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어차피 나갈 건데” 철밥통도 명퇴 러시

공무원연금제도 개편 추진으로 지난해 명퇴 신청 교원 증가…공기업 “잘 벌 때 떠나자”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11-02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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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나갈 건데” 철밥통도 명퇴 러시

    명예퇴직(명퇴)으로 교정을 떠나는 교원 수가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예산이 부족해 명퇴를 하지 못하는 교원도 늘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4050 사기업 재직자 사이에서는 ‘언젠가 그만둬야 한다면 차라리 명예퇴직(명퇴)을 하게 해달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42쪽 참조). 공무원들에게도 명퇴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교육계에서는 전국적으로 명퇴로 교정을 떠나는 교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명퇴 신청 교원 수는 2011년 4476명에서 지난해 1만3376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올해 2월 말에만 명퇴 신청자가 1만2537명에 달했고, 8월 말 명퇴 신청자(4038명)를 포함하면 올해 총 명퇴 신청 교원 수는 1만6575명이고 이 중 8858명이 퇴직했다.

    지난해와 올해 명퇴 신청자가 늘어난 원인으로는 교권 추락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해졌다는 점 외에도, 정부에서 부담은 늘리고 혜택은 줄이는 방향으로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후 확산된 연금 삭감에 대한 불안감 등이 꼽힌다.

    명퇴 재수, 삼수까지

    그러나 명퇴 신청자 증가로 예산 부족 문제가 불거져 ‘명퇴 재수생’도 늘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명퇴 신청한 전국 교원 4038명 중 퇴직한 사람은 2007명(49.7%)에 불과했다. 명퇴 신청 교원 2명 중 1명만 명퇴가 허용된 것이다. 지역별 명퇴수용률을 보면 신청자 78명 중 10명이 퇴직한 전남이 12.8%로 가장 낮았고 경기 29.7%, 서울 33.4%, 경남 36%, 강원 37.1%, 전북 37.4%으로 낮았다. 부산, 대구, 충북, 충남, 제주의 명퇴수용률은 100%였다. 울산은 예산 부족으로 명퇴 신청을 받지 못했다. 명퇴를 신청한 교원 중 2회 이상 명퇴 신청서를 낸 교원도 전체의 절반(2008명)에 달했다. 3회 이상 명퇴를 신청한 교원은 981명(24.2%)이었다.



    35년간 교편을 잡은 서울 A초교 유모 교사는 2월과 8월 건강상 문제로 서울시교육청에 명퇴를 신청했으나 심사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교원 명퇴의 경우 신청 인원이 많으면 원로교사, 관리직(교장·교감 등), 근속연수 등을 우선순위로 고려해 결정한다. 유 교사는 “건강도 좋지 않고, 교사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바뀐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게 힘에 부쳐 명퇴를 생각했다. 공무원연금법 또한 불리한 방향으로 개정될 거라는 말이 나오는 터라 얼른 그만두고 건강을 추스를 생각이었는데, 평교사이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내년에 다시 신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5월 공무원연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공무원연금법의 시행일은 내년 1월 1일부터다. 이에 따르면 연금기여율은 2020년까지 현행 7%에서 9%로 단계적으로 높아지고, 연금지급률은 2035년까지 현행 1.9%에서 1.7%로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올해 하반기 명퇴 신청 인원이 상반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이유는 이 같은 연금법 개정의 영향이 당장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0년간 교직에 몸을 담은 이모 교사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8월 부산 B고교 관리직으로 명퇴했다. 이씨는 “지난해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시끄러울 때 주위에 명퇴 신청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교육청 예산이 부족해 전부 수용하지 못했다. 심한 경우 명퇴 신청 경쟁률이 15~16 대 1까지 치솟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당장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8월에는 관리직의 경우 희망자 전부가 명퇴했고, 정년까지 7~8년 이상 남은 교사들도 명퇴가 가능할 만큼 희망자가 줄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교원정책과 관계자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매년 명퇴 신청자가 4000~5000여 명 수준이었으나 2014~2015년에는 1만3000여 명으로 명퇴 신청자도, 퇴직자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 명퇴 신청자 증가로 정부에서 명퇴 수용을 위한 지방채 발행을 허용해 8000여 명가량의 명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자식 위한 목돈 마련코자 명퇴 고민

    명퇴 교원의 빈자리는 신규 교원으로 채워진다. 명퇴자가 증가한 만큼 신규 교원 임용도 늘었을까. 교육부에 따르면 2013년 신규 임용 모집인원은 초등·중등교사를 합쳐 1만746명이었고 2014년 1만2017명, 올해는 1만1488명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규 임용 모집인원이 2013년에 비해 늘어난 건 단순히 고경력자의 명퇴뿐 아니라 정년퇴직, 해당 과목의 교원 모집 등 여러 가지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등은 교단 상황과 조금 다르다. 연금개혁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녀 성장에 따른 목돈 마련과 승진 문제가 명퇴를 고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해 C공사에서 30년간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3년 앞두고 명퇴한 최모 씨는 전공을 살려 지인의 사무실에서 설계와 감리 일을 담당하고 있다. 최씨는 “복합적인 이유로 명퇴를 했다. 연금개혁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고, 당시 직책이 부장이었는데 그때 퇴직하는 게 나중에 한직에서 퇴직하는 것보다 퇴직금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부장으로 승진한 사람 중에서도 아이 교육비나 결혼 자금 등 목돈이 드는 문제 때문에 명퇴를 고려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법원에서 근무한 김모 씨는 “공무원이라고 명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금법 개정에 대한 불안한 마음도 있고, 장기간 승진을 못 했거나 자식의 해외 유학 등 학업, 결혼 문제로 목돈이 필요해 명퇴를 하는 사람이 많다. 아직 명퇴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에 25년 이상 근무한 사람 중에는 정년을 채우면 오히려 퇴직금 수령액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어 명퇴 시기를 고심하기도 한다.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가보면 명퇴를 생각해 일찌감치 나가서 살 준비를 하는 이도 많이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인사혁신처 인사정책과 자료와 행정자치부(행정부) 국가공무원 인사통계를 살펴보면 2013년 행정부 국가공무원 퇴직자 가운데 명퇴 인원은 7086명으로 이 중 일반·기능직이 1553명, 특정직(외무·경찰·소방·검사·교육)이 5047명이었다. 2014년 퇴직자 가운데 명퇴 인원은 1만943명이었는데 이 중 일반·기능직이 4161명, 특정직이 6782명으로 특정직 중에는 경찰과 교원 퇴직자가 명퇴 인원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인사혁신처 인사정책과 관계자는 “교원의 경우 명퇴 인원이 많이 늘어났을 수 있으나 일반직 명퇴자는 큰 변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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