 사회행동 저널(Journal of Health and Social Behavior)에서 “현재 같은 연령이라고 가정할 때 18세 이전에 첫 출산을 한 여성과 34세에 첫 출산을 한 여성의 건강 위험도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교육 수준과 경제적 능력 등 늦맘이 갖춘 사회경제적 자원이 생물학적 노화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체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30대 중반 이후에 출산한 여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온 ‘준비 : 왜 여성은 늦게 엄마 되기를 선택하는가’(2012)의 저자 엘리자베스 그레고리는 “늦게 아이를 낳기로 한 사람들은 오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 건강 관련 지식의 습득과 실천에 더욱 민감하다”며 “지금의 늦맘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실제로 더 건강하게 장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늦맘에게 건강 상태를 물으면 “입을 모아 ‘정말 피곤하다’고 호소하면서도 ‘그러니까 더 열심히 체력을 챙겨야 한다’고 답한다”고 덧붙였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

    네 살 아이는 요즘 종종 “엄마, 오늘 운동했어요?” 하고 묻는다. 자기를 더 많이 안아주려면, 그리고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살려면 엄마가 운동해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아이도 안다. 각종 연구에서 말하듯 내가 늦맘으로서 장수할지, 건강한 노년을 보낼지는 알 수는 없지만 아이의 천진한 목소리에 나는 오늘도 저항하는 몸뚱이를 일으켜 러닝머신에 오른다. 삶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언제 만나고 헤어질지 모르는 노릇이지만, 오래 함께 있어주길 바라는 누군가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임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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