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2

2019.08.16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거침없는 트럼프의 입, ‘세계의 왕’ 자처하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9-08-19 10:05:5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shutterstock]

    [shutterstock]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내는 것이 뉴욕 아파트 월세를 받는 것보다 쉬웠다”고 말했다. 또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로부터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 우리는 친구다. 사람들은 그가 나를 만날 때만 웃는다고 한다”고도 했다. 친서 내용에 대해서는 “터무니없고 비싼 훈련에 대해 불평하는 내용이 많았다”며 “이는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한 작은 사과였다. 훈련이 끝나면 시험발사도 멈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면죄부와 대한민국의 방위비 분담에 대한 압박이 동시에 담겼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전쟁’에 돌입한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많은 것을 암시한다. 한국의 운명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그의 생각을 추정·분석하고자 한다.

    “김정은은 내 친구”로 중국 견제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목적은 중국 견제인 것으로 판단된다. 더는 중국의 성장과 패권 확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간의 행보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국의 절대 우방국이자 혈맹(血盟)을 자처하는 북한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중국 힘 빼기’에 성공하는 셈이 된다. 중국과 맞붙은 작은 나라 북한이 친미(親美) 노선을 표방한다면 이것만큼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또 어디 있으랴.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끌어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북한과 상호불가침 조약 내지 평화협정 체결, 외교관계 수립 등 어떤 형태로든 북한을 끌어안으려 할 개연성이 크다. 마침 남한도 ‘우리는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좋은 기회다. ‘공산주의 체제와 독재자 옹호’라는 비판이 일어난다면 ‘낡은 이념적 갈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익, 떠오르는 위협인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논리로 맞대응할 것이다. 

    따라서 향후 미국과 가까워지려는 북한을 중국이 위협하는, 전대미문의 아이러니한 국제 정세가 전개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과 미국 중 누가 더 자신에게 잘해주는지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삼각관계 외교’를 펼쳐나갈 수 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미국은 오랜 기간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 핵시설 표격 등 다양한 무력 시나리오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미국은 수차례 중동에서 전쟁을 벌였지만, 북한과는 말로만 으르렁댈 뿐 실제 전쟁을 벌이진 않았다. 중동은 석유, 비(非)기독교, 9·11테러 등 전쟁을 수행할 명분(?)을 꾸준히 제공해왔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적이 드물다. 세계정세에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이 배고픔에 시달리는 가난한 국가일 뿐이다. 그러니 미국이 무엇을 위해 북한과 전쟁을 하겠는가. 설령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탄두미사일을 개발했다 해도 실제 공격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미국 처지에서 북한 정권은 달래고 길들여야 할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측에 경제제재만으로도 큰 타격을 받아 정권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면서 ‘내 말을 들어야 살아남는다’고 북한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 덕분에 북한과 전쟁하지 않는다”며 자랑하는 것이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더는 도와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말했다. 멋진 TV를 만들고, 이미 부자가 된 한국이 이 이상 미국의 도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논리적으로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방위비 분담을 넘어 미군 철수 얘기까지 나올 개연성이 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적대적 관계가 종식된다면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은 중국을 주적으로 삼아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도 미군을 주둔시키려 할 수 있다. 당연히 중국은 반발할 테니, 미·중 패권 충돌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남한과 북한에 친미, 친중(親中), 중립 중 어느 정권이 들어서는지가 미국과 중국의 관심사일 뿐이다. ‘북한은 친중, 남한은 친미’라는 오랜 공식은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후 깨져나가고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북한이 친미, 남한이 친중으로 바뀌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소셜미디어 타고 날개 단 권력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미국의 왕’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트위터에 즉흥적으로 올린다. 물론 그의 생각이 여러모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여론의 향방이나 참모들의 조언, 관료들의 정책 수립 과정을 거쳤다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과 관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마치 왕처럼 “짐이 생각하기에 ~하노니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의 트위트가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어쨌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기에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소셜미디어 발전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강력한 권력이다. 

    권력은 언제나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과 발언에 따라 한국인의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듯, 국제사회 일원인 한국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과 발언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몹시 안타까운 요즘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