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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아버지는 오디오가 안 된다고 하셨어…

‘The Music Never Stopped’의 추억

아버지는 오디오가 안 된다고 하셨어…

영화 ‘뮤직 네버 스탑’(원제 The Music Never Stopped)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추억을 공유한 음악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 [imdb]

영화 ‘뮤직 네버 스탑’(원제 The Music Never Stopped)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추억을 공유한 음악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 [imdb]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부자지간처럼 아버지와 나는 안부를 묻거나 수다를 떨 목적으로 통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용무가 있을 때 전화를 하고, 용무가 끝나면 전화를 끊는다. 통화시간은 길어야 2분이다.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어디냐?” “바깥이요.” “야, 오디오가 안 된다.” “어떻게요?” “전원이 안 들어와.” “제가 다음 주에 가서 한번 볼게요.” “그래.” 

한 주가 지나 본가에 갔다. 문제는 간단했다. 전원 케이블이 제대로 안 꽂혀 있었다. 선을 연결하고 오디오를 켰다. 소리가 영 이상했다. 스피커 선이 잘 연결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스피커 선을 만졌을 리는 없을 터, 케이블이 노후한 게 분명했다. 아버지에게 마트에서 아무 전선이나 사다 연결하라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역시 오디오 문제라는 걸 알았다. “예, 아버지.” “어디냐?” “바깥이요.” “야, 오디오가 안 된다.” “케이블 바꾸셨어요?” “좀 잘라서 다시 연결해봤는데 안 돼.” “아마 케이블이 낡아서 그럴 거예요. 새 선으로 바꿔서 끼워보세요.” 

그때 나는 서울 용산에 있었다. 전자상가의 수많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응?” “그냥 제가 사서 다음 주쯤 갈게요.” “니가 온다고?” “네, 다음 주에.” “알겠다.” 앞에 보이는 케이블 가게에 들어가 스피커 선을 샀다. m당 300원이었다. 선을 가방에 넣고 거리로 나왔다. 강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문득,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압도적인 상념이 머리를 채웠다.


아버지와 전축

과거 음악 마니아는 대개 음악을 좋아하는 형이나 누나, 오빠나 언니가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유행가’를 들을 때 그들은 형, 누나, 오빠, 언니가 틀어놓은 록이나 팝 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눈을 떴다. 반면 장남인 나에게는 그런 형제가 없었다. 그 대신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었다. 



제5공화국 중기, 그러니까 1980년대 초·중반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집에 전축이 들어왔다. 국내 브랜드인 인켈 제품이었다. 검은색 외관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종종 퇴근길에 LP반을 사서 들어오셨다. 주로 경음악과 클래식 음반이었다. 가족끼리 TV를 보며 저녁식사를 한 후 아버지는 턴테이블에 LP반을 올려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나도 옆에서 책을 읽으며 음악을 함께 들었다. 

주로 피아노가 이끄는 선율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흐르는 음악이 궁금해 앨범 재킷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곤 했으니 말이다. 독서와 음악감상은 우리 네 식구의 일상적인 휴식이었다. 모든 식구가 하나의 TV, 하나의 라디오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건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풍경이었다. 

네 식구가 저녁마다 같은 음악을 듣던 시절은 중학교에 진학하며 끝났다. 엄마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워크맨을 사주면서부터 심야 방송의 시대가 나에게도 왔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시작으로 김광한부터 전영혁까지, 방과 후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 이어폰을 낀 채 라디오를 들었다. 

아버지의 저녁이 전축 스피커에서 나오는 경음악으로 채워졌다면, 나는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팝과 록, 그리고 가요로 사춘기 시간을 메운 것이다. 그 시간을 거쳐 나는 헤비메탈 키드가 됐고 대학에서는 음악감상 동아리에 가입해 수업보다 음악을 더 많이 듣는 학창시절을 거쳤다. 20대 초반이던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어울리며 펑크족으로 20대를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평론가가 돼 있었다.


30여 년 뒤에야 깨달은 고마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버지(신구 분)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아들(한석규 분). [사진 제공 · 우노필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버지(신구 분)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아들(한석규 분). [사진 제공 · 우노필름]

마흔이 될 무렵, 아버지랑 단둘이 살게 됐다. 데면데면한 사이인 부자가 함께 사는 건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밥 한 끼 함께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집은 그저 씻고 잠자고 옷 갈아입는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TV를 틀어놓고 저녁이 되면 야구를 본 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연애하던 시절, 여자친구가 집에 잠깐 들르게 됐다. 아버지는 늦은 점심을 드시는 중이었다. 볼일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온 여자친구는 아버지에게 감탄했다고 했다. 엄마가 해놓고 간 몇 가지 단출한 반찬에 식사를 하면서 음악을 틀어놓은 모습이 그렇게 멋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평생을 봐온 모습이었고 나도 혼자 살 때는 늘 그랬으니 말이다. 그런 습관이 특별할 수 있다는 걸, 당시 여자친구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됐다.

아버지의 오디오는 오디오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물건이다. 10여 년 전 구매한 국산 홈시어터 기기에서 CD플레이어만 남아 있는, 구시대의 유산이다. 스피커만 바뀌었을 뿐,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하는 케이블도 그때 그 케이블이다. 빛바랠 대로 바랜, 얇은 투명 플라스틱 선이 아버지의 혈관만큼이나 낡았을 건 당연한 일이다. 

처음 전축을 집에 들여놓은 날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다. 그때 아버지의 혈관처럼 굵고 튼실한 케이블을 사들고 용산 전자상가를 걸으며 나는 우리 식구가 처음으로 산 전축 스피커에서 울리던 피아노 선율을 떠올렸다. 30년도 훨씬 지난 그날의 일이 선명한 건, 그때 음악이 음악을 넘어 ‘소리’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청각적 쾌락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팔순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생각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태블릿PC를 연결해드렸음에도 아직까지 10여 년 전의 오디오에 CD로 음악을 듣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발길을 돌려 용산 오디오 상가로 향했다. 아버지에게 선물할 만한 오디오가 없을지 살펴봤다. 비좁은 부모님 댁에 놓기에는 하나같이 컸고 가난한 형편에 덥석 사기에는 하나같이 비쌌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적당한 물건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CD플레이어가 달린 작은 컴포넌트였다. 

부모님 집 주소를 적어놓고 결제 버튼을 누르며 아버지의 반응을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덤덤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엄마를 통해서나 아버지가 기뻐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전축으로 음악에 입문한 아들이, 이제야 아버지의 음악감상 기기를 바꿔드렸다. 햇빛 눈부신 오후였다.






주간동아 2019.06.21 1194호 (p76~77)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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