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오른쪽)의 지역구에 자리 잡은 방촌시장.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는 박 대통령뿐 아니라 그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억이 서린 곳이 많다. 계산성당도 그 가운데 하나.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계산성당은 TK(대구·경북) 가톨릭 중심지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12일 당시 육군 중령이던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개혁의 중심이 되자
10월 23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유서 깊은 계산성당에서 ‘대구가 개혁의 중심이 되자’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유 의원의 강연 요지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고, 일제강점기에는 국채보상운동으로 구국운동에 발 벗고 나섰으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대구 학생의거 역사를 가진 TK가 개혁의 중심이 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유 의원은 TK 지역민이 스스로를 정치적 기득권층으로 인식하는 이유를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오랫동안 TK 출신 대통령이 통치해온 데서 찾았다. 광복 이후 현재까지 11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5명이 TK 출신이고, TK 출신 대통령이 재임한 기간은 전체 67년 가운데 39년으로 60% 가까운 시간을 통치해온 탓에 지역민 스스로 정치적 기득권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 하지만 유 의원은 강연에서 “대구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9년째 전국 꼴찌”라면서 “경제적으로 기득권층이 아닌데도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기득권층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려 하다 보니 보수화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유 의원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개혁, 따뜻한 공동체와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개혁에 TK가 앞장서자”면서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 남북통일을 개혁의 세 방향으로 제시했다.
대구 지역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유 의원의 TK 개혁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고 한다. 대구의 한 중소기업인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던 TK 정신을 되살리자는 유 의원 주장에 100% 공감한다”고 말했다. 한 지역 언론인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유 의원의 얘기가 호소력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하면서 “그런데 정작 유 의원 지역구 주민들에게는 TK 개혁론이 그다지 먹혀들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10월 8일 대구 동구을 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영남일보’ 여론조사에서 유 의원은 40.1% 지지율을 기록해 38.6%를 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5%p 리드를 지키고 있지만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게 지역 정가 인사들의 얘기다. 특히 새누리당 공천장을 누가 쥐게 되느냐가 내년 총선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되리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유 의원 지역구인 동구을에 자리 잡은 방촌시장 내 상인들은 “새누리당 공천 없이는 총선에서 당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방촌시장 입구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한 상인은 “(새누리당) 공천받으면 되능기고, 못 받으면 파인기라”고 한마디로 정리했고, 방촌시장 앞에서 노점을 하는 70대 초반의 여성 상인은 “대통령과 그래 사이 나빠 되겠나”라며 “(국회의원) 더 할라믄 대통령을 도와야제”라고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 지역구 사무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 사진.
K-2 공군비행장과 가까운 지저동 주민들은 유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장과 여당 원내대표 등 이른바 힘 있는 자리에 있는 동안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던 비행장 이전과 소음 피해 보상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원망이 적잖았다. 지저동에 산다는 70대 초반의 한 상인은 “누구는 재판해서 두 번씩 보상금 타먹고, 담 하나 차이로 누구는 한 번도 보상을 못 받는 억울한 일은 없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큰 정치도 좋고 개혁도 좋은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억울한 꼴 안 당하게 해주는 게 그기 개혁인기라”고 했다.
지저동, 방촌동, 해안동 등 구시가지 비행장 주변 지역에서 유 의원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다만 대구이시아폴리스일반산업단지가 조성된 불로봉무동과 율하택지지구가 조성된 안심1동, 혁신도시가 자리한 안심3·4동 등에 개혁성향의 30, 40대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유 의원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얘기가 지역 내에서 돌았다.
8월 말 기준 동구을 인구는 22만여 명. 이 가운데 혁신도시가 들어선 안심3·4동 인구가 5만30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율하택지지구가 있는 안심1동 4만5000명, 대구이시아폴리스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선 불로봉무동 2만5000여 명, 방촌동 2만여 명 순으로 인구가 많다. 젊은 층이 꾸준히 유입되는 안심1·3·4동 인구가 동구을에서 유권자 수가 가장 많다는 점이 유 의원에게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 ‘유 의원이 안심동 덕에 안심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월 23일 계산성당 강연에서 유 의원은 “나는 절대 새누리당을 안 떠난다. 나는 새누리당을 지키고 새누리당이 바뀌는 게 대한민국이 바뀌는 거라고 확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연 이후 한 참석자로부터 내년 총선 공천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이렇게 답했다.
“새누리당 공천은 경쟁을 할 거고요. 상향식 경선을 해서 경선하면 당연히 경선에 참여하고 저는 공천을 받으리라고 100% 확신하는데…. 혹시 공천 안 되면 그때 가서 조용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동구에 자리한 유 의원 지역구 사무실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 눈높이에 걸린 박 대통령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당당합니다’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대구지하철 1호선 방촌역과 용계역 꼭 중간에 자리 잡은 유 의원 사무실 위치는 마치 박 대통령과 대구 민심 중앙 어딘가에 있는 유 의원의 지금 처지를 암시하는 듯했다. 그는 과연 새누리당 공천장을 손에 쥐고 내년 총선에 나설 수 있을까.